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비우시는 그리스도와 일치하게 하는 두 번째 훈련은 성경에 의한 훈련이다. 성경을 읽는 것은 아래로 내려가는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한다면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비록 교회가 매 일 그리스도의 말씀을 우리에게 전해주지만, 집의 친밀한 분위기 속에서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이 우리 존재의 가장 깊숙이 숨겨진 구석자리에 말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살이 되신 하느님의 말씀이다. 성경의 훈련을 통하여,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 안에 계속하여 살이 되실 수 있다. 성경을 우리에게 들려주는 하느님의 가장 친밀한 말씀으로 읽게 될 때 그것은 우리의 현재 삶이라는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육화가 실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에 의한 훈련은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훈련이다. 왜냐하면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흔히 성경에서 정보를 얻거나 가르침을 얻고, 신앙심을 함양하거나 어떤 영감을 얻기 위하여, 혹은 –이것도 흔한 경우인데- 우리 자신의 생각을 지지해주는 인용구를 발견하기 위하여 읽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렇게 하여 다른 책들 중에 하나가 되고, 자주 단순하게 그런 방식으로 읽힌다. 마치도 예수님이 다른 많은 인간존재 중의 하나가 되었고 그래서 자주 그런 관점에서만 다루어지는 것과 같은 경우다. 그러나 예수님은 또한 하느님의 아드님이고, 성경 또한 하느님의 말씀이다. 하느님의 말씀에 의하여 우리는 살아있는 그리스도로 양성되고, 이러한 양성은 정보, 지도, 함양 혹은 영감의 차원을 넘어서는 양성이다.
이 양성은 하느님의 말씀을 먹고, 그것을 씹으며 그것을 소화시켜서 마침내 참다운 자양분이 되도록 하는 것을 요구한다. 이처럼 말씀은 우리의 정신에서 마음으로 내려와 그곳에 머물 자리를 마련한다. 이것이 바로 묵상에 관한 모든 것이다. 묵상은 말씀에 내적으로 주의를 집중시키는 훈련이다.
교회가 해마다 우리에게 제시하는 성경의 수많은 구절 중에, 아마도 한 말씀, 한 이야기, 한 가지 비유, 한 문장이 우리를 돌려놓는, 우리의 전 삶을 변화시키고, 우리에게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정신을 주며, 우리를 그리스도와 일치시켜주는 힘을 갖는 때가 있을 것이다.
이처럼 묵상이란 성경의 말씀에 관하여 사고하는 것 훨씬 그 이상이고, 비유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혹은 복잡한 말씀을 분석하는 것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다. 묵상은 말씀에 점점 더 열리게 되는 내적능력으로서 그때에 말씀은 우리를 인도할 수 있고, 열어줄 수 있으며, 우리의 두려움을 몰아낼 수 있고, 우리 안에 머물 수 있게 된다. 참다운 묵상은 이처럼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살을 입는 것을 우리가 허용하는 것이다. 우리 안에 말씀이 육화함으로써 우리는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간다.
“천국과 지상의 삶은 사라져 갈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한다, “그러나 나의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이고, 그분의 말씀은 영원히 지속되는 생명이다. 그분의 말씀은 빵이며 그래서 우리의 굶주림을 채워주고, 빛으로서 우리의 어둠을 흩어버리며, 생명이므로 우리가 죽음을 두려움 없이 대면하도록 허락한다.
나는 지금 비유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단순하게 말씀이 빵, 빛 혹은 생명과 같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니다, 말씀을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읽는 것은 성사적 사건이며, 이 사건에 의하여 하느님의 말씀은 현존하시고 우리를 진정한 우리 자신으로 변화시키신다.
말씀의 성사적 속성을 보게 될 때에야 비로소 우리들은 묵상의 의미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일상 삶에 구체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이런 묵상은 읽고 공부하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다른 모든 이야기들이 그 의미를 받게 되는 유일한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다른 모든 책들이 그 중요성을 받게 되는 유일한 하나의 책이 있다.
이렇게 성경을 읽는 것이 다른 모든 유형의 읽기에 기반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모든 독서는 – 신심서적이든, 학문서적 이든 혹은 레크리에이션 책이든 간에 – 항상 창조적이고 재창조적인 하느님의 말씀과 친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하느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세속의 책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수많은 책들에 둘러싸여 우리는 성경에 의한 훈련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다. 읽고 공부하는 것은 흔히 더 효과적이고, 더 위대하고, 더 강력해지려는 우리의 시도에 한 부분을 차지한다. 성경을 읽는 것조차 우리의 영적 삶에 위험한 것이 될 수 있다. 하느님의 말씀에 관한 수많은 토론은 우리는 하느님께 더 가까이 데려다 주 지 않으며 사탄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잘 아는 것처럼, 사탄 역시 성경 구절을 인용하고 우리를 파멸로 이끄는 넓은 길로 다시 데려가기 위하여 어떻게 구절을 사용해야 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마태 7,13).
(출전: 참사람되어, 2015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