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가 우리를 도울 수 있을 까요? 대주교님의 삶에서 기도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아, 기도요! 기도는 생활의 순간순간에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하느님은 어디든지 계시지요. 밤낮으로 우리는 주님의 품안에 있습니다. 걷고 말하고 살아가며, 우리는 항상 주님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우리 안에 계시지요. 우리 안에 계시는 창조주와 말이 아니라 생각으로 바라보며 온갖 자연의 창조물과 대화한다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어떤 것에도 견줄 수 없는 힘이 됩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은 매우 독특하고 각자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보화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우리가 하나라는 사실을 믿는 것은 또 얼마나 큰 특권일까요! 나는 뉴만 추기경님의 아름다운 기도를 기억합니다.
”주님, 제안에 당신 모습을 이처럼 감추지 마십시오.
나의 눈을 통하여 바라보시고
나의 귀를 통하여 들으시고
내입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내발로 걸으십시오!주님, 가난하고 초라한 저의 존재가
멀리서나마 당신의 거룩하신 현존을
말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주님의 은총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이러한 진리는 매일의 정점인 미사를 통하여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우리는 미사의 참 주례자가 항상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기뻐해야 할 책임을 갖고 있습니다. 미사는 골고타 고난의 계속입니다. 오늘날 단 한가지 다른점이 있다면 그리스도가 더이상 죽으실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받는 아들이신 주님은 골고타에서처럼, 아버지를 찬미하고 감사드리며 우리를 대신하여 용서를 청하고 모든 장소와 모든 때와 모든 인류, 모든 종교와 창조물의 이름으로 기도를 봉헌하고 계십니다.
미사는 이처럼 높고 깊고 넓으므로 우리의 하루를 다 차지합니다. 미사를 통하여 모든 것이 봉헌되고 거룩해지며 성찬례가 되는 것입니다!
성모님을 우리 생활 속에서 중요한 위치에 모시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분은 피조물이지만 거룩하신 아드님과 우리들의 어머니로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성인들은 물론 절대로 하느님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들에게 삶의 모범이 됩니다. 아씨시의 프란치스코나 빈센시오 성인은, 우리의 구원자이며 형제이신 그리스도께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이러한 모든 기도는 우리를 자연과 피조물, 특히 이웃과 하나되게 해줍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하나로 합하셨던 사실을 어떻게 우리가 잊을 수 있습니까? 기도를 통하여 그리고 하느님의 은총 덕분으로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향하여 더욱 더 넓혀져 나갈 것입니다.
-주교님은 라틴 아메리카와 브라질의 다른 주교님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계십니까? 남미의 교회가 항상 권력자들의 편에 있다고 비난하는 소리도 많이 들립니다.
친구들이여, 여러분은 교회가 헬더 카마라와 함께 있는가 알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헬더 카마라가 교회와 함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나는 그렇다고 말합니다. 교회와 함께 있고 싶고 또 그렇게 희망합니다. 교회가 없다면 헬더 카마라는 없을 것입니다. 나는 주교도, 신부도, 그리스도인도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 신앙을 갖게된 기쁨이나 책임감도 못느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끔찍했을까요!
아시다시피 교회는 항상 아름답거나 순수하지 않습니다. 또 용감하거나 성실하지도 않습니다. 교회를 만드시면서 주님은 인간의 부족함을 껴안으셨습니다. 모든 잘못과 배반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항상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당신의 형제자매를 구원하러 오셨다는 기쁜소식을 성실하게 전달하여 왔습니다. 산상수훈이나 마니피캇은 항상 선포되어 왔습니다.
나는 살만큼 살아온 주교입니다. 여러분에게 확신을 갖고 말씀드립니다. 절대로 교회의 약함과 타협, 배신에 낙담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교회안에 거처하기를 포기하시지 않는 주님의 성령을 믿으십시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간을 억압하는 독재자들, 군인들, 고문하는 사람들, 또한 두려움 때문에, 안이함 때문에 그들과 야합하는 주교, 신부, 신자들을 보면 실망합니다.
그러나 나는 많은 남성과 여성, 젊은이들을 봅니다. 그들은 세상과 분리된 종교를 거부하고 인간해방을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내어 놓습니다. 그들 역시 교회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언제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확고하게 살아갑니다.
헬더 카마라는 하느님의 은총 덕분에 이러한 사람들축에 끼게 된 작은 씨앗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절대로 혼자가 아닙니다. 여러분도 혼자가 아닙니다. 주위를 돌아보십시요!
교회에 대하여 절망한다는 것은 그리스도께 대하여 절망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안에 산다는 것은 교회가 복음의 가르침에 더욱 더 충실하기를 항상 바라면서 산다는 것이겠죠. 그리고 이것은 다가올 모든 새 세대가 계속 고민하고 노력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출처] <까마라 할아버지와의 대화: 고통 한 가운데에서 희망을>, 참사람되어 1993년 3월호
돔 헬더 카마라(Dom Helder Camara)
"내가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면 사람들은 나를 성인(聖人)이라 부르고, 내가 가난한 이들에게 왜 먹을 것이 없는지 물으면 사람들은 나를 사회주의자라고 부른다"는 말로 유명한 브라질교회의 대주교. 라틴아메리카 해방신학의 산실인 브라질 레시페 신학교 교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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