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도 세상을 뜨는 구나

-황지우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혹한보다 강한 율법 사랑

힐렐은 바빌론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정은 가난했고 베냐민 지파에 속했는데 기원전 587년,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유다인들이 강제로 이주된 이래로 유프라테스강 기슭에 살아왔다. 그곳 마을 회당에서 토라(모세오경)에 나오는 히브리어 글자를 한자 한자 짚어가며 읽는 것을 배웠다. 그는 토라를 암기한 다음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하느님의 말씀을 담고 있으며 그 자신의 삶에 안내자가 되는 예언서와 노래, 그리고 다른 기록들도 마찬가지로 외웠다.

그는 어려서부터 다른 유다인들과 마찬가지로 ‘세계의 배꼽’ 이라 믿었던 예루살렘 순례를 꿈꾸었다. 그 소망을 억누를 수 없었던 힐렐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그 거룩한 도시를 향해 길을 떠났다. 로마인들이 포장해 놓은 길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 길은 황폐하였고, 도중에 순례자들과 병사, 때로는 강도를 만나기도 했다.

힐렐은 예루살렘에서 쉐마야와 아브탈리온이라는 유명한 랍비가 운영하는 ‘공부하는 집’에 들어갔다. 공부는 공짜였지만, 그는 빵과 잠자리를 구하기 위해 하루에 한 데나리온을 받으며 날품을 팔았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수입이었고, 하루도 쉬면 안 되는 액수였다.

하루는 눈이 너무 많이 내려 일거리를 찾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공부하는 집’도 문을 굳게 닫았다. 힐렐은 매일 아침 성전에서 외우던 기도를 떠올렸다. “오, 우리 아버지. 자비로우신 분이여. 우리 마음을 돌보셔서 우리가 당신의 토라에 기록된 모든 교훈 말씀들을 이해하게 하시고,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배우게 하시고, 듣게 하시고, 행하고 준수하게 하소서···”그의 율법에 대한 사랑은 혹한보다 강했다. 그는 창문 틀에 기어올라가서 저녁 내내 그의 두스승이 토라를 해석하는 소리를 경건하게 들었다.

그 다음날은 안식일이었다. 일찍 일어난 쉐마야는 “여기는 항상 밝았는데 오늘은 어둡군. 구름이 잔뜩 낀 모양이지?” 하고 의아해하며 창문을 보니, 그건 눈에 덮여 반쯤 얼어붙은 힐렐이었다. 서둘러 그를 끌어내려 몸을 비비고 난로 옆에 뉘었다. 그 순간 두 스승은 근심에 싸였다. 자신들의 율법을 어긴 것이다. 안식일에 무거운 것을 들고 비비고, 불을 피우고, 물을 데운 것은 금지된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두 스승은 즐거운 결론을 내렸다.

안식일이 당신에게 주어졌으나, 안식일에게 당신들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결론이었다. “노동을 사랑하라, 선생 노릇을 하는 것을 증오하라. 통치자들과 연줄을 찾지 말라.”고 가르친 쉐마야 밑에서 힐렐은 훌륭한 랍비가 되었다. 그리고 “네가 싫어하는 것을 네 이웃에게 행하지 말라. 거기에는 율법 전체가 있다. 그리고 나머지는 그것을 풀어가는 문제이다. 가서 그것을 배우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노인들의 종교와 바리사이 정신

그러나 랍비들이 모두 그들과 같지는 않았다. 대부분 보잘것없는 가문에서 공부로 성공한 랍비들은 무식한 대중에게 우월성을 드러낼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들은 ‘나의 주(랍비)’라고 불리었으며, 술장식을 단 긴 사제복을 입었고, 그들이 지나갈 때는 일하는 노동자들을 제외하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식탁에서는 상석에 앉았으며, 회당에서는 토라 두루마리를 등뒤에 두고 회중을 향해 앉았으며, 마을에서는 교사로 영향력을 끼치며 산헤드린(의회)과 같은 정치권에도 진출했다.

그 중에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대토지를 가진 사두가이파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로마 점령 세력에 협력했다. 그들은 제의적 순수성에 병적으로 집착했고, 더럽다고 선포된 사람이나 물건을 철저히 피했으며, 레위기에 기록된 정결례에 더상 세한 규정을 만들어 나가면서 유다 백성을 분열시키는 동아리를 이루었다.

요한복음서에 등장하는 니코데모는 바리사이파 랍비였으며, 산헤드린 의원이었다. 이른바 유다교를 대표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는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다. 습관처럼 밤늦게까지 공부하다 왔을 가능성도 있지만 요한은 니고데모가 ‘어둠’으로부터 왔음을 보여준다. 그는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 이라고 부른다. 그 까닭은 예수님이 기적을 행했기 때문이었다. 그 동안 예수님이 보여준 기적이라고는 가나의 기적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그가 예수님을 모세(“내가 너를 보냈다는 증거가 되리라.” 출애 3,12)나 예레미야(“내가 네 옆에 있어 너를 도와주리라.” 예레 1,19)처럼 취급했지만 그는 예수님의 말씀과 본질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완고하고 율법과 상식에 얽매여 있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단지 늙은이가 어찌 다시 어미의 자궁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겠느냐고 항변할 뿐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뜻은 ‘물과 성령으로’ 변화된 인격을 말하는 것이었다.

랍비들의 이야기에도 “개종자는 새로 태어난 어린아이와 같다.”는 말이 있지만, 그저 법적인 신분 변화를 뜻할 뿐이었다. 따라서 유다교는 ‘영적으로 거듭난, 이들의 공동체’인 그리스도교에 비한다면 단순히 육(肉)적인 종교일 뿐이다. 눈에 보이는 기적이나 보아야 믿고 율법에 들어맞는 처신인지 곰곰이 따져가며 인생을 논하는 구태의연하고 생명력이 없는 종교는 그래서 노인들의 종교인 것이다. 사제 가문에서 태어난 세례자 요한이나 힐렐과 같은 랍비는 그리스도교에 생생한 영감을 주지만, 대부분의 유다교 지배층은 기껏해야 어머니 뱃속 어둠의 공간으로 다시 들어가려고 발버둥치는 안타까운 종교가 된다.

성령이 낳은 참된 교사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는 교사야말로 “성령으로 난 사람”(요한 3.8 참조)이다. 바람이 제 불고 싶은 대로 불듯이 자유로운 정신만이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종교를 만들고 또 이끌어 갈 수 있다. 그래야 “너는 이스라엘의 이름난 선생이면서 이런 것들을 모르느냐?”(3,10)는 예수님의 질책을 면할 수 있다. 니코데모와 같은 사람들은 “구리뱀이 광야에서 모세의 손에 높이 들렸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높이 들려야 한다.”（3,14)는 이야기를 당연히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신 예수님이기에 영광 가운데 구름을 타고 승천하리라는 말로 알아듣는다. 그러나 요한은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예수님이 “자기들의 행실이 악하여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던”(3,19) 사람들에 의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높이 들린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들의 안녕을 보장해 주고 성공을 축하해 주는 기존질서에 익숙해진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종교는 자신의 죄상이 드러날까 봐 빛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은 빛이 있는 데로 나아간다.” (3.21) 고난을 감당하고, 새로움의 영이 부는 대로 몸을 맡기고 하느님께로 나아간다. 이 진보하는 자유정신이야말로 항상 인간과 세상을 새롭게 창조한다. 그러면 우리는 과연 어떤 교사이기를 원하는가? 안식일(굳은 법과 질서와 사상)에게 자신을 건네줄 것인가, 아니면 인간에게 안식일(자유를 주는 휴식)을 줄 것인가?

진리의 영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시는 하느님,
당신 말씀을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며, 배우게 하시고,
듣게 하시고, 행하게 하소서.

모태에서부터 내 안에 새겨진
당신 모습을 불러 일으켜
당신처럼 늙지도 주저앉지도 않으며
움직이고 변화하고,
생동하는 자유로운 생명으로 살게 하소서.

당신의 바람이 부는 대로
낯선 곳,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진보의 앞길을 여는 자 되게 하소서.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느님.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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