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가을, 내일이면 만월이다. 그야말로 한없이 푸른 하늘을 바라볼 수 있도록 가을은 예비되어 있었고, 밤에는 체감온도가 낮을수록 은총처럼 더욱 투명한 달이 뜨고 하늘은 여전히 검푸른 빛을 잃지 않는다. 아침에 보니 마당 한켠에 심어놓은 봉선화는 꽃이 지고 줄기에 달강달강 씨주머니가 매달려 있었다. 그 주머니를 건드려 보고서야 처음으로 현철이 부른 대중가요, <봉선화 연정>에 나오는 ‘손 대면 툭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 봉선화라 부르리’라는 말뜻을 알 것 같았다. 그 노래는 이렇게 이어진다. ‘더이상 참지 못할 그리움을 가슴 깊이 물들이고 수줍은 너의 고백에 내 가슴이 뜨거워 터지는 화산처럼 막을 수 없는 봉선화 연정.’
애틋한 사랑의 감정을 노래하기란 쉬운 게 아니라서 무언가 빗대어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 사람을 다 알 듯해도 헤아려 보면 정작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는 사랑. 그래서 사랑은 더 깊어가는데 정작 상대방은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득한 옛날부터 그 사람을 기다려 온 것도 같고, 초록빛 지구라는 행성에서 같은 하늘을 머리에 이고 사는 것만으로도 ‘지금-여기’에 생기가 돋고, 영영 그 사랑만으로 살아갈 것 같은 사람을 만났거나, 만나기를 꿈꾸는 사람은 아직 복되다. 김소월마냥 ‘맘속의 사람’을 갖고 사는 이가 복되지 않을 도리가 있겠는가. 사랑은 안타까운 만큼 애달픈 만큼 더욱 빛나는 아름다움이다.
잊힐 듯이 볼 듯이 늘 보던 듯이
그립기도 그리운, 참말 그리운
이 나의 맘속에 속모를 곳에
늘 있는 그 사람을 내가 압니다.
언제도 언제라도 보기만 해도
다시없이 살뜰한 그 내 사람은
한두 번만 아니게 본 듯하여서
나자부터 그리운 그 사람이오.
남은 다 어림없다 이를지라도
속에 깊이 있는 것, 어찌하는가.
하나 진작 낯모를 그 내 사람은
다시없이 알뜰한 그 내 사람은….
(김소월_맘속의 사랑)
내가 아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그 여자는 서울 청량리역 대합실에서 강촌 가는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혼자서 바람을 쐬고 싶었고, 그렇게 일상을 탈출해 봄으로써 생기를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대합실의 긴의자에 기대어 깜박 눈을 붙이고 있었는데, 언제쯤인가부터 어깨가 무거워졌다. 웬일이지? 어느틈엔가 행려자로 보이는 한 사내가 그 여자의 옆자리에 앉아 고개를 기울인 채 잠들어 있었다.
어쩔까, 잠시 생각했다. 자리에서 일어날 수도 있겠고, 조금 옆으로 비켜나 앉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언제 한번 남에게 내 어깨를 빌려준 적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여자는 열차가 도착할 때까지 그냥 그 자리에 앉아 있기로 했다. 조금 뒤에 경찰관이 와서 그 여자에게 “뭐 도와드릴 일 없습니까?” 물었다. 경찰관이 그렇게 물은 까닭은 뻔한 것이었지만 그 여자는 “아뇨. 없는데요” 하였다. 그러나 경찰관은 줄곧 의자 주변을 서성거렸고, 어느새 불편한 낌새를 눈치챘는지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산다는 것은 적잖이 권태로운 것이다. 빨리 나이를 먹으면 좋겠다던 그 여자는 어쩜 늙지 않을지도 모른다. 항상 지금보다 더 늙은 자기를 상상하겠기에. 아직도 넘치게 혼란스럽고 갈피를 잡지 못하면서 충만하게 살지도 못함을 타박하고 있겠기 때문이다.
젊다는 것은 빠른 물살을 타는 것처럼 어지럽기 마련이다. 그러나 세상에 미혹되지 않을 만큼 충분히 안정되고 생의 후방으로 물러나 앉아 있어도, 우린 또 다른 자리를 응시하게 될 것이다. 우린 자기 자리에서 조금씩 비켜 앉을 때마다 그만큼 여백을 마련한다. 중심을 ‘나’에서 ‘남’에게로 이동시키는 만큼 자유롭게 행동한다. 권태를 여유로 바꾸고 내적 혼란을 영적 성장의 기회로 삼으며 부족한 삶을 사랑으로 채운다.
참한 사랑은 자신을 비워내고 타인을 제 중심에 세우기 마련이다. 사랑에 달뜬 영혼은 오롯이 그 사람 생각뿐이다. 어깨가 필요하다면 어깨를 내주고, 의자가 필요하다면 걸터앉을 의자를 훔쳐서라도 갖다 줄 요량이다.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당신’을 발견한 사람은, 그 사랑 때문에 영육이 쓰리고 아쉽고 안타깝고 망가지더라도 좋·다. 그 사랑 되얻지 못해 아프더라도 권태로운 일상보다는 백 배 천 배 좋다.
얼마 전에 가까이 지내는 친구에게서 김용택 시인의 <빗장>이란 시를 얻어들었는데, 이 정도 마음으로 세상과 인간을 사랑한다면 저절로 도가 트일 것 같았다. 이 시를 산문체로 바꾸니 이랬다.
"내 마음이 당신을 향해 언제 열렸는지 시립기만 합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논둑길을 마구 달려보지만 내달아도 내달아도 속떨림은 멈추지 않습니다. 하루 종일 시도 때도 없이 곳곳에서 떠올라 비켜주지 않는 당신 얼굴 때문에 어쩔 줄 모르겠어요. 무얼 잡은 손이 마구 떨리고 시방 당신 생각으로 먼산이 다가오며 어지럽습니다. 밤이면 밤마다 당신을 향해 열린 마음을 닫아보려고 찬바람 속으로 나가지만 빗장 걸지 못하고 시린 바람만 가득 안고 돌아옵니다."
연정이란 누가 시켜서 생기는 감정도 아니고, 거창한 대의나 교리에 따르는 것도 아니다. 어떤 사람에 접속되는 순간 저도 모르게 불쑥 생기는 감정이고, 이유도 변명도 헤아릴 길 없이 마음의 바닥에서 요구하는 것이기에 단속할 수도 막을 길도 없다. 그처럼 가련한 눈길을 보면 봇물 터지듯 걷잡을 수 없이 발동되는 사랑 어디 없는가, 되묻는 계절이다. 누군가의 섬세한 손끝 하나 닿으면 금방 씨앗을 흩뿌리며 튀어나오는 봉선화 연정이 기다려진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