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 호숫가의 반전주의자, 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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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호숫가의 반전주의자, 소로
  • 한상봉
  • 승인 2016.06.18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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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사랑>, 리북, 한상봉 지음-9

헨리 데이이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1817∼1862)는 1846년에 멕시코전쟁이 터지자, 노예 제도와 전쟁에 반대하여 인두세 납부를 거부하고 감옥에 갇혔다. 생전에 휘트먼의 생각에 공감했던 소로가 발표한 <시민의 불복종>에는 이런 생각의 갈피가 잘 정리되어 있다.

소로는 “가장 좋은 정부는 가장 적게 다스리는 정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혀 다스리지 않는 정부”를 이상으로 삼았다. 소로에게 정부란 기껏해야 편의기관에 불과했다. 따라서 법을 존중하는 것이 정의를 존중하는 것인 양 말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마땅히 지켜야 할 권리이자 의무는 언제든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하는 일”이다.

군대와 의용군, 간수와 경찰관 등은 제 몸으로 국가를 섬기면서, 제 양심이나 도덕 원칙에 관계없이 상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 또는 흙이나 나무처럼 행동할 위험이 있다고 소로는 생각했다. 그리고 많은 입법자·정치가·변호사·목사·관리 등은 “머리로 국가를 섬기면서, 생각 없이 악마를 하느님으로 섬기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다만 극소수의 영웅과 애국자, 순교자, 넓은 의미의 개혁자 그리고 민중만이 양심에 따라서 국가에 봉사하는 까닭에 어쩔 수 없이 국가 권력에 거스르게 되는데, 이들은 보통 국가의 적으로 취급받는다.

소로는 “어진 사람은 다만 사람으로만 쓰일 것이요, 스스로 ‘흙’이 되어 바람구멍을 막는 데 쓰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역할은 시체에나 맡길 일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런 뜻에서 소로가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국가라는 창녀야, 은 옷을 두른 음녀야.
옷은 걷어 올렸지만 네 혼은 진흙 속에 끌리는구나.”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단 열 명의 정직한 사람만이라도, 그렇다, 단 한 명의 정직한 사람만이라도 노예 소유를 그만두고 실제로 조합에서 물러난다면, 그래서 그 때문에 지방 감옥에 갇히게 된다면, 미국에서 노예 제도는 철폐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아무리 작은 행위도 한번 옳은 것은 영원히 옳은 것이기 때문이다.

불의한 정부 아래서 감옥은 격리되어 있으면서도 가장 자유롭고 영광스러운 곳이다. 그리고 노예 국가에서 자유인이 버젓이 안거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감옥뿐이라는 것이다. 소로는 한 표의 투표용지에 미래를 맡기지 말고 온 힘으로 저항하라고 부추긴다. “전력을 다해 대들면 당해 낼 놈이 없다. 모든 의인을 다 감옥에 잡아넣든가, 그렇지 않으면 전쟁과 노예 제도를 버려야 한다.” 이렇게 얻어지는 것이 평화적인 혁명이다. 만일 시민이 국가에 충성하기를 거부하고 관리가 제 직위를 내놓는다면 혁명은 완성된다는 게 소로의 생각이다.

1845년부터 2년간 월든 호숫가에 통나무집을 짓고 살면서 체득한 단순한 생활양식은 이러한 시민 불복종 운동에 현실적 힘을 실어 주었다. 그는 스스로 밭을 일구어 콩을 양식으로 삼았다. 돈 쓸 일이 거의 없었고, 소로는 누구보다도 풍요롭게 숲 속의 생명들과 속삭이며 인생을 풍요롭게 누렸다. 월리암 워즈워드의 말대로 “살림은 소박하게, 생각은 고상하게.”라는 이상은 그에게 독립적인 충분한 자유를 주었다.

정부도 군대도 다국적 기업도 카사노바도 그에게서 자유를 박탈할 수 없었다. 부질없는 기득권을 탐닉하지 않는 한, 우리는 두려움 없이 불의에 “아니요!”라고 언제든지 말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간디의 비폭력 저항을 표방하는 진리파지眞理把持, 사티야그라하운동에 소로가 영향을 주었던 것은 당연하다.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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