도로시 데이 "미신처럼 성경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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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데이 "미신처럼 성경을 읽었다"
  • 로버트 콜스
  • 승인 2021.08.22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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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데이는 성 바오로에 대해 말했다.­ 로마인들에게 보낸 서간 중에서 아름다운 12장에 대하여. 그와 친구들이 이 장을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회상하였다. 이 장은 가톨릭일꾼운동이 운동의 중심적인 도덕 사회철학으로 강조하는 부분이며, 공동체를 강력하게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는 성서를 들고 “그리스도안의 새생활”이라는 제목부터 시작해서 12장 전체를 읽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이 제목이 “바오로 사도가 서술하려고 하는 바로 그것이며 독자들에게 성취하도록 권고하는 것”라고 말했다. 그는 12장의 13절이 특히 이 주제를 표현한다고 나에게 상기시켰다. “성도들의 딱한 사정을 돌봐주고 나그네를 후히 대접하십시오.” 그는 13절 이후의 몇 구절들을 크게 읽었다. “여러분을 방해하는 사람들을 축복하십시오. 저주하지 말고 복을 빌어주십시오. 기뻐하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기뻐해 주고 우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울어 주십시오. 서로 한 마음이 되십시오. 오만한 생각을 버리고 천한 사람들과 사귀십시오, 그리고 잘난체 하지 마십시오.”

이 마지막 구절은 그의 삶에서 옛 시절, 세속적인 나날들, 그리니치 빌리지 시절을 기억나게 했다. 그는 많은 “똑똑한”사람들을 만났으나 그들과 자신 안에서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많이 발견하였다.

“나이가 들어가면 향수와 함께 어떤 후회를 갖고 과거를 기억하게 되지요. 많은 젊은 친구들은 자신들이;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고 오만함의길을 거침없이 따라갑니다. 젊고 똑똑한 친구들은 오만함에서 더 나갑니다 ­ 즉 다른 이들에게 똑똑한 생각들을 과시하게 되지요. 젊고 똑똑하고 이상적인 친구들은 특별한 방식으로 오만함의 유혹을 받지요. 세상을 바꾸려는 그들의 야심은 다른 사람들을 못살게 굴고 그들 자신만 빼고 모든 이들의 후견인이 되려는 무서운 습관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나는 그렇게 똑똑하지 못했지만, 꽤 좋은 글들을 쓸 수 있었고 온통 이상주의로 가득했으며, 젊고 정치적으로 의식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자신이 해방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두렵게도 꽤 부풀은 머리뿐이었습니다. 로마서의 그 12장을 계속 읽으면서 나는 초기 1920년대의 시절을 기억하면서 수치감을 금치 못합니다.

그러나 과거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나의 어머니는 그 점에 대해 조심하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지나가버린 것에 대해 집착하는 것은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건 진짜 현재로부터 미래로부터 시간을 훔치는 것이지요. 당신이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을 믿는다면, 당신의 과거를 놓아버리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그분의 용서를 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를 계속 후회하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어떤 한 여인은 자신이 가톨릭이 될 자격이 없다고 늘 말하곤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살면서 말하고 행했던 모든 엄청난 것들 때문에 특히 젊은 시절에 저질렀던 일 때문에 그리스도교는 그와 상관없는 것이라고 말했지요. 나는 그와 이런 자만심에 대해 말하고 자만심에서 비롯되는 유해한 많은 형태들을 보여주려고 애썼으나 그는 완고했어요. 불행하게도 나는 그녀가 자신이 얼마나 현명한가에 대해 아직껏 매달려 있다고 생각했으며, 바오로 사도가 말하듯이 그가 자신의 초기 삶에 대한 분석만 중요하다는 집착에 빠져 있다고 느꼈습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자신의 선에 관한 한 지나치게 똑똑하지요.”

그는 말을 멈추었고, 눈살을 약간 찌푸리더니 웃었다. 그는 그 훌륭한 로마서 12장의 또다른 부분을 지적하고자 했다. 그는 그곳에 앉아서 성서를 들고 읽고 있었다; 그리고나서 환대의 집에 사는데 좋은 안내가 된다고 생각되는 구절들을 크게 읽었다:

나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으로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과대평가 하지말고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정도에 따라 분수에 맞는 생각을 하십시오. 사람의 몸은 하나이지만 그 몸에는 여러 가지 지체가 있고 그 지체의 기능도 각각 다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수효는 많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각각 서로 서로의 지체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총의 선물은 각각 다릅니다. 가령 그것이 예언이라면 자기 믿음의 정도에 따라서 써야 하고 그것이 봉사하는 일이라면 봉사하는데 써야하고 가르치는 일이라면 가르치는데 써야 하고 격려하는 일이라면 격려하는데 써야 합니다. 희사하는 사람은 순수한 마음으로 해야 하고 지도하는 사람은 열성을 다해서 해야 하며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사랑은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악을 미워하고 꾸준히 선한 일을 하십시오. 형제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고 다투어 서로 남을 존경하는 일에 뒤지지 마십시오.

이 구절들은 무엇보다도 환대의 집들을 이끌어 주는 ‘철학’을 지니고 있다고 데이는 지적한다. 나는 계속 이 철학에 대해 자세히 일러달라고 부탁했으며, 그는 아빌라의 데레사와 아씨시의 프란치스꼬 그리고 성서를 말했으나, 나는 질문을 계속하였다. 아마도 이 환대의 집에서 보았던 삶에 더 현대적인 근거를 연결시키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그가 로마서 12장을 읽으면서 보인 강한 느낌, 바오로 사도의 이 말들에 보여주는 분명한 헌신은 마침내 나로 하여금 이 “현대” 여성이 철저하게 성서적인 감수성에 의해 인도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도로시 데이는 나에게 “가라앉는” 순간마다 어떤 필요나, 그를 두렵게 했던 자포자기 때문에 성서로 가는 자기자신을 발견한다고 수 차례 말했었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가? 왜 그는 자신이 신구약을 사랑하고 의지한다는 사실을 두려워했는가?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나는 보통 두려웠습니다. ­ 지금 살고 있는 새로운 삶을 위해 내가 떠났던 삶을 두려워했지요. 나는 어떤 의미에서 홀로 있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었습니다. 나는 변화를 갈망했으나 또한 변화를 두려워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뉴욕에서 환대의 집을 만든 후 살게된 삶을 그전에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딸을 데리고 도망가고 싶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진짜는 도망가고 싶지 않았지요. 이런 점이 두렵다는 의미입니다. 나는 불안했고 무서웠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 머무를 것이고 내가 필요로 하는 일을 하려고 했습니다.

언제나 불안정하고 안절부절 할 때마다 나는 성서를 읽습니다. 먼저 성서가 내 마음에 떠오르고 그러면 성서를 잡아서 읽습니다. 아마도 이런 모습이 미신적이거나 유치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때때로 나는 눈을 감고 어떤 페이지에서 내 손이 떨리도록 놓아둡니다. 그리고나서 눈을 뜨고 첫번째로 보게 되는 부분을 읽습니다.

나는 그날 내가 보아야 할 필요가 있는 부분을 보여주는 분은 하느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난 성서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었지만, 그저 우연하게 이 페이지 저 페이지를 열고 읽은 것을 내 삶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연결시키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한번은 우연히 로마서 12장이 이틀씩 계속해서 내 책상위에 펼쳐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책을 그렇게 열어놓았던 것으로 생각했으나, 아니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누가 내 성서를 읽고 있었는지 모든 사람에게 물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바오로 사도의 두 번째 서간을 읽어야겠다고 깨달았습니다.

이 서간에서 그는 문자와 영 사이의 차이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마치 탐정처럼 행동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하느님께서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고자 하신다는 것을 믿기가 두려워 그랬던지 모릅니다. 그러나 누가 하느님이 그처럼 가까이 계시다고 감히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성서는 이런 삶의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이겨낼 수 있도록 나를 도와주고 이곳에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상기시켜 줍니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을 때는 그리니치 빌리지에 작은 아파트를 갖는 것을 그려봅니다. 맨 꼭대기 층의 아파트에 해가 비치고 하늘이 잘 보이며 온갖 풀과 책들, 그리고 아마 고양이 한 마리, 안락한 의자와 나만의 부엌, 그곳에서 나만을 위해 때때로 요리를 할 수 있는 아파트를! 나는 커피를 즐기며 읽고, 그래요, 담배 피우는 자신을 그립니다.

오 하느님, 나는 형편없는 담배장이였어요. 아직도 내 폐가 남아있다는 사실이 놀랍지요. 나는 점차, 완전히 끝장나기 전에 담배를 그만 두었어요. 그러나 나는 그런 생각 때문에 나 자신을 사악하다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 자신이 이기적이고 버릇이 엉망이라고 생각하곤 했어요. 내가 누렸던 안락함을 결코 누려보지 못했고 그런 것들을 기억하면서 혼동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 얼마나 많은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그와 같은 비교로부터 자신을 놓아주기에는 너무나 가혹했다. 그는 결코 구제될 수 없이 절망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자신을 위한 대안적 삶을 정교하게 그려낼 수 있다고 자기자신과 나에게 지적하였다. 우리모두는 있어야 할 더 나은 자리를 그려볼 수 있다는 말이었다.

 

[원출처] , Robert Coles, 1987
[번역문 출처] <도로시 데이, 뿌리로부터 온전히 살다>(<참사람되어>2002, 7월호)

 

로버트 콜스(Robert Coles)

하버드 의과대학의 정신의학과 및 사회윤리학과 명예교수. 청소년 문제 상담 전문가로 활동해 왔으며, 50여 권이 넘는 책을 집필한 작가. 1973년 미국의 다양한 계층과 인종의 아이들을 직접 취재하고 분석한 <위기의 아이들>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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