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책을 살 일이 생기면 종로서적·교보문고·을지서적에 간다. 저마다 목 좋은 전철역 근방에 자리잡은 탓이기도 하거니와 책을 사든 사지 않든 세상의 책이란 책이 도서관보다 더 보기 좋게 진열되어 있다고 여겨지는 탓이다. 대형서점이란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의 언어를 한군데 모아놓은 것 같다. 그래서 이 책 저 책 뒤적거리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러곤 마음먹고 간 책 한 권, 그리고 값싼 문고판 한 권을 쥐고 나온다. 영성과 가난과 소박함을 주장하고 노래하는 책들도 내 호주머니 사정에 비하면 엄청 비싸고, 그런 책을 볼 때마다 나는 정말 가난을 이야기할 처지도 되지 못한다는 쓸쓸한 감정을 맛보곤 했다.
남의 잔치에 와 있다는 서먹한 뒤끝을 느끼지 않으려면 헌책방을 찾는 게 제격이다. 인천에 살 땐 늘 배다리 근처의 헌책방 거리를 들락거렸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새 참고서를 샀던 기억이 없다. 항상 인천시립도서관에 공부하러 갔다 오는 길목에 헌책방에 들러 낡은 ‘필승…’ 어쩌고 하는 참고서를 구했다. 먼저 고무지우개로 겉표지를 박박 긁어서 말끔히 하고, 남이 그어놓은 답안지의 연필자국을 지웠다.
대학시절 불온시당했던 김지하의 담시 ‘오적(五賊)’이 실린 잡지도 여기서 구했다. 헌책방을 기웃거리다 보면 기가 막힌 책을 엉뚱하다싶을 정도로 값싸게 얻어서 하루 종일 기분좋은 날도 있고, 책값을 반농담 섞어가며 흥정하는 잔재미도 있다. 이제는 출판사도 없어지고 서점에서 구할 수도 없는 70-80년대의 책을 구할 수 있는 곳도 그곳 뿐이다. 김성동 우화집 <죽고 싶지 않았던 빼빼>랄지 황석영의 <어둠의 자식들>, 시몬 베유의 <중력과 은총>같은 책들이다.
조세희의 「침묵의 뿌리」라는 사진 산문집도 거기서 구했다. 내 젊은 날의 기념이라도 되는 양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 사둔 책도 있고, 새로운 장정으로 다시 출판되었더라도 옛 장정이 정감이 가서 선택하는 책도 있다. 새로운 것이 항상 새로운 것은 아니다. 낡은 것이라도 지금 다시 내게 의미를 준다면 ‘새로운’ 것이다.
자못 쿰쿰하달 수 있는 그런 것이 다정한 것은 나의 삶이 그만큼 경박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 아닌지 묻고 싶을 때가 있다. 낡은 책장을 넘기며, 예전에 풀지 못하고 넘어간 숙제가 남아 있는 게 아닌지 생각해 본다. 누렇게 색바랜 종이와 낡은 책은 지나온 날들이 그리 평탄하지 않았음을 기억하게 해주고, 앞으로의 삶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무게를 얹어준다.
우린 자라면서 많은 것을 보고 읽고 생각하고 행동하였다고 여기지만, 실제로 내 몸으로 살아낸 구석은 그리 대단할 게 못 되는 경우가 많다. 1925년생이니까 지금은 나이가 퍽 많은 노인임을 짐작하게 하는 김규동님의 <길은 멀어도>라는 시집을 읽다 보니, 천상병 시인의 시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있다. 마음이 저릿했다. 제목도 ‘천상병씨의 시계’다.
"어려운 부탁 한 번 한 뒤면
주먹만큼 큼직한 동작으로
저고리 소매를 걷어올리고
시계를 봤다
칠이 벗겨진
천상병씨의 시계에
남도 저녁노을이 비꼈다
시계 없이도
시간의 흐름을 짐작할 수 있노라고
얼어드는 언어의 층계를 오르내리는 내게
천상병씨의 낡아빠진 시계는
어째서 자꾸
뭉클한 감정만을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일까."
어느 시인이 천상병에게 ‘행인(行人) 천상병’이라는 별호를 지어주었다는데, 그 별호만큼 고단한 생애를 살다 저승으로 옮아간, 그래도 행복한 이 시인의 매력은 그의 삶이 그대로 시가 되고 시가 곧 에누리 없이 그의 삶 자체라는 것이 아닐까. 하루 스물네 시간 자기를 반성하지 않고 지나는 법이 없었다는 그 시인의 시는 동시(童詩)처럼 쉽고 선시(禪詩)처럼 초월적이다.
진리는 간단하다는데 이 시인은 인생의 어느 한 단계를 훌쩍 뛰어넘었던 것 같다. 세상 속에 깊이 속하면서도 세상과 다른 이치로 산다는 점에서 종교적이다. 자잘한 일상이 그의 화두였으며,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과 화해하는 통로였다. 어린이다운 천진함과 어른다운 진지함이 농축되어 있는 그의 영혼은 그래서 아름답다. ‘장마’라는 시를 보면, 고해성사를 받는 것처럼 가슴께가 아려오는 것이 어떤 구원의 표지 같다. 그의 공덕으로 비루한 내 영혼의 한끝이 깨끗이 씻겨 나가는 것 같다.
"내 머리칼에 젖은 비
어깨에서 허리께로 줄달음치는 비
맥없이 늘어진 손바닥에도
억수로 비가 내리지 않느냐,
비여
나를 사랑해다오.
저녁이라 하긴 어둠 이슥한
심야(深夜)라 하긴 무슨 빛 감도는
이 한밤의 골목 어귀를
온몸에 비를 맞으며 내가 가지 않느냐,
비여
나를 용서해다오."
그가 비를 맞고 있다. 오늘 아침이 다소 행복한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기 때문이요, 오늘 아침이 다소 서럽다고 생각되는 것은 내일 아침 일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라던 시인이 비를 맞고 있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도 떳떳할 수 있는 것은 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라고 노래했던 그는 ‘괴로웠음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라고 묘비명까지 지어놓은 채 비를 맞고 있다. 우산을 쓰고 있는 내 행색이 초라해 보일 정도로 사정없이 맞고 있다. 무작정 자신을 비워내고 있다. 참회할 건더기가 그다지 없어 보이는 순백한 그가 나 대신 비를 맞고 있다. 부담스럽고 고맙고 부끄러운 일이다.
시계도 없이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철없이 머리만 커버린 어른이 된다는 것은 죄스런 것이다. 그래도 김규동 시인은 천상병의 낡은 시계를 보면서 마음이 뭉클해지고 그의 영혼 어느 언저리에 새살이 돋아날 것이다. 나는 우산을 접어야 한다. 가혹하지만 모든 변명을 걷어내야 한다. 제 삶에 항상 어떤 합리적 이유를 늘어놓는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정말 사랑하기 위해선 정말 용서를 빌어야 한다. 먼저 자신에게, 그리고 세상과 하느님 앞에서. 그러나 나는 아직도 나를 보기가 두렵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