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새로운 법: 애정어린 순종과 근심 없는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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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새로운 법: 애정어린 순종과 근심 없는 포기
  • 토머스 머튼
  • 승인 2019.12.03 0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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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머튼의 삶과 거룩함/시험 당하는 이상들-1: 새로운 법
Lutheran artist Fritz von Uhde's "Christ with the Peasants" shows Jesus as the guest of an ordinary, lowly family.
Lutheran artist Fritz von Uhde's "Christ with the Peasants" shows Jesus as the guest of an ordinary, lowly family.

완전해지기 위해 우리는 구체적이고 이성적인 이상을 갖고 있어야 하며 그것을 지키며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각자의 삶 속에서 따라야 할 보편적인 “규율”,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일반적인 규범과 기준이 있다. 그러한 규율을 과소평가하거나 무시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여기서 그리스도교의 영적 교리의 근간이 되는 폭 넓고 보편적인 규범을 성찰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거룩하게 되기 위한 그릇된 방법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교적인 완전함에 이르기 위한 교회의 기본적인 가르침을 기억하려고 하는 것뿐이다.

그리스도적인 완전함은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해 각각의 그리스도인을 개인적으로 소집하시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 소집은 부르심이자 “소명”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어떤 방식으로든 그리스도께로부터 이 소명(그분을 따르라는 부르심)을 받는다. 가끔 우리는 그 소명을 신부나 수도자들의 특권으로 여기곤 한다. 그들이 완전함에로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적인 완전함에 대한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들을 특정한 방법으로 봉헌한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들 역시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의 삶의 상황이 허락하는 한 그분의 모범을 따라 마침내 성인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대한 우리의 응답은 기도를 많이 하거나 구일기도를 많이 바치는 것, 성인상 앞에 철야 초를 밝히는 것, 또는 금요일에 금육을 지키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미사를 드리거나 특정한 자기 부정의 행위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교인의 삶이란 맥락에서 볼 때 매우 바람직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런 맥락을 감안하지 않는다면 이것들에는 종교적인 의미가 누락되거나 텅 빈 제스쳐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

그리스도께 응답한다는 것은 우리의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을 말하며, 그것은 다시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추구하고 실행하기 위해 우리의 책임을 다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그리스도 자신의 지상 생활과 그분의 죽음과 부활의 본질이었다. 그분은 모든 것을 아버지의 뜻에 따르셨다(히브리서 10,5-8; 루가 2,49; 마르코 26,42; 요한 5,30).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말씀하신다: “나더러 ‘주님, 주님’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마태오 7,21).

그러므로 우리 삶 전체는 아버지의 뜻을 그 중심에 두어야 한다. 그 뜻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법에 명확하게 뚜렷히 나타나고 있다 - 십계명에 요약되어 있으며 우리의 마음과 정신과 힘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고 자기 몸을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장 큰 계명에 나타난다.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우리를 소유하고자 당신의 일생을 접고, 죽은 이들 가운데 부활하신 지금, 우리 안에 머무르시는 성령께서 우리의 법이 되어야 한다. 이 내적인 법, 순수한 사랑의 법인 이 “새 법”은 “자녀됨”이라는 한 마디로 요약된다.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이 받은 성령은 여러분을 다시 노예로 만들어서 공포에 몰아 넣으시는 분이 아니라 여러분을 하느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성령에 힘입어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로마서 8,15).

성령은 구(舊)법, 외적인 계명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은 같은 법을 내면화시켜,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일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자발적인 사랑으로 하게 만든다.

성령은 우리가 익숙한 법들과 서로 어긋나는 삶을 살라고 가르치시지 않는다. 반대로 그분은 우리가 규범을 더욱 잘 지킬 수 있게 하시며, 가족, 직장, 각자가 선택한 삶, 사회적인 관계, 도시 생활, 기도, 영혼의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하느님과의 내밀한 대화 등의 의무를 사랑으로 충족시켜 주신다.

성령은 교훈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지는 하느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라고 가르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 하느님의 섭리로 일어나는 일들 속에서도 사랑을 다해 그분의 뜻을 실천하라고 가르치신다.

한마디로, 그리스도교적 삶 전체는 애정 깃든 믿음으로 하느님의 뜻을 추구하며 은총이 가득한 그 뜻을 충실한 사랑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완전함은 결국 충실함과 사랑의 문제-무엇보다도 의무에 대한 충실함, 그리고 표출되는 모든 하느님의 뜻에 대한 사랑-으로 귀결된다. 사랑은 어떤 것을 우선시 하는 것이고, 우선권을 둔다는 것은 희생이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하느님의 뜻을 우선시 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의 뜻을 보류하고 희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이 애정어린 순종과 근심 없는 포기의 자세로 하느님의 뜻을 추구하며 자신의 뜻을 꺾으면 꺾을수록 그는 하느님의 거룩한 자녀가 됨을 의미하는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더욱 더 일치하게 되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진정한 자녀가 될 것이며, 그리스도교적 완전함에 더욱더 가까워질 것이다.

 

[원문출처] <Life and Holiness>, 토머스 머튼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00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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