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들을 경주에 두고, 혼자서 서울에 올라와 두리번거린 지 벌써 한 주일이 다 되어간다. 당분간 우리신학연구소에 머물면서 무남독녀 결이의 목소리는 전화로만 듣기로 했다.
“아빠, 거기서 뭐해?”
종알거리던 결이가 편지를 쓰면 거기서 받을 수 있냐고 묻는다. “그러엄. 편지 써서 엄마한테 보내 달라고 해!”
“그런데 아빠, 내가 편지 쓰면 할 말은 그것밖에 없을 텐데. 뭐냐면, ……아빠 빨리 오라고.”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은 발음도 경쾌한 ‘경주’로 이미 달려가고 있다.
벚꽃도 이미 한껏 폼을 내다가 순식간에 떨어져 버리고, 주택가 담장 위로 라일락이 다투어 꽃을 피우고 있는데, 며칠 동안 바람이 거세게 불고 하늘이 침침했다. 비 소식이 있던 그제 저녁에 인천 동암에 있는 ‘삶이 보이는 창’이라는 주점에 들렀다.
동암 전철역 앞 어수선하고 휘황찬란한 거리를 막 지나쳐 가면, 2층에 선배가 일하는 술집이 있다. 대학 시절에 가톨릭학생회에서 만난 써클 선배인데, 나중에 예수회에 입회하여 수도자로 살고 있는 선배다. 노동사목에 관심을 갖고 있던 그 선배는 한동안 ‘가톨릭노동청년회(JOC)’에서 활동하기도 했는데, 호주에서 신학 공부를 하고 돌아와 사제가 된 뒤로 수도회에 청원하여 인천에 노동자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명색은 술집이지만, 허름한 계단만 올라오면 카페 분위기가 아늑하고 쾌적하다.
남자수도자장상연합회에서 정의평화위원회 활동을 겸하고 있다는 선배는 자리에 없었다. 컴퓨터가 놓여 있는 창가에 앉아서 옆에 세워져 있는 책꽂이를 둘러보다가 문득 눈에 들어오는 책이 있어 집어들었다. 마종기 시인의 <그 나라 하늘빛>이라는 시집이다. 제목에 먼저 마음 이 끌렸던 것일까, 알 수 없다. 하늘빛이 매력적인 것은 삶이 끌어당기는 중력이 다소 가혹하게 느껴지는 까닭일지도 모른다. 복잡혼란, 뒤엉킨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갈망이 안나푸르나의 눈이 시리게 푸르고 흰 산정(山頂)을 쳐다보게 하는지 모른다. 그 시집에서 금강석 같은 글을 발견하였다. 시인은 제목을 ‘우화의 강’이라고 붙였다. 왜 ‘우화(寓話)’라고 했을까 그도 알 수 없다. 다만 현실에 없는 강(江)이라는 뜻일까, 가늠해 볼 뿐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이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 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과 친하고 싶다
시인은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과 친구하고 싶다고 고백한다. 어디 이게 그만의 바람이랴. 목숨 붙어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갈망하는 것을 시인이 대신 고운 언어로 찬찬히 말해 주고 있다. 나 자신은 그런 물길을 트는 사람이 되기에 부족해서 항상 부끄럽지만, 그래도 마음속에선 그런 사람과 친해지고, 호젓하고 쓸쓸하게 비 오는 저녁엔 술 한 잔 나누고 싶은 것이다. 그날 창밖에선 손톱만한 어린 은행잎들이 자글자글 모여앉아 비 맞고 있었다. 그들은 외롭지 않겠다, 생각했다.
요즘 우리신학연구소 사무실에 방을 하나 얻어 쓰고 있다. 대체로 비어 있는 연구위원회 방을 혼자서 쓰게 된 셈이다. 창문만 닫으면 적막해지는 무주나 경주와 달리, 겹창을 닫아도 사무실은 자동차 덜컹이는 소리가 소란하다. 그 소리는 주택가에서 아이들 떠드는 소리나 이따금 뭘 좀 사라고 스피커를 틀어놓은 차량에서 들리는 소리처럼 삶의 온기가 배어 있지 않아서 신경에 더 거슬린다.
부르릉 빵빵, 하는 소리에도 사연이 있다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그런 기대는 무리일 것 같다. 그 소리들이 아직 낯선 것은 아무래도 그런 소리들을 떠나 지냈던 시간이 꽤 길었던 탓이리라. 그래서 찾은 대안이 작게나마 음악을 틀어 놓는 것이다. 오늘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디에고 모데나(Diego Modena)가 오카리나 연주로 들려주는 〈Forever〉 등 잔잔한 안데스 음악을 흘려보내고 있다.
집을 떠나오니 ‘혼자’라는 느낌이 각별한데, 이를테면 유랑민의 심경에 젖어드는 것이다. 혼자서 아침에 눈을 떠서는 대충 가방을 챙겨 연구소에 오곤 하는데, 비교적 친숙한 얼굴을 보아도 예전에 가끔 서울에 와서 볼 때랑 느낌이 다르다. 그동안 경주가 내게 객지였는데, 이젠 여기 서울이 객지가 된 셈이다. 혼자서 밥 먹고, 혼자서 길을 걷고, 혼자서 일하고, 혼자서 다시 길을 걷고 전철을 타고, 혼자서 뭔가를 해야 한다. 그리고 혼자 누워 잠을 청해야 한다.
실제로 서울에 사는 다른 사람들도 어차피 많은 일을 혼자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인데, 이렇게 유난을 떠는 것은 아마도 내 영혼의 일부를 경주에 두고 왔다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내 영혼의 일부란 나도 모르게 식구들에게 묻어 놓았던 나의 정감 같은 것이 아닐까. 잠시 여기에 온 것이 아니라 꽤 오랜 시간, 그것도 자주 이렇게 지내야 한다는 사실이 주는 어떤 상실감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어제는 영등포구청 전철역 안에서 안데스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저문 강’이란 별칭을 쓰는 우리나라 사람이 끼어 있는 ‘그룹뽀’라는 5인조 그룹인데, 마침 앞자리가 비어서 바로 코앞에서 음악을 들었다. 음반으로만 듣던 곡을 그네들 민속악기로 연주하는 걸 직접 듣게 된 것이 행운인가, 싶다.
에콰도르 사람들이라는데 그네들의 인상이 참 착해 보이고 키가 유난히 작았다. 차랑고, 안데스 팬 플루트 등으로 연주되는 음악은 신명이 돋아 있었고, 나는 나도 모르게 연신 손장단 발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예전부터 라틴 음악 자체가 주는 묘한 공감이 있었는데, 아마 해방신학의 영향일 것이다. 그네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미국이 지원하는 군부독재 정권 아래서 고난 받았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나는 어떤 식으로든 그들과 나를 이어줄 수 있는 무엇을 찾고 있었다. 이 이방인들과 더불어 위로받고 싶은 무엇이 있다는 것일까.
안데스(Andes)는 ‘하늘까지 계속되는 밭’이라는 뜻인데, 잉카 제국이 스페인에 의해 식민지가 된 뒤에 페루의 리마 대교구의 가톨릭 주교가 ‘악마의 장난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인디오 악기들을 불태워 버리라고 명령함으로써 그 전통문화도 박해를 받았다. 그 후 200여 년이 흐르고, 1700년 중엽에 스페인 학정에 대한 반란이 일어나는데, 주모자였던 인디오와 스페인 혼혈인 호세 가브리엘 콘도르 칸키는 스스로를 ‘투팍 아마루 2세(Tupac Amaru II)’라 칭하며 잉카 제국의 부활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그는 1781년 39세 나이에 스페인 군대에 사로잡혀 총살당한 후 사지가 찢겨지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 했다. 그가 죽어 콘도르로 환생해 안데스 창공을 날며 원주민 인디오들을 보호한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데, 이 이야기가 담겨 있는 곡 이 그 유명한 〈엘 콘도 파사 (El Condor Pasa)〉이다.
문득 콘도르가 푸른 하늘을 선회하는 장면을 떠올려 본다. 그 명징 한 눈매와 단호한 부리, 눈부신 태양을 뒤로한 채 그가 사랑했던 민중들의 머리 위를 원을 그리며 날고 있는 새. 그리고 대한민국의 전철 역사에서 팬 플루트를 연주하는 작고 까무잡잡한 이방인들의 얼굴이 여기에 겹쳐지면서, 묘한 슬픔이 배어 나온다. 삶의 고단함과 신명나는 음악 사이에 그들의 진실이 묻어나는 것 같다.
다시 인천으로 가는 전철을 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는 이의 뒷모습이 어둡게 빛나고 있다. 마치 마음 한켠에 ‘내 혼이 잠잘 때 나를 지켜보아 주고,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간직한 사람처럼. 그 한 사람을 위해 살고 있는 사람처럼.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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