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와 목공이 왕과 여왕처럼 살아가는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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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와 목공이 왕과 여왕처럼 살아가는 공동체
  • 로버트 콜스
  • 승인 2021.07.12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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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콜스의 [DOROTHY DAY, A RADICAL DEVOTION]

도로시 데이도 많은 측면에서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는 우리 대화를 계속하고 싶어했다. 그는 시몬 베유에 대해 말했는데, 베유가 지은 「뿌리의 필요」가 근본적이고 암시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시몬 베유가 현대의 중앙집권적인 국가와 나름대로 끝도없이 뻗어가는 “국가들”인 대기업들을 얼마나 비판적으로 다루었는지 나에게 상기시켰다.

그는 그러한 상황아래서 보통사람들은 자신들이 매일 하는 노동에 대해 통솔감을 잃는다고 하는 베유의 주장에 동의했다. 이것은 맑스가 말했던 “소외”가 아니다. 도로시 데이는 얼굴에 엷은 미소를 띄고 이런 상황은 프롤레타리아의 독재에 길을 터주고 국가가 소유한 거대한 공장과 대기업 농장의 방식을 도입하는, 더 발전된 자본주의의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중앙집권적인 국가와 대기업이 지배하는 상황에서 상실되는 것은 구체적 개인들의 인격적 권위이고, 끊임없이 이념적이고 실질적인 옹호를 요구하는 사회의 가장 바닥 “조직”인 가족의 권위이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공동체에 대한 명확하지 않은 토론으로부터 지역정치의 특징을 규정 지을 수 있는 구체적인 토론으로 옮겨갈 수 있도록 시몬 베유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지 토의하였다. 우리는 「뿌리의 필요」에서 시몬 베유가 보수적인 생각과 진보적인 사상들을 신비스럽게 섞어놓았던 것을 기억하였다. 베이유는 국가의 전통과 관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한 나라의 시민들이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중심적인 기관들을 지지한다. 도로시 데이는 사람들을 한데 결속시키는 기관들 중의 하나로서 교회가 시몬 베유의 지지를 받는것을 보고 싶어했다. “아, 난 그가 가톨릭 교회를 즐길 수 있었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은 당신 자신뿐만 아니라 교회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말하자면 하느님은 교회를 통하여 살고 계시지요. ”그러나 시몬 베유의 신비주의는 교회를 우회하였다. 실상 그는 세례받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도로시 데이처럼, 시몬 베유도 국가주의의 우상적인 측면과 그것이 종교적 믿음을 “전능자와 동등한 위치에 있는” 어떤 지배적이고 세속적인 믿음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인정했다. 베유는 또한 노동자들 위에 군림하는 거대한 기업회사들의 권력을 두려워했다. 그런 기업들 아래에서 피고용인들은 노예 아니면 빚에 팔리는 노동자들로 전락하였다. 시몬 베유가 공장에서 노동자로 보낸 시간은 지식인의 예감에 불과했을 이런 상황을 실제로 확인해주었다. 그것은 조립작업에서 일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느끼는 인격적 권위의 상실과 자신들의 익명성 그리고 소모성에 대한 비참한 인식이라는 상황이었다.

다른 한편 1950대 초기에 우리들이 함께 말하고 있었을 때 그는 시몬 베유가 먼저 대공황 최악의 시기에 관찰했던 1930년대 초기의 자본주의가 대부분의 노동자들에게 더 엄혹하고 더 비하적인 자본주의로 대체되었다는 사실을 재빨리 인식하였다. 그러나 도로시 데이는 「뿌리의 필요」에 나오는 시몬 베유의 비판들 가운데 어떤 부분들은 아직도 꽤 많이 적용된다고 주장했다.

베이유는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기를 바란다고 생각했다. 그는 현대국가들이,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혹은 파시즘적이든 간에, 사람들이 긴급하게 갈망하고 요구하는 공동적인 고리들을 말살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개인들의 권위가 지역 연합체들에 의하여, 사람들이 얼굴을 맞대고 확인할 수 있는 지역모임에 참석함으로써 인정 될 것이라고 믿었다. 시몬 베유는 이웃간의 작고 생명력 있는 연합체들, 고대 의미의 폴리스의 부활을 주장했다. 마을들, 지방들, 구역들은 남녀들, 아이들의 마음에 지속적인 자리를 차지할 것이고 활력 있는 시민생활에 기여할 것이었다. 가끔씩 하는 선거나 큰 연설 혹은 현수막 슬로건 대신에, 일상의 결속을 그렸는데, 그것은 가족이 가족과 관계하고 노동자가 노동자들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고 강화되는 것으로, 사람들의 뿌리에 그런 체험이 합쳐질 것이었다.

도로시 데이는 이런 생각들을 유토피아라고 보지 않았다. 우리 모두는 그가 다음과 같이 표현하는 것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희망하고, 꿈꾸는 책임을 ... 상상은 우리 삶의 한 부분이며 실제의 한 부분입니다. 사람들은 늘 우리의 이상주의에 대해 질문을 합니다. 아, 만일 우리가 우리의 비현실적 태도에 대해, 우리의 평화주의와 무정부주의적인 견해에 대해 받는 모든 비판과 평가마다 1불씩 받는다면. 우리는 그 말이 갖고 있는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무정부주의자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자신의 규칙과 예식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늘상 법에 순종하고 세금을 내며 좋은 사람들이 되려고 합니다. 좋은 시민은 인권헌장을 사용하고 그가 믿는 것이 진실이라고 말하며 그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나눕니다. 좋은 시민은 민주정치에 참여하며, ­어떤 큰 인물들­에게 자신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맡기지 않습니다.

“우리는 워싱톤시가 아메리카의 도덕적 수도라고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돈을 가져오는 사람들은 세금공제를 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정부에 비영리기관으로, 세금 면제대상 기관으로 등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를 날카롭게 지켜주시고 재빨리 우리의 잘못을 알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워싱톤이 하는 그런 감시에는 별 감명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메리카 시민으로서 우리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워싱톤에 눈을 고정시키고 우리 신문 독자들에게 정부가 무엇을 하고 있으며 왜 그렇게 하고있는지 말하려고 노력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정치를 알고 싶다면, 역사서를 보고 이 나라의 초기역사에 대해 읽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작은 공동체들이 그들 자신을 조직하고, 사람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사람들을 보살피고, 국가가 무엇을 하기를 바라는지 또한 그들이 무엇을 믿고 있는지 알리기 위하여 함께 모이기를 바랍니다. 무관심은 게으름처럼 죄입니다. 왜 우리는 어깨를 움츠리는 것이 현실적인 태도이며, 연방관리들의 관료적인 권력에 무관심을 표현하는 것이, 혹은 교섭을 벌이고 있는 회사간부들처럼 행동하는 노동조합 임원들의 권력이 유일하게 건강한 대안이라고 생각해야합니까?

“내가 과장된 질문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우리나라의 창립 선조들이 이곳에 와서 정착시켰던 공동체 안에서 하려고 했던 것, 즉 하느님을 경배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농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목공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돌봤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께 기도했고 아메리카로 길을 보여주시는 그분께 감사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톨릭일꾼운동의 영향에 대하여 묻습니다. 그리고 불란서, 러시아, 영국작가들, 철학가들, 소설가들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옳습니다. 그러나 우리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그냥 순수한 아메리카 사람들로서 선조들은 노동하는 사람들이었고 작은 마을이나 시골의 공동체들 혹은 도시의 이웃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점점 더 공동체 정신이 사라져 가는 것을 보고 있으며, 그것이 지나가는 것을 슬퍼합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우리가 공동체를 다시 발견하려고 애씁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의 길에 들어서게 된 다른 이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그는 설교가 아니지만 약간 긴 연설을 했다. 그는 더 개인적인 이야기로 말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의 사람들을 기억하면서, 자신이 어렸을 때 알았던 아이들, 부모의 친구들, 그의 남자형제들, 여동생에 대해 말했다. 그는 한 식료품 가게를 기억했는데, 주인은 그가 어머니 심부름을 하도록 허락해 주었다. 어떤 방법으로든지 주인은 기록을 하고 있었고, 그는 계산을 보자고 하지 않았다. 가게주인은 그를 알고, 그의 부모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인은 그를 믿었고 가게에 사러오는 모든 사람을 믿었다. 그는 70나이에도 여전히 가게의 ‘다양한 물건들’을 기억할 수 있었다 ­ 사탕, 치즈, 큰 절인 오이 병, 장난감들 그리고 물론 신문과 잡지도. 그와 친구들은 가게를 들락날락했다. 가게를 소유하고 있는 부부들 눈에는 그들이 왕과 여왕처럼 보였다. 왜? 대답은 헤아려 보기가 어렵지 않았다. 아이들은 서로를 알고있는 가족의 아이들이었고 가게주인에게 그 가족들 모두는 다 익숙한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사람들의 관계는 너무나 친밀하고도 강력했으며, 그곳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둘레가 아주 잘 만들어진 세계를 인식하게 해 주었고,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그들을 쉽게 알아본다는 느낌을 주었다.

“너무나 많은 낯선 사람들이 있는 세계에서 사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하고 그가 말한 적이 있다. 어느날 오후 우리가 또다시 지역주의의 문제에 관해서 맞붙어 있었을 때였다. 그는 생기 있게 자신의 정치가 “공동체생활을 추구하는 것이며, 이 공동체생활은 산상수훈에 충실하려는 생활”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더 많이 그런 공동체들이 만들어지면 지역정치가 활발해 질 것이고 더 많은 삶들의 질을 높이는데 영향을 미치고, 그리하여 전 국가에 영향을 미치기를 기도한다고 설명했다.

 

참으로 그는 꿈을 꾸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그렇게 좋게 말하는 공동체들이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들은 한 손만큼의 반대자들에 의하여 전체가 흔들려왔다. 아무런 영향과 권력도 없으며 제국을 차지하는데 전혀 관심도 없는 것 같은 사람들에 의해서. 그는 나에게 그런 사람들이 했던 것은 증언하는 것이고 올곧게 서는 것이며 신앙 속에서 공동체 속에서 함께 복닥거리는 것이었다고, 예를 들면 예수의 초기 추종자들과 같은 사람들이었다고 상기시켜 주었다.

도로시 데이에게 예수가 갈릴래아를 걸었던 것은 바로 어제였고, 우리 모두를 그분께로 부르기로 결정하는 순간은 멀지 않았다. 그런 식의 대화는 도로시가 나에게 그의 신비적인 신앙을, 하느님께 느끼는 친밀감을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내가 이런 측면에 대해 물었을 때, 그는 내가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나는 우리 공동체가 시간과 공간 속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또한 신앙의 공동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때로 시간은 우리를 비추는 것을 중단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수세기 전에 살았던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삶이 지금부터 수세기 후에 살아갈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주기를 희망합니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말한 것처럼, 이것은 위대한  ‘있음의 고리’입니다. 그리고 나는 우리들의 일이 이 고리의 아주 작은 우리 부분을 유지할 수 있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것이 한가지 종류의 지역주의이며 하나의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즉 그 고리가 연결되고 부러지지 않도록 당신의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우리의 팔들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이웃이 되려고 하며 그분의 원칙들을 분명히 말하려고 노력합니다. 그것은 일생이 걸리는 일입니다.”

 

[원출처] <Dorothy Day, a Radical Devotion>, Robert Coles, 1987
[번역문 출처] <도로시 데이, 뿌리로부터 온전히 살다>(<참사람되어>2002, 7월호)

 

로버트 콜스(Robert Coles)

하버드 의과대학의 정신의학과 및 사회윤리학과 명예교수. 청소년 문제 상담 전문가로 활동해 왔으며, 50여 권이 넘는 책을 집필한 작가. 1973년 미국의 다양한 계층과 인종의 아이들을 직접 취재하고 분석한 <위기의 아이들>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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