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무력한 이들과 무력한 이들의 연대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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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무력한 이들과 무력한 이들의 연대에서 온다
  • 돔 헬더 카마라 대주교
  • 승인 2021.04.27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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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마라 대주교와의 대화-마지막회

무력한 이들과 무력한 이들이 동맹을 맺는다? 권력가들과 초권력가들에게는 우스꽝스럽게 들릴 것이다. 그러나 겨우 아이에 불과했던 다윗을 골리앗은 잊어버렸는가?

비유들중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가난한 라자로와 부자의 이야기를 말씀하십니다. 부자는 그 자신이 만든 초호화판 안락과 사치로 질식당하고 있었으나 가난한 사람 라자로는 부자의 궁전같은 집 문가에서 굶주리며, 그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얻어 먹을까 헛되이 청하고 있었습니다.

만일 그 부자가 은총에 굴복하여 라자로를 불러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났었다면 어떨까요? “자 이리로 와서 내 식탁에 당신을 위해 마련한 자리에 앉으십시오 !” 그러면 그 가난한 사람은 부자의 집에 들어가기가 부끄러웠을 것입니다. 입고 있는 옷도 몸도 더러웠으니까요.

많은 사람들은 가난한 이들에게 깨끗이 씻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깨끗하려면 물이 필요합니다 (적어도 제 3세계에서 물은 가난한 이들에게 사치품입니다). 또 옷을 빨고 집단장에도 물이 엄청나게 필요합니다.

설사 부자의 권유에 힘입어 라자로가 상처투성이의 몸을 이끌고 거의 매일 차려지다시피하는 식탁에 마침내 앉았다고 합시다. 그러나 주인인 부자와 한 형제로서 이야기를 나눌만한 용기를 그가 감히 어떻게 낼 수 있겠습니까 ?

가난하고 무력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은 부자들에게 손을 내미는 거지로 다가갑니다. 적어도 비인간적인 조건속에서 살고 있는 세계 인구의 2/3의 사람들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 증오와 폭력에 돌아서라고 말하는 것은 어렵지만 필요합니다. 만일 가난한 이들이 부자들에 대항하여 무기를 들만큼 어리석다면, 그들은 즉시 박살이 날 것입니다. 무기는 돈 많은 억압자들이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억압받는 사람들 전체가 해방을 위한 전쟁을 시작한다면, 현재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권력자가 아닌 다른 초권력가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요청을 받은 그 초권력가는 무기와 군대를 서둘러 몰고와 억압받는 이들을 도와 승리를 가져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승리를 거둔후 그 초권력가가 자기집으로 돌아가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입니다. 승리의 열매를 안전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핑계는 그 초권력가가 그대로 남아 새로운 주인이 되가는 것을 정당화시킵니다. 

만일 북반구의 부유한 국가들이 제 3세계, 남반구의 국가들을 대화를 위해서 초대한다면, 그러나 그들의 의도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는다면, 복음서의 부자가 라자로를 초대하여 불가능한 대화를 나누고자 하는 것과 똑같은 경우가 될 것입니다.

북-남반구의 대화는 진정으로 형제적인 북-남의 대화를 전제로 합니다. 그렇지만 현재는 남쪽의 나라들이 회의나 대회 혹은 대화에 참여할 때면 항상 그 가난한 나라들의 부유한 엘리트들이 참여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처럼 북반구의 나라들은 남쪽 나라들을 분열시키는 놀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볼 수 있는 희망의 징조는 있습니다. 남쪽의 가난한 이들이 또 다른 남쪽의 가난한 이들과 결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각성입니다. 만일 무력한 이들과 연대하고 동맹하는 것이 어느날 실현된다면 - 이미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지만 - 그때에는 또 오로지 그때에만 비로서 북과 남의 진정한, 의미있는 대화가 가능할 것입니다.

제 3세계에서 라틴아메리카가 아프리카나 아시아에 비하여 더 현명하거나 더 정보를 많이 알고 더 능력이 많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틴 아메리카는 아프리카나 아시아에 대하여 무거운 책임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는 수많은 언어와 토착어들이 사용되고 있는 바벨탑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나라들은 거의 같은 언어 즉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페인 말과 포르투갈 말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는 또 다양한 종교들의 바벨탑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라틴 아메리타의 거의 모든 곳에서는 같은 그리스도교적인 감각이 통하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라틴 아메리카는 지난 1세기 반동안 정치적 독립(경제, 문화적 독립은 아니나)의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야 비로서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대다수 나라들은 이같은 경험을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조건들은 라틴아메리카로 하여금 희망의 징표가 되도록 격려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라틴 아메리카의 많은 젊은이들은 확고하고 부단하게 자신들을 훈련하면서 국내외적으로 식민주의를 증진시키지 않고 참다운 라틴 아메리카 통합을 위하여 애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목표는 유럽의 공동시장 체제처럼 새로운 경제블럭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라틴 아메리카는 제 3세계에서 다른 동료 국가들, 아프리카나 아시아 대륙에 명령을 내리는 지도자 역할을 주장할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

참다운 라틴 아메리카 통합은 무력한 이들과 무력한 이들의 보다 포용적인 연대가 이루어지는 것이며, 라틴 아메리카는 그 연대에 좋은 기초가 되고 그럼으로써 보다 순수하고 효과적인 북-남의 대화가 이루어 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아버지!
당신의 성령은 우리에게 바오로 사도의 입을 통하여
전 우주와 우리들이 당신의 자녀로서
새로운 탄생의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이 사실을 파악하고
확인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길은 너무나 어렵고
시간은 고뇌로 가득차 있어도
그것들은 참으로 값있는 고통들입니다 !
어떤 새로운 것이 태어나고 있습니다.
누가 알겠습니까 ?
남자들과 여자들이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고,
보다 정의롭고 보다 인간다운 세상이 태어나고 있는지

 

[출처] <까마라 할아버지와의 대화: 고통 한 가운데에서 희망을>, 참사람되어 1993년 3월호

돔 헬더 카마라(Dom Helder Camara)

"내가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면 사람들은 나를 성인(聖人)이라 부르고, 내가 가난한 이들에게 왜 먹을 것이 없는지 물으면 사람들은 나를 사회주의자라고 부른다"는 말로 유명한 브라질교회의 대주교. 라틴아메리카 해방신학의 산실인 브라질 레시페 신학교 교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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