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미술을 만나다》, 김현화 지음, 한길사 펴냄.
"이제부터 화가는 자연을 재현하는 기능인이 아니라 자연을 재창조하는 창조주가 된 것이다. 미술은 자연을 재현하거나 문학적 내용이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과 본질, 조형성의 법칙을 발달시키면서 형식주의로 나아가게 된다. 당연히 종교와 결별한다. 그러나 종교적 주제는사라지지 않는다.
19세기 중엽부터 현대미술이 교회와 멀어지고 있었지만 종교적 주제는 오히려 더욱 자유롭게 미술가들에게 채택되었다. 그들은 여전히 조잡한 이야기 전달에 치중하는 구상적 형상의 종교미술을 원하는 교회와 타협할 수는 없었지만 종교적 주제만이 인간 삶의 원천이라는 것을 익히 잘 알고 있었다.
화가들은 모더니즘 미술의 맥락 안에서 동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적합한 회화적 형식을 통해 종교적 주제를 다루게 된다. 그들은 기독교의 역할이나 교회의 목적을 위해 종교화를 그리지는 않지만 종교적 주제를 통해 구원을 간절히 희망하기도 하고 때로는 인간 실존의 문제에 화두를 던지기도 한다.
현대미술가들 중에는 독실한 신앙심을 가진 자도 있었지만 그들 대부분은 신앙심과 상관없이 불안한 시대적 상황과 정신적 불안을 자신의 감성과 결합시켜 종교화를 새롭게 재해석하고자 하였다.
'미술을 위한 미술을 지향하는 현대미술에서 종교는 예술가의 무한한 자유와 정신적 사유작용을 더욱 발전시켜주었다. 종교적 주제는 사회의 부조리와 불합리,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의 분출 등과 결합된다. 현대는 과거보다 더 복잡해졌고 인간 삶도 다양해졌다. 하나의 형식만으로 현대인의 다양한 욕구와 심리 그리고 복잡한 시대적 상황을 표현할 수 없게 되었다.
표현주의는 인간의 본능적인 통렬한 감정을 종교적 주제와 결합하였고, 초현실주의는 초실재의 환상과 신비를 종교의 환상적이고 초월적인 성격과 결합하였다. 또한 추상 미술가들은 추상적 형식 안에서 정신성을 추구하면서 종교의 의미를 끌어들였다. 이와 같이 성서는 현대인의 개인적 고통과 전쟁의 비극 그리고 철학적 사유작용에 은유되면서 미술의 주제로 끊임없이 다루어지고 있다."(31~33쪽)
"위대한 현대 미술가들은 교회를 떠났다. 그들은 종교에 얽매이지 않고 활기차게 다양한 형태와 주제를 탐색하며 발전해갔다. 20세기 미술사의 첫 장을 열었던 선구자적인 현대 미술가들은 종교미술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들이 종교에 관심을 가졌다면 자신의 삶과 존재에 대한 의문 때문이었을 것이다.
현대미술은 더 이상 교회와 아무런 관련이 없게 되었다. 세상 밖에서는 현대미술이 소용돌이치며 폭풍우처럼 몰아치는데 교회의 종사자들은 현대미술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전통적인 종교미술에 안주하고 있었다. 교회미술과 세속미술의 분열은 가속화되었고, 종교미술은 위대한 미술사의 흐름에서 밀려나 구태의연한 구상미술로 전락하고 있었다. 교회미술이 곧 위대한 미술이라는 과거의 명성은 휴지조각처럼 바람에 날아가버렸고, 위대한 서양미술사에서 이탈되어 한없이 추락하고 말았다.
교회미술의 쇠퇴는 교회 자체의 쇠퇴를 의미하기도 한다. 현대미술만 교회를 떠난 것이 아니라 현대인이 교회를 떠난 것이다. 시대의 급격한 물결을 따라가지 못하고 옛 명성만 붙잡고 있는 교회의 처지는 교회미술의 추락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교회미술을 쇄신시켜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다시 옛 영광을 회복해야 한다. 이 같은 절박한 위기감 속에서 프랑스의 성 도미니크(Saint Dominique) 수도회를 중심으로 위대한 교회미술의 부흥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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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냉혹하며 고통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사실 인생에서 슬픔과 고통, 불행한 순간이 행복한 순간보다 더 많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교회는 즐겁고 낙천적인 분위기를 만들기보다 구원의 약속을 더 강조하는 것이 절실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즐겁고 경쾌하기만 한 교회가 사람들의 아픔과 눈물을 어루만져줄 수 있을지 의문을 표했지만 마티스는 두려움 · 기적 · 신비 · 경외심보다 낙천적이고 즐거운 마음을 주는 것이 오히려 더 위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대 교회미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며, 동시에 현대 종교가 나아갈 방향도 새롭게 제시했다."(437~438, 447~448쪽)
조용종 프란치스코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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