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함이란 주님과 일치하는데 합당하게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밖에서 구해야 할 어떤 도덕적인 장식품이 아니다. 완전함은 믿음으로써 우리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손수 완수하시는 작업이다. 완전함은 온전한 사랑의 삶을 사는 것이며 성령의 은총으로 완성된다. 그리스도교적 완전함에 도달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가르침, 교회의 성사, 그리고 모든 교훈을 우리에게 남겨 우리가 그분 안에서 그리고 그분을 위해서 좀 더 완전하게 사는 방법을 보여 주셨다.
완전함에로 특별히 부름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서약과 함께 종교적인 신분이 주어진다. 교회 스스로의 가르침에 따라 우리는 성령이 주시는 영감에 따르려고 부단히 애를 쓴다. 내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성령에게 인도 받고 외적으로는 가시적인 교회의 위계제도, 법, 가르침, 성사와 전례의 보호를 받으며, 그것에 의해 자신을 형성시켜가면서 우리는 “하나의 그리스도”로 성장한다.
우리는 교회를 단순한 기관이나 단체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교회의 가르침, 통치, 예배 방식은 확실히 가시적이며 명백하게 인식 가능하다. 이러한 외적인 특징들을 통해 우리는 내적으로 그 영혼이 지니는 빛을 볼 수 있다. 영혼은 단순히 인간적일 뿐 아니라 거룩한 것이다. 그것은 성령 그 자체다. 교회는 그리스도와 같이, 인간적인 동시에 거룩한 방식으로 존재하고 활동한다.
그리스도를 이루는 인간들은 확실히 불완전하지만 그들의 불완전함은 그분의 완전함과 떼어내려 해도 떨어지지 않을 만큼 일치되어 있으며 믿음과 사랑으로 그분과 살아 있는 유대를 맺고 있는 이상 그분의 힘으로 지탱되고 그분의 거룩함으로 정화된다. 그분의 구성원들을 통해 전능하신 구세주께서는 우리를 확실하게 성화시키고 인도하시며, 가르치시며, 우리를 이용하시어 다른 이들에 대한 그의 사랑을 표현하시기도 하신다.
그러므로 교회의 참다운 본질은 하나의 몸 안에서 모든 구성원들이 “서로 서로의 짐을 지며” 서로에 대해 거룩한 섭리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사는 성인들의 통공에 전적으로 동참한 사람들이야말로 누구보다 거룩한 이들이다. 그들의 기쁨은 생명의 강을 흐르는 순수한 냇물을 맛보는 것으로 그 강이야말로 하느님 도시 전체를 기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완전함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봐야 할 문제가 아니며,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고 교회 안에서 또 교회를 통해서 그분과의 교류를 심화시키고 결과적으로 교회의 생명에, 신비체이신 그리스도 안에 더욱 심도 있게 참여하는 문제인 것이다. 이것은 물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형제들과 더욱 가까운 유대를 형성해야 함을 의미하며 살아 있고 성장하고 있는 신비체라는 영적인 조직 안에서 그들과 더욱 더 충실한 일치를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영적인 완전함이 외부 교회체제에 대한 순응주의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종교라는 효율적인 기계 안에서 잘 돌아가는 톱니바퀴의 이가 된다고 해도 그가 자신의 영혼이라는 성전 안에서 내적으로 하느님을 추구하지 않는 이상 그를 결코 성인으로 만들지 못할 것이다.
예를 들어 교권에 의해 축복 받은 전통적인 규범들로부터 규제를 받는 수도자의 평범한 일상은 그것이 확실히 성화를 위한 가장 값진 수단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수도자들에게 있어서는 그 직분에 가장 본질적인 것들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그 역시 하나의 틀에 불과한 것이다. 그 규범들은 목적을 갖고 있다. 목적이 시행되어야 한다. 골격을 실제 건물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교회의 실질적인 건물이라고 하면 사랑, 희생, 자기초월로 가득한 마음 사이의 일치인 것이다. 이 건물의 건실함은 성령이 우리 각자의 영혼을 소유하고 있는 정도에 달려 있는 것이지, 우리의 외적인 행위들이 만든 체계에 의해 정돈되고 규제되는 정도에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사회적인 삶은 필수적으로 특정 질서를 요구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들의 형제를 사랑하는 이들은 그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할 것이다. 그러나 질서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으며 또한 단순한 무질서가 거룩함은 아니다.
영적인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골격에 너무 많은 노력을 쏟아 붓고 있는데, 그래서 그것을 더욱 단단하고 영구적이며 안전하게 세우기는 하지만, 건물 그 자체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고독하고 내면적인 그리스도적 삶에서 져야 할 진정한 책임에 대해 부지불식간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간접적으로도 어느 누구에게 표현하기 힘든 문제다.
그들은 그 문제로 다른 사람과 대화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하여 자신이 옳은지 또는 그른지 “확신”을 가질 수 없다. 이 내면적인 영역에서 진보나 완전함을 증명할 만한 것을 찾기란 쉽지 않다 - 반면 외적인 영역에서 발전은 쉽게 측정될 수 있으며 결과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그것은 또한 다른 이들에게 보여져 그들의 인정과 존경을 받을 수도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고 가장 진실되며 지속적인 작업은 자신의 영혼 깊숙한 곳에서 일어난다. 그것은 다른 사람은 물론 자기 자신조차 알아 볼 수 없다. 하느님만이 아신다. 이 작업은 명백하고 일반적인 기준에 대한 충실함이라기 보다 믿음인 것이다:
그것은 내적이고, 고통스러우며, 거의 필사적인 고독의 몸짓으로, 우리 존재의 깊은 곳에 있는 그분의 말씀과 그분 의지의 표현을 알아차림으로써 또한 그분에 의해 설립된 권위에 순종함으로써 우리가 전적으로 하느님에게 속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우리가 전례 때마다 교회 전체와 함께 자랑스럽게 노래하는 사도신경은 각자 내적으로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온전히 내놓았을 경우에 한해서만 진실하고 타당한 것으로, 그 뜻은 외적으로는 교회와 그것의 위계로 나타나며 내적으로는 거룩한 은총이 주시는 영감에 의해 드러난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이란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의탁하는 것이며, 그것은 우리의 모든 희망을 그분과 그분의 교회에 거는 것이며, 모든 능력과 거룩함을 그분의 자비로운 사랑에 맡기는 것이다.
[원문출처] <Life and Holiness>, 토머스 머튼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00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