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머튼과 함께 기도하며-6
<주제>
내적 자유는 신이 아닌 것, 이기적이고 부주의하고, 방탕한 것, 간략히 말해서 죄스러운 모든 것에 우리가 예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직면하면서 시작된다. 우리는 하느님의 의지를 식별함으로써, 진정한 자아를 행함으로써 자유를 키운다.
<시작 기도>
오 하느님,
모든 진실과 진정한 자유의 근원으로 가는
저의 여정을 방해하는 방해물과 착각들로부터 저를 이끌어 주소서.
제가 무지와 편견과 이기적인 것의 속박을 끊을 수 있게 하소서.
오직 당신의 영과 함께 일치됨으로써
나는 진정으로 자유롭게 될 수 있습니다.
<머튼에 관하여>
자서전의 서론 문구에서, 토머스 머튼은 자유의 선물과 그 자유의 포기를 되돌아보고 있다:
"1915년 1월 마지막 날, 나는 스페인 국경에 있는 프랑스 산들의 그림자로부터 세계 안으로 들어왔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그림자를 보며 나는 나 자신의 광포함과 이기주의 속에 갇혀온 죄수였다. 나는 내가 태어난 세상의 모습대로였다." (<칠층산>에서)
머튼의 예속은 공립학교와 대학교시절에 시작되었다. 그는 그것이 자유라고 생각하며 제한 없이 사는 것, 그의 욕망에 따라 사는 것을 추구했다. 그는 여행했고 무책임하게 그의 상속 재산을 사용했고, 가리지 않고 쾌락과 열정을 찾았다.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무책임한 행동 때문에 캠브리지에서 그의 경력이 상실되고 대부가 그에게서 등을 돌린 다음에 머튼은 대서양을 가로질러 미국으로 가는 긴 항해 동안 과거의 죄들을 되돌아보았다:
"캠브리지에서 보냈던 그 해에 환상적 향락과 즐거움에 대한 모든 나의 꿈들이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다지 많은 성찰이 필요치 않았다. 얻었던 모든 것이 내 손안의 재로 변하고 내 자신마저도 지극히 불쾌한 종류의 사람이 되었음을 나는 쉽사리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헛되고 자기 중심적이고 타락하고, 약하고, 우유부단하고, 자제력이 없는, 호색적인, 음란하고 잘난척 하는 사람으로 끝났다. 나는 엉망이었다." (<칠층산>에서)
27세때 머튼은 그의 진정한 자유를 찾았다.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들어가면서 그는 과거의 집착들, 가치관, 편안함이라는 착각적 자유를 놓아 버렸다. 그의 새로운 자유는 자기 훈련과 자기 부정과 함께 왔다. 이 희생의 길은 그에게 더 완전하게 사랑하는 영적 자유를 주었다:
"나의 의도는 무슨 일이건 하느님이 내 안에서 나를 통하여 이루려하시는 것에 전적으로 아무런 타협 없이 나 자신을 주는 데 있다. 그러나 이 선물은 어떤 절대적으로 맹목적인 것도 아니고 개념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이미 하느님께서 나에게 관상적 소명을 주셨다는 사실에 의해 정의되고 있다. 그것은 사업, 야망, 명예와 쾌락 그리고 세상의 기타 활동들을 단념하는 것을 뜻한다." (<요나의 징표>에서)
참으로, 20세기 시토회의 베르나르드의 모범에 따르면서 머튼은 자유가 수도승의 기본적인 목표라고 생각했다: “베르나르드 성인에게 수도원의 기능은 재앙적인 환각(피조물에 대한 사랑 그 자체가 목적인)으로부터 인간의 사랑을 해방시키는 것이며, 하느님 자신이신 참다운 선으로 이끄는 것이다.” 수도원은 머튼에게 자유에 대한 학교였고 수도회의 자제 훈련은 자유로 가는 열쇠였다. 자기 훈련의 목표는 애덕이었다. 집착의 사슬을 툭 끊어 버림으로써 자유롭게 된 개인은 사랑을 줄 수도, 받을 수도 있게 된다.
<멈춤>
보다 큰 자유로의 당신의 여정과 그 여정 중에 가졌던 우회들에 대해 숙고해 보자.
<머튼의 말>
"나는 하느님의 완전한 가난이다. 나는 그분의 비움, 작음, 무, 잃음이다. 이 사실이 이해된다면 그분의 자유 안에 머무는 나의 생활, 내 안에서 하느님의 자기 비움은 충만한 은총이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그분이 은총의 충만함이기 때문에 아무런 이유가 없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그분이 하느님이기 때문에 이유를 모른다; 측량할 수 없는 사랑, 하느님에 대한 개별적이며 인격적인 사랑." (<숲, 바다, 사막>에서)
"나의 주님이신 하느님, 나는 어디로 가야할 지 알지 못합니다 나는 내 앞의 길을 보지 못 합니다. 나는 그 길이 어디에서 끝날 것인지도 확실히 알지 못 합니다. 내 자신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며 당신의 뜻을 따르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내가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을 기쁘게 하려는 갈망이 실상 당신을 기쁘게 한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하는 모든 일에 그런 갈망을 원합니다. 나는 그 갈망과 동떨어진 어떤 일도 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내가 그것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당신께서 바른 길로 나를 인도해 줄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길을 잃게 되고 죽음의 그늘진 곳에 빠지게 되더라도 나는 항상 당신을 믿을 것입니다. 당신께서 항상 나와 함께 계시고 당신은 나를 혼자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 것이므로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고독 속의 사색>에서)
<성 찰>
머튼은 자유의 부족이 우리 모두가 해방되어야 할 보편적인 조건이라고 가르쳤다. 머튼이 했던 진정한 질문은 ‘나는 행복합니까?’가 아닌 ‘나는 자유롭습니까?’이다. 원죄는 우리가 하느님이 보시는 대로의 실재를 보도록 해주는 순진함을 없애버렸다. 이제 우리는 진실을 숨기고, 우리의 관점을 왜곡하며, 우리를 노예화시키는 많은 환각들과 싸워야 한다.
사회의 많은 양상들은 자유에 대한 환각을 제시한다. 예를 들면, 우리는 많은 상품 중에서 어떤 한 제품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광고주들과 기업의 유혹과 의도에 의한 눈속임이어서, 진정한 자유를 상실하는 것이 너무나 쉽게 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행복을 창출할 수 있다고 믿음으로써 너무 쉽게 유혹에 빠진다. 갈대처럼 거짓 자아는 분리라는 바위의 토양에서 자라게 되며 우리의 진정한 특성이 하느님 안에서 발견된다는 깨달음을 방해하게 만든다. 자기를 찾는 활동에 주력하는 거짓 자아는 그것이 실제이며 본질을 갖고 있다고 믿도록 우리를 안심시킨다.
진정한 자아는 비옥한 땅에서 풍성한 열매를 기다리는 씨앗처럼 편안하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가장 깊은 내면의 진정한 자아로부터 그리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분리되는 자아를 발견할 때, 우리 안의 성령은 분리에 대한 회한, 소외의 느낌, 이에 따르는 분노를 하느님께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도록 하는데 이용한다. 참다운 중심, 깊은 자유를 마음은 갈구한다..
자유로 복귀하려면 희생과 '아니'라고 말하는 능력을 요구한다. 머튼은 우리가 이 자유를 가지기 위해 다른 형태의 자유를 포기한다고 가르쳤다. 다른 말로 하자면 우리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혼란시키고 파괴하는 모든 것들을 내놓는다.
자유는 또한 하느님이 우리에게 자유롭게 가기를 청하는 모든 길에 ‘예’라고 대답하도록 요구한다. 우리는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우리 존재의 깊은 데서 들리는 하느님의 요청에 응답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가져오는 치유의 힘은 모든 남녀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고, 외형적인 것에 의해 더 이상 지배되지 않는 전체적인 인간을, 올바른 자유에 의해 강화된 사람이 되는 은총을 준다.
☆ “머튼의 말”에 있는 기도를 읽고 당신 인생의 여정에서 불확실함을 느끼게 했던 사건들을 기억해 보라. 상실의 느낌과 방향에 대한 필요를 묘사하면서 하느님께 편지를 쓰라.
☆ 지난 며칠 동안에 대해 생각해 보라. 상황이 당신을 압도하고 자유를 잃은 것처럼 보였을 때를 생각해 보라. 아마 누군가 어떤 일을 당신이 하도록 부추겼을지도 모른다; 아마 당신은 충동적으로 물건을 샀을지도 모른다. 한 사건을 선택하여 다음의 물음에 대해 성찰하고 그것을 적어보라: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누가 관련이 있는가? 왜 그 일이 일어났는가?
내 느낌은 어떠하였는가?
그 당시의 상황을 다른 방법으로 처리할 수 있었는가?
어떻게 하여 나는 자유롭지 않았는가? 아니면 어떻게 속박되었다고 느꼈나?
이 사건에서 나는 무엇을 배웠는가?
☆ 더 큰 내적인 자유로 가는 당신의 길을 무엇이 막고 있는가? 짧은 목록을 만들라. 목록에서 한 가지에 집중하라. 그리고 당신의 인생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하느님이 요청하신 방법에 대해 성찰하라.
☆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를 그려보라. 당신이 할 수 있는 한 상세하게 마음속으로 이미지를 떠올려라(도움이 된다면 어떤 특정한 십자가상이나 십자가 처형 그림을 뚫어지게 응시해보라).
당신의 온 존재로 하느님께 ‘예’라고 대답하지 못하는 무능력에 대해 생각하라... 당신 자신과 하느님 사이의 간격에 관심을 집중하라...
이제 십자가상의 예수께 되돌아와서 당신 자신을 그분의 사랑에 눈뜨게 하라. 그 사랑은 당신 안의 빈곳을 가득히 채울 것이다... 예수께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오는 진정한 자유를 청하라.
☆ 촛불을 켜라; 당신 자신을 조용하게 하고 하느님의 면전에서 쉬어라.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한다.
하느님께 당신의 진정한 자아에 응답하는 자유를 달라고 요청하라.
하느님의 은총에 ‘예’라고 말하고, 사랑할 것에 ‘예’라고 하며 하느님의 뜻에 ‘예’라고 말했던 순간들에 대하여 감사하라.
성모송을 하라. 그 말들을 천천히 말하면서 하느님께 열린 마음으로 집중하라.
<하느님의 말씀>
"그런 자들은 당돌하고 거만해서 영광스러운 천사들에게 거침없이 욕설을 퍼붓습니다. 그러나 천사들은 그들보다 더 큰 힘과 권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주님 앞에서 그들을 헐뜯어 고발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자들은 물 없는 샘이며 폭풍에 밀려가는 안개입니다. 이런 자들을 위해서 깊은 암흑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허무맹랑한 큰 소리를 하며 그릇된 생활을 하는 자들로부터 가까스로 빠져 나온 사람들을 육체의 방탕한 정욕으로 유혹합니다. 그들은 남들에게는 자유를 약속하면서 그들 자신은 부패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정복을 당한 사람은 누구든지 정복자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 주님이시며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됨으로써 세상의 더러운 것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다시 거기에 말려들어 가서 정복당하고 만다면 그런 사람들의 나중 처지는 처음보다 더 나빠질 것입니다. (베드로 2서 2,11. 17-20)
<마침 기도>
해방하시는 하느님,
저는 당신이 저의 쓸모 없음에도 불구하고
저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를 눈멀게 하고 저의 자유를 빼앗는 쇠사슬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십시오.
당신이 그렇게 되라고 명하신 모든 것이
저에게 이루어지도록 허락하소서.
제 생활 안에서 보여지는 당신의 사랑과 아름다움의 모든 징표에
온전하게 변함없이 마음을 열도록 해 주소서.
(이 책은 1994년 미국 미네소타주의 세인트 매리 출판사에서 발간된 웨인 심직의 <Praying with Thomas Merton>을 <참사람되어>(2001.1)에서 편역한 것이다.-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