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나웬: 기다리는 사랑, 지배하려 하지 않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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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나웬: 기다리는 사랑, 지배하려 하지 않는 사랑
  • 헨리 나웬
  • 승인 2020.12.01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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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나웬의 [기다림의 길] -마지막

부활은 단순히 죽음후의 삶이 아니다. 무엇보다 부활은 예수님의 받아들임, 그분의 기다림 속에서 터져 나오는 생명이다. 예수님의 고통의 이야기는 부활이 받아들임의 한 가운데에서도 터져 나오고 있음을 드러낸다. 유다스에 이끌린 군중이 겟세마니에 왔다.

“그러자 예수님은... 앞으로 나서시며 ‘너희는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나자렛 사람 예수를 찾소.’ 하자 ‘내가 그 사람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내가 그 사람이다’ 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들은 뒷걸음치다가 땅에 넘어졌다. 예수께서 다시 ‘너희는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나자렛 사람 예수를 찾소’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 ‘내가 그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너희가 나를 찾고 있다면 이 사람들은 가게 내버려두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요한 18,4-8).

수난으로 넘겨진 바로 그 순간에, 예수님의 영광은 드러난다. “너희들은 누구를 찾느냐?... 내가 바로 그다”라는 말들은 모세와 타고 있는 덤불이야기로까지 올라간다: “나는 곧 나다. 나는 나다, 라고 하는 바로 그분이다”(출애 3, 13-15).

겟세마니에서 하느님의 영광은 스스로 드러나고, 그들은 땅에 넘어졌다. 그러자 예수님은 넘겨졌다. 그러나 이 넘겨짐 속에서 우리는 이미 당신을 우리에게 넘겨주신 하느님의 영광을 본다.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영광은 부활뿐만 아니라 수난도 포옹한다.

“사람의 아들은”,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구리뱀이 광야에서 모세의 손에 높이 들렸던 것처럼 높이 들려야 한다. 그것은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3,14-15). 그분은 수동적인 희생자로서 들어올려지고 따라서 십자가는 황량함의 상징이다. 그리고 그분은 영광 속에 들어올려졌기 때문에 십자가는 또한 동시에 희망의 상징이 된다.

갑자기 우리는 깨닫는다. 하느님의 영광, 하느님의 거룩함은 예수님이 거의 전적으로 희생되셨을 때에, 바로 그 받아들임 속에서 예수님을 통하여 터져 나온다. 그래서 새로운 생명은 그분의 부활 속에서 볼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미 받아들임 속에서, 넘겨짐 속에서도 보게 된 것이다. 왜? 왜냐하면 받아들임 속에서 하느님의 사랑의 충만함이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기다리는 사랑이요, 지배하려 하지 않는 사랑이다.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우리 자신을 온전히 이 받아들임에 내놓을 수 있을 때에 우리는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생명과 만날 수 있다. 나의 아픈 친구와 내가 계속 던졌던 질문은, 그가 받아들임 한 가운데에서 새로운 생명을 맛볼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병원직원들에게 자신을 내어 맡기면서 이미 그가 더 깊은 사랑에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그 자신이 알 수 있을까? 그것은 모든 행동 그 밑에 늘 있었던 사랑이었으나 그 자신은 온전히 그 사랑을 맛볼 수 없었다. 그래서 함께 우리는 우리의 고통과 받아들임 가운데에서, 우리의 기다림 한 가운데에서 이미 부활을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기 시작하였다.

세상을 바라보자. 우리가 얼마나 그것을 지배할 수 있는가? 우리의 삶은 많은 부분이 받아들임이지 않는가?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우리의 행동을 좌지우지하는가. 사건들, 우리가 살고 있는 문화, 그리고 수많은 다른 요인들은 우리의 능력을 넘어서며 우리가 주도할 수 있는 여지를 거의 남기지 않는다. 이것은 특히 수많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 만성적으로 아픈 이들, 노인들 혹은 경제적 결핍을 겪는 사람들을 볼 때에 더욱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그들 자신의 삶에 대해 점점 더 결정력이 줄어드는 사람들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 삶의 대부분이 결국 받아들임과 관련이 있다는 의미에서 기다림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삶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지배하지 않는 것이 인간조건의 한 부분이라고 우리에게 말해준다. 그분의 소명은 행동뿐만 아니라 받아들임, 기다림 속에서 실현되었다.

이 메시지가 오늘날 우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보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이 당신의 거룩한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다면, 우리는 삶 속에서 어떻게 기다릴 것인가에 대하여 전적으로 새로운 관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늘 행동으로 돌아가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는 순명하는 사람들이 될 수 있으며 받아들임, 기다림 속에서 우리의 가장 깊은 인간성이 실현된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다.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우리가 하느님의 영광 그리고 우리 자신의 새로운 생명과 만날 수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러면 다른 이들에 대한 우리의 섬김은 그들이 행동에서뿐만 아니라 받아들임 속에서도 영광이 터져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포함할 것이다. 그러므로 기다림의 영성은 단순히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기다림만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우리를 기다리는 하느님의 기다림에 참여하는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인 가장 깊은 사랑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헨리 나웬(Henri Jozef Machiel Nouwen, 1932-1996)은 네덜란드 출신의 사제이며 영성작가. <상처받은 치유자로서의 사목자> <돌아온 아들> 등을 지었고, 마지막 10년동안 라르쉬 새벽공동체에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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