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산 넘어 오시는 임, 꽃 꺾어 그대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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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산 넘어 오시는 임, 꽃 꺾어 그대 앞에
  • 한상봉
  • 승인 2019.09.01 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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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의 내 돌아갈 그립고 아름다운 별-5

한때 이런 적이 있었다. ‘예수’라는 이름을 떠올리지 않고, 그 명호(名號)를 부르지 않고 글을 쓰려고 애쓴 적이 있었다. 디트리히트 본회퍼 목사가 이야기했다던가. 성숙한 세계에선 종교의 비(非)종교화가 요구된다고. 구태여 종교적 체제와 언어가 동원되지 않더라도 만인이 복된 세상에서 복된 생각을 하며 복되게 살 수 있는 그런 성숙한 세계에선 말이다. 종교가 대중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아직도 세상이 여물지 않은 탓이다. 아님 그 종교들이 종교(宗敎), 곧 높은 가르침을 선포하는 데 자격미달인 까닭인지도 모른다. 하긴 하나의 종교 안에도 일정한 교리 외에 다양한 인물과 사상과 흐름이 있음을 감안할 때, 그래서 세속사회라는 요즘은 종교와 종교 아님이 그다지 차별성이 없음을 인정한다면 납득하지 못할 연유도 없다.

아무튼 모태신앙을 얻고 이즈막까지 교회 변두리를 떠나 살아본 적이 없는 나에게 ‘예수’란 친숙하고 너무나 낯익어서 돋보이지 않는, 그래서 진부한 느낌마저 주는 이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예수보다는 부처님 이야기를 거들먹거리는 게 참신하고 자극적이어서 좋았다. 다른 문화에 대한 묘한 동경이 깔려 있는 것인지도 모르고, 어쩜 우리네 종교심성에 더욱 가까이 있는 게 불교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대학시절에 종교학을 부전공으로 배우면서 신학에 대한 맛을 본 적은 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예수’를 잘 몰랐다. 군대에 가기 전에 연애하던 친구가 헤어지자는 편지를 보내오고, 급기야 휴가 때 그녀의 심중을 확인하고서야 내 길은 역시 사제가 되는 것인가 보다, 하고 어설프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비로소 예수의 본래 면목을 알고 싶은 욕구가 울컥 기어올라왔다. 나는 아무래도 그분을 잘 모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였다.

 

사진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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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연애처럼

그래서 외출·외박·휴가 때마다 서점에 들러 ‘예수’란 말이 제목에 끼어 있는 책들을 닥치는 대로 구해 읽었다. 그리고 제대한 뒤로 해방신학에서 말하는 ‘해방자 예수’에 낙점을 찍었다. 민중해방을 위해 민중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 자못 정치적 의미로 예수를 이해했던 시절이다. 변혁 이데올로기에 몸이 달아 오르던 시절인만큼 나의 그리스도론은 그것으로 충분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취사선택된 예수는 나의 존재감을 온전히 채워주지는 못했다. 구체적인 나의 성품과 삶의 정화과정을 통하여 성찰되고 경험된 예수가 아니었기에 내 삶을 끝까지 밀고 나갈 힘을 주지는 못할 것이었다. 그후 신학공부를 계속해 가면서 예수의 모습은 이론적으로 정리되었고, 그에 대한 사고는 이쯤에서 마무리해도 될 성싶었다. 실상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라는 정식을 학문적 틀 안에서 정리하는 데는 그리 심각한 과정을 요구하지 않았다. 이른바 예수를 객관화시키는 작업은 몇 권의 책을 읽고 정리하면 그만이었다.

엔도 슈사쿠는 <예수의 생애> 서두에서 "참된 예수의 모습이나 얼굴은 그와 더불어 산 자, 예수가 그의 인생을 가로지른 인간 이외에는 그 누구도 본 적이 없다. 예수의 생애를 말하고 있는 성서마저 그의 외모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성서를 읽을 때, 우리들이 왠지 예수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성서를 쓴 사람들, 곧 예수를 알았던 사람들이 평생토록 그를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적고 있다.

쿠라타 햐쿠조오가 <사랑과 인식의 출발>이란 책에서 말한 것처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운명을 사랑한다는 것일 텐데, 성서 저자들은 아마도 예수의 운명을 절실히 사랑했던 연인들이었을 것이다. 그분의 목숨마저 삼켜버린 세상 속에서 그분의 살냄새와 언어, 그 음색마저도 기억해 내려고 안간힘 쓰던 사람들은 그분의 생애를 자신의 생애로 삼아 살기로 작정했을 것이다. 그런 뜻에서 쿠라타가 한 말은 옳다.

"종교는 자기에 대한 요구다. 자기를 참으로 살리고자 하는 내부 생명의 노력이다. 불완전한 자가 완전함을 구하는 사모(思慕)다. 스스로 가난하고, 거짓으로 가득차고 흔들려서 위태로움을 아는 겸손한 마음이 풍성하고 진실하며 결단코 동요되지 않는 절대의 실재를 구하는 무한한 동경이다. 혼자서 고독하게 살아갈 수 없는 쓸쓸한 혼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애인과 함께 살고자 하는 절실한 염원이다."

 

차라리 진실이 아니라 예수와 함께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가 만났던 예수 역시 그와 같은 줄에 서 있다. <죄와 벌>을 썼던 그는 1847년 차르 체제 아래서 급진적 정치 서클에 가담하였는데, 그 결과는 엄청난 것이었다. 2년 뒤 그룹 전체, 24명의 청년 이상주의자들이 체포당하였고, 그중 21명은 사형을 선고받았다. 사형언도를 받은 뒤 형장으로 끌려간 도스토예프스키는 말 그대로 최후의 순간에 사면을 받았다.

그는 4년 동안 시베리아에서 강제노동을 하고, 뒤이어 4년 동안 군복무를 선고받는다. 당시 그는 책도 펜도 없이 누구와도 만나지 못한 채 살아야 했는데,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신약성서 한 권뿐이었다. 그 절명의 시기에 도스토예프스키는 엄청난 신앙에 직면하였다. 마흔 살이 다 되어 페테르스부르크에 돌아온 그는 자신이 발견한 은밀하고 과감한 사랑을 이렇게 고백하였다.

"나는 예수보다 더 아름답고 심오하고 동정심 있고 이성적이고 인간적이고 완전한 존재는 없다고 믿습니다. 나는 질투 섞인 사랑을 고백합니다. 예수와 같은 존재는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있을 수도 없습니다. 나는 또 말하고 싶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예수가 진실 밖에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면, 그 진실이 참으로 예수 밖에 있다면, 나는 차라리 진실이 아니라 예수와 함께 남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이처럼 ‘오직 예수만’을 고집한다는 것은 현대의 종교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낡은 생각인지도 모른다. 이른바 타종교와의 일치와 연대를 추구하는 신앙은 ‘세상에 열려 있는 신앙’이고, 모든 종교가 그리스도교와 마찬가지의 무게로 세상을 구원하는 진리임을 가르치는 게 진보적 견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일반론에 근거할 때 실상 구원의 힘은 증발해 버린다.

어느 인생에게는 나름대로 결정적 국면을 마련해 준 종교가 있기 마련이고, 그 결정적 국면의 정점에는 언제나 어떤 사람이 있다. 곧 그가 예수든 석가든 노자든 공자든 어떤 인격에 매료당할 때 우리의 삶은 한걸음 크게 진보한다. 그런 의미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임’은 그의 특정한 러시아적 종교 상황에서 역시 예수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히려 ‘그 진실이 참으로 예수 밖에 있다면, 나는 차라리 진실이 아니라 예수와 함께 남는 쪽을 택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할 만큼의 절박한 신앙에 사로잡혀 있지 않은 자신을 먼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만일 예수의 모습이 일그러져 있다 하더라도 그 흉터마저도 끌어안고 가겠다는 심경에 사로잡히는 것이 사랑이고 신앙이다.

 

사진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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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하느님을 만난 사람들은 말이 없다

때로는 맹목적 사랑에도 희망의 근거가 자리잡는다. 어리석어 보이는 이에게서 지혜가 자란다. 임이란 그런 것이다. 임이란 복종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쪽에서 기꺼이 바치는 복종이다. 내 삶의 상처를 말끔히 치유해 준 임을 무조건 따르겠다는데, 주변 사람들이 찧고 까부는 입방아를 상관할 이유가 없다.

진짜배기 사랑을 만해 한용운은 ‘당신이 아니더면’이란 시편에서 읊조린다.

"당신이 아니더면 포시랍고 매끄럽던 얼굴이
왜 주름살이 접혀요.
당신이 괴롭지만 않다면
언제까지라도 나는 늙지 아니할 테여요.
맨 첨에 당신에게 안기던 그때대로 있을 테여요.
그러나 늙고 병들고 죽기까지라도
당신 때문이라면 나는 싫지 않아요.
나에게 생명을 주든지 죽음을 주든지
당신의 뜻대로만 하셔요.
나는 곧 당신이어요."

나에게도 그런 신앙이 있을까?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게도 그런 임이 있었는가, 아니 있는가, 아님 장차 그런 임을 만날 수 있을까, 묻고 되묻게 되는 우린 역시 가련한 중생이다. 임을 만난 사람은 사랑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는 법이다. 말한다 해도 더듬거릴 뿐이다. 그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떨리고 가슴이 달아오른다. 객·관·적이라는 말은 빛을 잃어버린다.

그런 의미에서 신학을 연구한다는 것은 하느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의 비루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정작 하느님을 만난 사람들은 말이 없는데, 학자들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자신의 어설픈 속내를 들킬까 두려워하는 탓이다.

임의 명호를 부를 때마다 목울대를 적시는 아픔이 있다면 그대는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관세음보살을 부르거나 또는 예수 마리아 요셉을 부르는 멸시받던 백성에게 구원이 온다. 사랑은 조응하는 것이다. 응답을 부르는 것이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이다. 내가 그의 곁을 차마 떠나지 못할 때, 그 역시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고 믿는 게 사랑이요 종교요 신앙이다. 내 고단한 삶을 붙들어 주는 힘이다. 그리고 기다릴 줄 아는 자만이 시시각각 불현듯 찾아드는 임의 거룩한 얼굴을 맞대면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 양성우님의 표현대로 ‘꽃 꺾어 그대 앞에’ 바칠 준비가 된 사람이 임을 맞이한다.

"그대 큰 산 넘어 오랜만에
오시는 임.
꽃 꺾어 그대 앞에
떨리는 손으로 받들고, 두 눈에
넘치는 눈물 애써 누르며
끝없이 그대를 바라보게 하라.
그대 큰 산 넘어 이슬 털고
오시는 임.
꽃 꺾어 그대 앞에
떨리는 손으로 받들고
그대의 발, 머리 풀어 닦으며,
오히려 기쁨에 잦아드는
목소리로
그대를 위하여
길고 뜨거운 사랑의 노래를
부르게 하라."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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