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자아로 돌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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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자아로 돌아가기
  • 웨인 심직
  • 승인 2016.06.28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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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머튼과 함께 기도하며-5
ⓒ한상봉

주제 :

우리는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되었고 거룩한 삶에 참여하도록 운명지워졌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과 우리의 깊은 자아 모두로부터 유배된 우리 모습을 발견한다.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참다운 정체성을 세우고 우리 삶의 여정의 목표가 되는 모든 실제의 근원으로 돌아가라고 요청한다.

시작 기도 :

모두를 사랑하시는 하느님,
제가 당신께로 빨리 돌아가게 하소서.
사랑스럽고 충실하며 희망으로 가득 찬
본래의 제 모습대로 만들어 주소서.
아멘.

머튼에 관하여 :

캠브리지 대학에 입학하기 전 토머스 머튼은 로마를 여행하며 대성전들과 교회들을 두루 다녔다. 그는 이 신성한 장소들과 모자이크 장식들, 프레스코 벽화들에 자신이 매혹됨을 놀라워했다. 어느 날 밤, 그는 중요한 계시를 받았다:

“나는 내 방에 있었다. 밤이었다. 빛이 보였다. 갑자기 그것은 나에게 1년 전 돌아 가셨던 아버지의 모습으로 나와 함께 있었다. 그가 나와 함께 있다는 느낌이 너무나 생생했고 마치 그가 나의 팔을 만지고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이 모든 것이 섬광처럼 지나갔으나 그 섬광 속에서 즉시 나는 내 영혼의 비참함과 퇴락에 대한 갑작스럽고도 심오한 통찰에 압도되었다. 나는 내가 처해 있던 상황을 깨닫게 해 준 그 빛에 깊히 뚫려진 것 같았고 내가 본 것에 대한 공포로 가득 찼으며 나의 온 존재는 내 안에 있었던 것에 반항하며 일어났고 나의 영혼은 이제까지 안 적이 없었던 전혀 다른 어떤 것에 대해 강렬하고 긴급하게 이 모든 것으로부터의 탈출, 자유, 해방을 원했다. 이제 나는 처음으로 나의 전 생활을 생각하고 진정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 입술로만, 나의 지력과 상상력으로 하는 기도가 아닌 나의 생활 밑바닥과 나의 존재 뿌리에서 나오는 기도, 내가 이제까지 안 적이 없었던 하느님께 기도하고 있었다.”(<칠층산>에서)

방종한 젊은 시절을 돌아보면서 머튼은 잘못되었고 이기적이었고 비어 있었던 자아에 대한 초기 인식을 설명하였다. 수도자로서, 그는 하느님께 다시 중심을 두는 것이 빠르지도 쉽지도 않은 것이라고 깨달았으며 이 사실이 그의 마음 속에 두려움을 일으켰다. 여정일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성찰하였다:

“나를 고독으로 몰아 가는 것은 두려움이다. 사랑이 나의 핏줄 속에 공포의 방울을 떨어뜨렸고 그것들은 내 안에 한기를 퍼뜨린다. 갑자기 나의 마음과 상상력은 사적인 우상 숭배에 빠지고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져 방황하므로 나는 두려움으로 쓰러진다. 나의 본성과 하느님 사이의 모순 때문에 나를 육체적으로 힘없게 만들고 굳어지게 만드는 것은 나의 죄악이다.” (<요나의 징표>에서)

멈춤 :

당신이 거짓으로 살고 있었을 때와 하느님이 필요치 않다는 환각 속에 기꺼이 빠져들었을 때를 기억해 보라.

머튼의 말 :

"나의 잘못과 개인적인 자아는 하느님의 뜻과 사랑 바깥에 - 실제와 삶 바깥에 존재하려는 자아이다. 그러한 자아는 도움을 줄 수 없고 단지 환각일 뿐이다.

우리는 환각을 깨닫는데 능숙하지 못하며 모든 이들 중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가장 소중히 여긴다. - 이 우리는 악의 뿌리에서 태어나고 양육된다. 세상의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가짜 자아보다 더 큰 주관적인 실체가 없다. 그러나 이 가짜 자아는 존재할 수도 없다. 이 가짜 자아의 그림자 숭배에 헌신하는 삶을 죄의 생활이라고 부른다.

... 나의 정체성의 비밀은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 안에 감춰져 있다.

그러나 하느님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참으로 그분과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의 무한한 단순함은 어떤 나눔도 구별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분 이외의 어느 곳에서도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없다.

궁극적으로 나 자신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 실존의 이유와 충만함이 감추어진 그분 안에서 그분과 함께 하나가 되는 것이다." (<관상의 새로운 씨>에서)

ⓒ한상봉

성 찰

머튼은 우리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할 필요가 있다고 믿었지만, 확신하고 사랑할 필요가 있는 “자아”는 종종 가면 밑에 감추어져 있다. 우리가 꾸는 자아는 너무나 자주 하느님의 모상대로 닮게 만들어진 우리의 진정한 자아를 위장하고 왜곡한다.

가짜 자아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짜 자아는 다른 사람들이 더 아름답고, 더 재능이 많고, 더 지적이라고 인식하며 시기한다. 가짜 자아는 그 비워진 것을 물질적 소유로 채우려 하지만 절대로 만족될 수 없다. 가짜 자아는 음식, 술, 성 관계, 혼란한 행동으로 고독과 소외를 채우려 한다. 이 그림자 자아는 신으로부터 떨어진 세계를 창조하고 스스로 만든 환상의 노예가 된다. 그것은 하느님 없는 약함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거짓을 사는 것이다.

우리의 진정한 자아는 어떤 궁극적인 지배도 주장하지 않는다. 진정한 자아는 우리의 선물, 재능, 기술, 육체를 사랑의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훌륭한 은총으로 여긴다. 진정한 자아는 오직 하느님의 뜻을 행하려고 하며 그 뜻은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사랑하는 것”이다. 진정한 자아는 하느님의 품안에 쉰다. 예수의 인성 안에서 보여지는 하느님과 닮은 모습이 바로 진정한 자아이다.

하느님과 진정한 자아로 돌아가는 것은 거짓된 자아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입는 회심을 의미한다. 그것은 우리가 창조되었던 것처럼 우리 자신에게 믿음, 희망, 사랑의 옷을 입히는 것이다.

우리의 거짓된 자아는 쉽게 포기하지 않으며 회심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그것은 오직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로이 주시는 은총으로만 가능하다. 하느님한테 돌아가도록 우리를 자극하는 어떤 급박함조차도 선물이다. 우리는 어거스틴이 강조한대로 우리가 이미 신에 의해 발견되어지지 않았다면 신을 찾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겸손, 침묵, 이탈의 훈련을 통해 회심의 은총을 받아들인다. 이러한 내면의 변화는 관상 기도를 통해 계속되며 때때로 “실제를 바라보는 오랜 동안의 사랑의 눈길”이다. “마음의 기도”를 통해, 진정한 자아는 지배와 시기의 환각을 보며 자신이 상상적인 자아의 가면과 위조로부터 분리됨을 깨닫게 된다. 머튼이 말한 것처럼: “관상은 이러한 내가 진짜 내가 아니며 알지 못하는 ‘나’는 관찰과 성찰 그 너머에 있으며 그 자체에 대해 논평할 수 없다는 깨달음이다.” 머튼에 따르면 우리는 관상을 통해 하느님을 “기억하며” 동시에 하느님 안에서의 우리의 신원을 “기억한다.”

우리를 변하게 하는 하느님의 은총의 한 징표는 우리가 삶의 모든 측면에서 하느님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 책들, 노동, 우리의 몸 그리고 주변의 것들이 우리를 하느님께 더 깊게 끌어들이는 것으로 보고 존중하게 된다. 진정한 자아로의 여행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느님과 모든 삶 안에 더 깊이 정착하도록 만든다.
 

☆ “머튼에 관하여”를 다시 읽고 당신 생활 안에서 넌더리나고 절망감을 느낄 때 그의 공허와 불확실함에 경험을 연결시켜 보라. 당신의 일기에 그러한 성찰을 써 보라.

거짓 자아에 의문을 가지게 하고 그리스도 안의 삶으로 향하게 해준 ‘행복한 잘못’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하라.

☆ 거짓된 자아와의 대화를 적어보라. 진실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매달리며 파괴적 습관, 두려움, 불안, 고립감을 느끼기 쉬운 자아에 대해 말해보라. 당신의 분노, 좌절, 성급함을 표현해 보라. 당신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 대화를 계속하고 응답을 듣도록 시간을 내라.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고 내 안에 감추어진 사랑스러운 자아를 깨달을 수 있는 은총을 청하면서 마무리하라.

☆ 우리는 우리의 만족하려는 경향이 있는 거짓 자아를 알기 위해, 그리고 사랑의 진정한 자아 위에 우리 자신을 놓기 위해 속도를 늦추고 한 걸음 물러날 필요가 있다.

눈을 감으라. 휴식을 취하고... 긴장을 풀고... 깊이,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라. ... 이제 당신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의 각 부분을 쉬도록 시간을 가지라. 조정하려는 모든 욕구를 쉬게 하라.

이제 당신 자신, 당신의 고유함, 당신의 숨겨진 미의 신비에 집중하라. 이 자아와 만나게 되는 시간을 가지라. 자연과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을 느끼고 당신이 알고 있는 가장 깊은 사랑에 닿아 보라. 이러한 자아의 느낌 속에 쉴 시간을 가지라.

당신의 가장 깊은 자아로부터 자발적으로 올라오는 기도를 하라. 그 자아는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사랑하고 머물기를 원하라.

☆ 다음 어구에 대해 묵상하라: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갈라디아서 2,20). 당신을 전환시킬 하느님의 은총을 허용하고, 그리스도가 당신 안에서 살 수 있도록 진정한 자아를 되찾기 위해 당신은 무엇을 놓아야 할 것인가? 당신이 하느님께 되돌아가기 위해 포기해야만 할 방해물들, 집착들, 충동들, 가짜들의 목록을 적어보라.

☆ 머튼은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열고 감추어져 살며 마음을 가난하게 갖도록 선택한다면 하느님이 우리 안에서 완성할 수 있는 위대한 일들의 한 징표로서 마리아에게 향했다. 천사에게 한 마리아의 응답을 짧은 기도문으로 사용해 본다. 천천히 부드럽게 반복하면서 그 기도가 하느님 앞에 당신을 겸손하게 데려가도록 해 주기를 바라면서,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루가 1,38)라고 기도한다.

󰋮 생활 중 어떤 측면에서 당신은 존경, 외경심을 느끼게 되는가?
󰋮 당신은 진정한 자아와의 만남을 가능하게 해 주는 당신의 삶에 깊게 감사한 적이 있는가?
󰋮 당신은 삶의 어떤 측면에 대해 가지고 있는 존경과 감사를 어떻게 강화할 수 있는가?
󰋮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찾을 수 있는 마음으로 기도 드리는 사람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쉴 시간을 얻는다.

하느님의 말씀 :

“넘쳐흐르는 영광의 아버지께서 성령으로 여러분의 힘을 돋구어 내적 인간으로 굳세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여러분의 믿음을 보시고 그리스도로 하여금 여러분의 마음 속에 들어가 사실 수 있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사랑에 뿌리를 박고 사랑을 기초로 하여 살아감으로써 모든 성도들과 함께 하느님의 신비가 얼마나 넓고 길고 높고 깊은지를 깨달아 알고 인간의 모든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해서 여러분이 완성되고 하느님의 계획이 완전히 이루어지기를 빕니다.” (에페소 3,16-19)

마침 기도 :

자비로운 하느님,
저에게 당신 안에서 제 자신을
알 수 있는 은총을 주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힘을 주십시오.
저에게 당신 사랑에 대한
단순한 깨달음 안에서 쉴 수 있는 길을,
진리 안에 머무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십시오.
아멘.


(이 책은 1994년 미국 미네소타주의 세인트 매리 출판사에서 발간된 웨인 심직의 <Praying with Thomas Merton>을 <참사람되어>(2001.1)에서 편역한 것이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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