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이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 제자들이 길을 가면서 밀이삭을 뜯기 시작했다. 그러니 바리사이들이 그분께 “보시오. 어찌 이 사람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했다. 그러자 그분은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생겼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생기지 않았습니다.(마르 2,23-28 참조)
“안티오키아와 콘스탄티노플의 주교였던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젊은 시절 사막으로 가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훗날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거룩함으로 부르심 받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복음에 제시되어 있는 바 오직 하나의 덕행, 하나의 거룩함만이 있을 뿐이다. 신약성서에 나와 있듯이 우리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주어져 있는 만큼 평신도의 신분은 분명 선하고 거룩한 것이다. 그런 만큼 평신도들은 단순히 ‘죄를 피하기만 하는 것’, 최소한의 어떤 정적인 거룩함만을 유지하는 것으로 충분치 않다.”
토마스 머튼의 말입니다. 트라피스트 수도원의 뛰어난 영성가이자 작가였던 머튼은 수도성직자뿐 아니라 평신도에게도 ‘거룩함’으로 나아갈 영감을 던져준 중요한 인물이지요. 머튼은 사제와 수도자들만이 완전함을 향해 수행하고, 평신도들은 그저 단순한 신앙생활 속에서 은총의 상태에 머무는 것을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들이 “성직자들의 옷자락에 매달리거나 홀로 ‘완전함’으로 불린 전문가들에게 이끌려 천국에 들어가는 것으로 족하다고 여기는 것”을 문제 삼은 것이지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세례를 통해 완전함으로 불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할 의무가 있고, 우리 행동이 그분과 일치해야 마땅하며, 평신도는 지옥만 면하면 된다는 생각은 잘못이라는 것이지요.
관상이냐 글쓰기냐
이렇게 훌륭한 생각을 글로 남긴 토마스 머튼 역시 수도생활을 하면서 내내 번민했습니다. 왜냐고요? 수도자가 은둔과 명상에 몰두하지 못하고 세상을 향해 발언하는 작가로 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무엇을 위한 은둔인가? 누구를 위한 수도생활인가, 하는 물음이 자연스레 올라옵니다.
토마스 머튼은 수도원에 들어가기 전에 소설과 시를 쓰던 사람입니다. 보나벤투라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할렘 가의 ‘우정의 집’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일할 것인가, 글쓰기를 희생하더라도 영적인 삶에 대한 완전한 헌신을 위해 수도원에 들어갈 것인가 고민했지요. 그런데 정작 수도원에 들어가서는, 글쓰기에 대한 머튼의 열망을 알고 오히려 트라피스트회 장상들이 수도자들의 삶에 관해 글을 쓰도록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처음 쓰게 된 책이 <칠층산>이라는 자서전입니다.
그런데 <칠층산>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머튼은 <명상의 씨앗> 등 더 많은 책을 쓰도록 요청받았고, 사제서품을 앞두고 이렇게 탄식합니다. “책을 쓰고 명성을 얻는 데는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 이후 나의 소명은 점점 더 실패하고 있다.” 머튼은 서품 직후 체력이 소진되어 병석에 눕기도 했는데, 글쓰기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내가 성인이 되고 싶다면, 트라피스트 수도원에서 책을 씀으로써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글쓰기의 재능 역시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이었기 때문입니다. 글쓰기냐 명상이냐가 아니라, 무엇을 누구를 위해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지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듯이, 수도생활 역시 자신과 이웃을 위해 있음을 알았던 것이지요. 그 모든 것이 거룩함으로 가는 길 하나일 뿐, 그 자체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머튼은 글을 쓰는 가운데, 독자들에게 그와 함께 영적 여정을 걸어가자고 초대합니다. 그 후 머튼이 가장 성실하게, 아니 정직하게 써서 공개한 것이 ‘일기’입니다. “머튼은 자기 자신에 대해 우리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우리는 그 이야기를 통해 거울처럼 우리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삶을 비추어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둘러싸고 일어난 모든 일과 자신의 느낌과 생각과 성찰을 낱낱이 일기에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일생동안 4,000통 이상의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를 통해 수도원 바깥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입니다. 이 편지에 가벼운 농담과 영적인 지혜, 사회적 관심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먼저 ‘사람’에게 주목하라
토마스 머튼이 수도자로서 명상과 은둔을 넘어서, 아니 명상과 은둔을 통해 얻은 지혜를 글쓰기를 통해 세상과 나누었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세상과 나누어야 할까요? 우리는 초등학교 교사이기도하고, 전업주부이기도 하고, 목수이며 철공소 직원이도 합니다. 상점에서 물건을 팔기도하고,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통행료를 받고, 식당에서 음식을 만들고 나릅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일하고, 관공서에서 일합니다. 화물차나 버스를 운전하기도 하고, 춤을 추고 노래하고 글을 쓰면서 밥벌이를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내 한 몸 건사하고 가족의 생활을 돌보는 것만으론 부족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지금여기에서 하는 일을 통해 하느님 사업에 동참하고 예수님과 일치해야 하는 까닭입니다.
여기서 예수는 먼저 ‘사람’에게 주목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죠. 안식일에 예수의 제자들이 밀이삭을 베어 먹어서 문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제자들이 심심해서 껌처럼 씹으려고 벤 것은 아니겠지요. 예수를 따라 다니다 보면 굶주릴 때도 있을 것이고, 배고파서 베어 먹은 음식을 바리사이들이 타박하는 게 예수의 눈에 무척 거슬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 사람들이 성군으로 알아듣던 다윗의 예를 들어 바리사이의 입장을 공박합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생긴 것이라고 말입니다. 창세기에서 사람을 먼저 창조하신 뒤에 휴식(안식)을 취하신 분이 하느님이십니다. 사람이 먼저란 이야깁니다.
예수는 한사코 인간의 고통에 애를 태웁니다. 배고픈 제자들을 안쓰러워했듯이, 미친 사람과 열병에 든 시몬의 장모, 나병환자, 중풍병자, 손이 오그라든 병자들을 불쌍히 여겨 치유해 줍니다. 그리고 유다인들에게 멸시받던 세관원 레위를 제자로 부르시고, 죄인들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았다고 합니다. 세관원은 헤로데 안티파스에게 임차료를 내고 계약에 따라 실제로 관세를 징수하던 민간인입니다.
이들 세관원은 흔히 이방인들과 접촉할 뿐 아니라 터무니없이 관세를 많이 매겨 부당하게 치부했기 때문에 직책상 죄인으로 취급받았습니다. 다른 죄인들도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던 사람들일 것입니다. 예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천민으로 멸시하던 이들과 자주 어울려 밥을 먹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관원들과 죄인들의 친구로구나”(마태 11,19; 루카 7,34)라는 소리를 듣곤 했지요.
이를 두고 예수가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의사는 건강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앓는 사람들에게 필요합니다. 나는 의인들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부르러 왔습니다.”(마르 2,17) 그런데 참 재미있는 구절이 이 이야기에 따라옵니다.
“아무도 생베조각을 헌옷에 대서 깁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면 헌옷에 기워댄 새 헝겊이 옷을 당겨 그 옷은 형편없이 찢어집니다. 그리고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부대에 넣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그 가죽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가죽부대도 못 쓰게 됩니다. 그러므로 새 포도주는 새 가죽부대에 넣는 법입니다.”(마르 2,21-22)
여기서 바리사이들은 그동안 세상을 이모저모 지배해 오던 헌옷이며, 의인이라 자처하는 자들입니다. 그 모든 잘났다고 하는 자들을 예수는 친구로 삼지 않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건강하다고 말하지만, 그분 눈에는 사실상 권력과 이데올로기로 병든 자들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난한 이들에게 먼저 선포된’ 복음을 받아들일 줄 모르는 이들입니다. 그래서 육신의 눈을 떴지만 가련한 하느님 백성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복음이라는 ‘새 헝겊’은 하느님을 갈망하는 새로운 백성에게 닿아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라는 새 가죽부대에는 앉은뱅이와 눈먼 자와 거지 나자로와 세리와 어부들과 창녀들이 담겨질 것입니다. 배고픔을 마다하지 않고 예수를 따라 길을 나선 이들이 새 포도주이며, 그분의 시선이 가서 닿는 사람들입니다.
그걸 옳게 알아본 눈 밝은 이들은 먼저 자신의 생업을 통해 가난한 이들을 만나야 합니다. 그들의 삶을 보살펴야 합니다. 토마스 머튼처럼 그들을 위해 글을 쓰고, 선우경식처럼 의술을 베풀고, 전태일처럼 재단을 하며, 문익환처럼 설교해야 합니다. 그리고 알려지지 않았지만, 돌아보면 주변에 얼마든지 있을 따뜻한 손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이 일을 ‘내가 했다’ 하지 않을 사람들, 그분이 하셨다고 말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겠지요. 그렇게 우리는 그분과 한 동무가 되어 한 생애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