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5일
오늘 오후에 나는 집 당번이었다. 점심때는 별탈 없이 지나갔다. 1시경이면, 1층은 거의 사람이 빈다. 낸시 수녀가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에밀리는 고기를 사러 정육점에 갔다. 벨이 울리고 나는 문가로 갔다. 죠디가 그곳에 서 있었다. 내가 무서워하는 몇 사람이 있는데 그중 죠디가 제일 무서웠다. 어떤 경우에라도 죠디가 안에 들어오면 큰일난다. 그는 그저 너무나 위험스러운 인물이다.
나는 죠디에게 문가에서 물러나라고 눈짓하고 내가 밖에 나가 얘기하겠다고 하였다. 그는 한 발자국 물러섰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등뒤의 문을 닫기 시작했다. 그러자 죠디는 칼을 꺼내어 문을 완전히 닫으면 내 목을 찌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미처 움직이기도 전에 문은 이미 닫혔고 우리들은 밖에서 얼굴을 맞대게 되었다.
죠디는 심하게 약을 먹은 상태였다. 난 농담을 지껄이려고 하였다. 나는 나 때문에 그가 몇 년 동안 감옥에 가 있을 만한 가치도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웃었다. 바깥은 추웠으나 내 얼굴에는 땀이 비오는 듯 하였다. 죠디는 멜빌의 모비딕에 대하여 그리고 나선 호우손의 주홍편지에 관하여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 책들에 나오는 상징주의에 대하여 무얼 아느냐고 물었고 나는 그 주제에 대하여 아는 바가 거의 없다고 답변했다.
아메리카 문학에 대한 분석을 해 가면서 그는 칼을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15분이 지났고 난 들어가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좋은 녀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곤 떠났다. 난 문을 열고 안에 들어와 잠시 앉았다. 난 그를 더 이상 보지 않기를 기도했다.
3월 6일
내 방의 난방이 3일 동안 꺼졌다. 샤론이 며칠 동안 자기 아파트에 와 있으라고 초대했다.
샤론의 아파트에는 방이 두 개 있고 목욕탕도 있다. 앞의 방이 침실이고 거실이고 또 부엌으로 사용되고 있다. 두 번째 방은 “그리스도의 방”으로 누구나에게 열려 있다. 샤론은 끊임없이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때로는 가족들까지 초대한다. 아파트에는 거의 해가 들지 않는다. 유리창은 벽들을 향하여 열려 있다. 접시는 싱크대에 쌓여 있고 식당의 식탁에는 종이들과 쓰다 남은 차봉지가 수북하다. 침대는 마루에 놓여 있다. 샤론에겐 전화가 없다.
난 몇 분 동안 깨어 있었다. 어떤 사람이 문을 두들겼다. 샤론이 침대에서 일어나 대답한다. 패트릭이라는 친구가 급히 달려와 샤론과 얘기하고 싶어한다. 패트릭은 안에 들어와 테이블가 의자에 앉는다. 지난번 왔을 때도 그런 것처럼 그가 몇 초 동안 숨을 가라앉힐 동안 샤론은 차 한잔을 대접한다. 이야기들은 두서가 없다. 패트릭은 피곤하다. 그는 눈가가 무겁고 색깔도 어둠침침하다. 그의 얼굴은 창백하다. 샤론도 피곤해 보였다. 그는 가라앉은 그의 기분을 돋구어 주려고 그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그가 느끼는 혼란스러움을 잘 보살피고 있다. 이곳에 일년이나 이년쯤 있었던 봉사자들은 공동체 집 바깥에서 가난한 이들 사이에 살아본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난 샤론에게 전화가 없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어제 내가 집을 맡게 되었을 때, 수천 번씩이나 전화를 받아야 했던 것이다. 대부분의 전화는 집에 있지 않은 어떤 사람과 (그러나 당신은 그 사람이 집안 어느 구석에 있는지 찾아보고 확인해 봐야 한다) 통화하고 싶은 손님들에게서 걸려 오거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부탁 전화이었다. 먹을 것과 있을 곳을 부탁하는 요구는 교구 가톨릭 복지회나 시 복지과로부터 끊임없이 잇달았다. 우리는 너무나 작은 공동체인데 그들에겐 언제나 제일 먼저 부탁하는 대상이다. 전화보다 더 심한 경우는 밤에 잠자리를 얻을 수 있는가 물어 보려고 복지회에서 얻은 표를 갖고 아침 10시부터 문 앞에 나타나는 사람들이다. 지난밤에는 한 엄마와 젊은 딸이 있었다.
마크 H. 엘리스 / <피터 모린; 20세기에 살다 간 예언자>의 저자. 엘리스는 미국 텍사스 베일러 대학에서 유다학연구센터 소장으로 재직하면서 유다학을 가르치다 은퇴하였다. 그는 스무 권 이상의 책을 쓰고 편집했다. 그의 대표작은 <해방의 유다신학>, <거룩하지 않은 동맹>, <우리시대의 종교와 포악성>, <예언의 미래: 고대 이스라엘 지혜의 재현> 등이 있다. 그는 유대인이면서도 유대극우주의의 강력한 비판자로 알려져 있으며, 이스라엘의 미래를 팔레스티나와의 평화로운 연대에서 찾고 있다. 최근에는 <불타는 아이들: 가자지구 전쟁에 대한 유대적 관점>(2014), <추방과 예언: 새로운 디아스포라의 이미지>(2015)를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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