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회심
상태바
끝없는 회심
  • 웨인 심직
  • 승인 2016.07.18 17: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토머스 머튼과 함께 기도하며-7

<주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평생의 여정을 가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그 길에서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우리와 동반자가 되어 주신다.

<시작 기도>
내가 사랑의 자유로운 몸짓인 하느님의 은총을 받는 것과 그리스도께서 끊임없이 이 은총을 받도록 나를 초대한다는 것을 아는 것은 얼마나 큰 깨달음인가! 나의 하느님, 저에게 이 은총에 "예"라고 대답할 수 있고 일생동안 끊임없이 "예"라고 말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도록 용기를 주십시오.

머튼에 관하여

1938년 그 해는 토머스 머튼에게 잊을 수 없는 해였다. 그는 세례를 받고 가톨릭 신앙을 확신하였으며, 그 사건은 그로 하여금 ‘그리스도가 자신 안에 산다’는 압도되는 실체를 깨닫게 하였다.

“지금 나는 하느님의 생명과 영의 중력이 이끌어 가는 영원의 움직임 속에 들어 왔다. 그 분 자신의 무한한 본성의 깊이를 향하여 가는 하느님 자신의 중력, 그 분의 끝없는 선함, 어디에나 계시는 중심인 하느님은 아무런 경계도 없이 그리스도와의 협동을 통해서 사랑이고 성령이신 이 거대하고 놀라운 중력의 움직임 안으로 통합되시어 나를 사랑하셨다.” -<칠층산>에서

머튼은 육체적이거나 이성적인 것이 그의 삶의 공허함을 채울 수 없기 때문에 믿음의 길을 선택한다. 그는 그 자신을 넘어서는 어떤 것에 진정하고도 완전한 투신을 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머튼에게 로마 가톨릭은 그의 지적인 호기심과 신비에 대한 민감함을 만족시키는 새로운 생활방식을 제공했다.

머튼은 그의 영적인 추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십자가의 성 요한,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 리지외의 데레사, 로욜라의 이냐시오와 많은 사람들에 의한 고전적 영적 교재들을 읽었다. 이러한 독서는 영적인 변화에 대한 문을 열어 주었다. 내적인 긴급함이 계속하여 그를 진실과 사랑으로 끌어당겼다.

머튼은 거룩함에 대하여 늘 꿈꾸어 왔다. 이것은 그의 친구 밥 렉스와 가졌던 대화에서 가장 잘 조명된다. 그들이 뉴욕시의 6번가를 걷고 있었을 때, 렉스는 머튼에게 다가와 이렇게 물었다. “너는 어쨌든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니?” 머튼은 생각에 잠기며 대답했다. “나도 모르지만 나는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한다고 생각해.” 렉스는 그 물음에 쉴 틈을 주지 않고 머튼에게 진정으로 성인이 되길 원하는지 물었다. 예리하게 그의 죄를 알고 있던 머튼은 그의 친구의 말에 처음에는 당황하였다. 하지만 후에 그는 그의 친구의 관찰에 진실이 담겨 있다는 점에 동의했다.

머튼의 그리스도께로의 전향은 그가 겟세마니 수도원에 들어갔을 때, 또다른 극적인 발걸음을 내딛게 했다. 그는 마침내 그의 배고픈 영혼을 채울 수 있었고 묶인 정신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후에 의심과 혼돈의 시간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수도원에서의 생활은 그의 정신을 북돋우게 했으며, 그의 믿음을 강화시켰다.

“사랑은 나를 집안 주위로 항해하게 만든다. 나는 땅에 두 발짝, 하늘에 네 발짝을 걷는다. 그것이 사랑이다. 그것이 위안이다. 그것이 위안이라고 해도 상관이 없다. 나는 위안에 집착하지 않는다.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사랑은 나를 모든 주변으로 데리고 간다. 나는 사랑만큼 원하는 것이 없다. 종이 울릴 때면 나 자신을 바꾸는 데에 아주 무력한 느낌이다. 비밀의 사랑, 감추어진 사랑, 모호한 사랑이 내가 청하지도 않는 나의 안팎으로 끌고 다니기 때문이다.”

<멈춤>
하느님과의 친교에 대한 당신 자신의 부르심에 대해 생각해보라. 당신 마음의 문이 열리고, 생활의 나머지 모든 것이 하느님과 사랑에 빠지는 것, 그 다음인 것처럼 보일 때가 있었는가? 그때 당신의 응답은 무엇이었나?

머튼의 말

“그리스도적 믿음에의 전향 또는 정확하게 그리스도께 대한 나의 회심은 현대인과 그의 사회가 주는 현혹과 강박 관념으로부터 철저하게 해방되는 것이라고 늘 생각되었다. 나는 항상 믿음이 우둔하고 생각없는 대중사회의 예속 안에 자유와 지성이 흡수되는 것에 대한 유일한 방어막이라는 사실을 믿었고 또 계속 믿어왔다.

믿음은 지성에 완전한 만족을 주는 것이라고 기대되지 않는다. 믿음은 지성 자체의 깨달음 방식에 적절한 빛도 주지 않고, 모호함 속에 떠 있도록 놔둔다. 그렇지만 믿음은 지성을 좌절시키지도, 부정하지도, 파괴하지도 않는다. 믿음은 사랑의 안내 아래 지성을 아주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확신에 의해 지성을 평정시킨다. 믿음의 행위란 지성이 그 안에서 그 분을 사랑함으로써 또한 그 분이 자신의 말로써 자신에 대해 주장하는 것을 받아들임으로써 하느님을 알고자 하는 것에 만족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관상의 새로운 씨>에서

<성 찰>
집중성이 부족한데 대한 혐오감과 무의미하다는 자각이 커져가던 머튼은 그의 인생에서 커다란 공허감을 채울 필요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머튼은 그리스도를 근본적으로 선택했으나 이러한 회심, 혹은 하느님 안에서의 삶으로 전향하는 것이 그리스도께 “예”라고 일생동안 말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회심은 평생을 살면서 단 한번이 아닌 것이다.

기도, 독서, 성찰은 머튼으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 지속적으로 전향하도록 해주었다. 그는 또한 그를 그리스도께 향하게 하고 옛 생활을 청산하도록 하는 의식적이며 자주 어려운 선택들을 했다. 예를 들면 수도원에 들어가는 것은 확실하게 그가 알아왔던 세계를 떠나고 그리스도의 길로 향하는 극적인 발걸음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시작이었다.

물론 회심은 모든 이가 수도원에 들어가는 것을 요구하지는 않으나, 항상 우리의 우선순위, 자아에 대한 감각, 생활방식을 다시 정리하도록 요구한다. 우리는 기도와 묵상에 의해 풍요로워지는 예수님과의 관계에 뿌리를 두는 생활을 선택한다. 회심은 우리에게 다른 이를 사랑하고 특히 사회의 낙오자들을 사랑하도록 요구한다. 때때로 회심은 우리에게 악과 대항하여 예언자적 입장을 취하도록 요구한다. 그리스도의 새 생활 안에서 발견되는 기쁨은 지구상에 하느님의 주권을 세우는 모든 것을 기념하고 지지하는 가운데에서 넘쳐 흐른다.

당신 자신의 ‘신경’, 혹은 믿음의 목록 -당신 믿음의 시금석-을 작성해 보라. 각 문장을 “저는 믿습니다. ...”라는 어구로 시작해 보라. 당신 생활에서 절대적으로 확신하는 믿음들만 포함시키라. 당신이 믿는 것만 포함시키라.

당신에게 항상 말하고 있는 좋아하는 성서 구절들을 선택하라. 각 구절을 읽으면서 성서가 당신의 영적 여정에 개인적으로 말하고 인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마음 속에 새기라. 그런 다음 왜 각 구절이 당신의 믿음에 그렇게 생생한 양분이 되었는지 일기에 써 보라.

하느님에 대한 당신의 갈망의 모습, 절대적 의미, 무조건적인 사랑, 기쁨에 넘치는 희망을 체험하고자 하는 깊은 갈망의 모습을 그려보라. 당신 그림의 예술적 가치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 다만 그림이 이러한 갈증에 대한 당신의 자각을 반영하는 거울이 되게 하라.

다음의 질문들을 숙고하라. (당신은 일기를 쓰면서 응답하기를 원할지도 모른다.)

● 매일의 삶 속에서 나는 나의 믿음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나의 가족과 함께? 직장 생활에서? 더 큰 공동체 안에서?

● 나의 믿음은 내 방식대로 기쁜 소식의 전달자가 되도록 해 주는가?

우리는 죄인으로서의 우리 자신을 생각하기 싫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우리는 대개 우리 의도의 징표를 놓치기도 한다. 우리는 이기적으로, 시기심을 느끼며, 감사할 줄 모르고, 심지어는 적대적으로 행동한다. 믿음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는 믿음의 반대되는 것과 직면할 필요가 있다.

당신이 편안하게 느끼는 음악이나 노래를 부르라. 당신 자신을 하느님의 현존 앞에 중심이 되도록 허락하라.

하느님의 사랑이 당신 마음을 통하여 힘 있고, 역동적으로, 순수하게, 차가운 강물처럼 움직인다고 상상하라. 이 강의 둑을 보고, 물 속에 손을 담그고, 그런 다음 그 속에서 걸어 보라.

이제 강물이 천천히 흐르고, 떠다니는 잔해에 의해 방해받는다고 상상해보라. 한데 몰린 통나무들이 물을 소용돌이치게 하고 더럽게 만든다.

당신 생활에서 만들어진 ‘통나무 정체’나 방해물, 이기적인 성향, 탐욕, 격리, 망은에 대하여 생각하라. 하느님의 은총이 더 이상 자유롭게 흐르지 못할 때의 어두움과 무력감과 더러움을 느껴보라.

이 순간 당신 옆에 앉아계신 듯한 예수께 다가서라. 그분에게 당신의 느낌을 설명해 보라. 당신이 하느님의 사랑의 흐름을 막았던 때에 대해 그분께 고백하라. 예수께 도움을 청하라.

이제 음악을 들으며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휴식을 취하라.

당신의 믿음을 기념하기 위해 좋아하는 성가를 부르라.

하느님의 말씀

“이렇게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졌으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과의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지금의 이 은총을 누리게 되었고, 또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을 안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5,1-2)

<마침 기도>
하느님의 사랑은 따뜻한 미풍같이 저를 닦으시고, 제가 춥고 아플 때 저를 먹이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저의 위로이며, 기쁨입니다. 그것은 제 내면의 깊은 곳에 닿아서, 제 삶의 모든 면을 일치시킵니다. 저는 모든 기쁨의 시작인 믿음을 선물로 주십사고 기도드립니다.

 

(이 책은 1994년 미국 미네소타주의 세인트 매리 출판사에서 발간된 웨인 심직의 <Praying with Thomas Merton>을 <참사람되어>(2001.1)에서 편역한 것이다.-편집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