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정화, 예수일행의 예언적 집단 퍼포먼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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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정화, 예수일행의 예언적 집단 퍼포먼스였다
  • 김진호
  • 승인 2019.08.25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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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예수운동의 재건-1

알다시피 예수의 ‘느닷없는’ 예루살렘 행보 속에는 분명 어떤 기획이 담겨 있다. 그것은 이스라엘 신앙전통의 기반 위에서(특히 엘리야, 요한 등의 이스라엘 민중 전통을 승계하는) 자라난 메시아 대망 집단의 ‘그날’의 도래를 맞이하기 위한 최후의 행보며, 나아가 이 집단이, 그리고 이 집단의 지도자인 예수가 도래할 ‘그날’ 사건의 주역이 되고자 기획한 행보임을 의미한다. 그 연장선 상에서 오늘 우리는 예수의 예루살렘에서의 행보에 주목해보자.

예수일행이 예루살렘 성안으로 입성한다. 이제부터 숨 막히는 7일간의 상황이 펼쳐진다. 이 강좌에서 계속 주목하고 있는 장소 이동의 관점에서 보자면, 예루살렘 성 ‘안’과 ‘밖’을 오가는 예수의 행보에 관심을 갖게 된다.

아래 표는 성 ‘안과 밖’을 오가는 예수의 행보를 보여 준다. 우선 처음 3일간의 행보는 폭발 직전의, 갈수록 고조되어 가는 긴장 곡선을 그으며 전개된다. 첫째 날 예수는, 어쩌면 처음 접해봤을지도 모르는, 성 안 이곳저곳을 살핀다. 바로 조금 전에 소란스럽게 입성 장면을 연출한 메시아 행렬 치고는 무언가 갑자기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혹 ‘D-데이’를 준비하는 메시아 집단의 기획된 정찰 행동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리고 밤이 되자 예수일행은 성 밖 어디론가로 빠져나간다.

 

둘째 날, 그 유명한 ‘성전 난동사건’이 벌어진다.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갔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시어, 그곳에서 사고팔고 하는 자들을 쫓아내기 시작하셨다.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도 둘러엎으셨다. 또한 아무도 성전을 가로질러 물건을 나르지 못하게 하셨다. 그리고 그들을 가르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 로 만들어 버렸다.”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그분을 없앨 방법을 찾았다. 군중이 모두 그분의 가르침에 감탄하는 것을 보고 그분을 두려워하였던 것이다. 날이 저물자 예수님과 제자들은 성 밖으로 나갔다. (마르 11,15-19)

 

이것은 예수의 ‘개인적 퍼포먼스’인가 아니면 ‘집단적 봉기’인가? 우리는 두 가지에 대해 모두 부정적이다. 우선 ‘개인적 퍼포먼스’라고 한다면, 환전상과 짐승 거래상이 예수의 이 행동을 좌시할 리 있겠는가?

그들은 성전 당국으로부터 인가받은 공식지정 업체다. 예루살렘 제의의 규모를 보건대 이 독점권을 따내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을 것이고, 이것은 이들 업체의 소유권자가 상당한 권력자임을 시사하는데, 그들이 한 사람의 개인적 난동을 억제할 수 없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아마도 그들이 거느리고 있는 사병들이 예수를 그만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성전에서 일어나는 치안 문제를 담당하는 경비병도 이런 사태를 그냥 내버려 둘리는 없다. 또 팔레스티나의 로마군 거의 전 병력이 이 무렵에는 카이사리아에서 예루살렘으로 이동하여 성전 옆 안토니우스 요새에 비상대기 중이었다. 그들은 성전 경비병력이 감당할 수 없는 비상사태가 발발할 경우 곧바로 출동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최근의 한 연구에 의하면 예루살렘 동편의 올리브 산에 있던 제사용 제물의 판매소를 가야파 대제사장이 성전 안으로 이동시켰다고 한다. 그것은 보다 안전한 판매시스템의 관리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니 예수가 개인적으로 이 판매소에서 난동을 부렸다면 그는 판매소 사병에게 집단구타를 당하고 바로 당국에 의해 체포되었을 것이다. 또 집단적 봉기가 일어났다면 성전당국은 매우 강력한 진압작전에 돌입했을 것이다.

이 두 가지 경우가 아니라면 무엇일까. 에드워드 샌더스의 주장처럼, 예언자적인 집단적 퍼포먼스라고 보는 것이다. 부패한 성전을 개혁하려는 행위가 아니라 성전 자체에 대한 발본적인 해체적 상징행위라는 얘기다. 담론 자체로 보자면 너무나 급진적이어서 위험하기 짝이 없지만, 자칫 공권력이 개입하여 과잉진압을 하면 성전에 운집한 대규모 대중을 자극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여 성전경비병도 로마 병사도 예언자적 퍼포먼스에 대해서는 섣부른 개입을 자체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그 퍼포먼스를 예수가 홀로 수행했다면 판매소 사병에 의해 제압되어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판매소 사병이 제압하기엔 너무 많은 이들이 집단으로 벌인 사태였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나중에 예수를 체포하러 온 대제사장의 사병들도 누가 주모자인 예수인지 알아보지 못하여 배신자의 지목이 필요했다.(〈마르코복음〉 14,44: “예수를 넘겨줄 자가 그들에게 신호를 짜주기를 ‘내가 입을 맞추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니, 그를 잡아서 단단히 끌고 가시오.’ 하고 말해 놓았다.”) 그것은 온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퍼포먼스가 여러 사람에 의해 벌어진 진단적 행위임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예수의 이 행위가 주모자가 누구인지 분간할 수 없는 상황, 즉 여러 사람이 집단적으로 벌이는 난동극이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하여 우리는 이 사건이 예수일행의 ‘집단적 퍼포먼스’였다고 본다. 이것은 이 행위가 본래 군사적 저항에 목적을 둔 반란적 성격이 아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퍼포먼스라 함은 ‘힘의 대결’이라는 차원보다는 어떤 것을 가상적으로 보여주는 상징행위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 행위는 무엇을 상징하였는가? 여기서 우리는 성전의 환전상과 짐승 거래상의 의미를 물어야 한다.

 

Cecco del Caravaggio - Christ Driving the Moneylenders out
Cecco del Caravaggio - Christ Driving the Moneylenders out

성전은 야훼의 집, 야훼의 본거지를 상징적으로 보려주는 기능을 한다. 그리고 이것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행위가 성전의 제사의식이다. 제사의례는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심지어 후각적 효과를 통해서까지 대중에게 그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의례를 통해 전시되는 과장된 감각적 자극은 그 자체로는 특별한 의미를 갖지 못하지만, 제사공동체 성원들에겐 그 의미 효과를 증폭시키는 혹은 가상 체험케 하는 매체의 역할을 한다.

그런데 성전의 제사의례에서 환전상과 짐승 거래상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왜냐면 식민지 국가에서 야훼가 식민지 종주국 로마의 황제나 그들의 신들에게 예속적이지 않으며 나아가 그들 위에 군림한다는 것을 상징하기 위해서는 통용화폐가 아니더라도 (로마가 아니라) 야훼를 상징하는 화폐가 필요했다. 이것은 환전상의 역할이 제의에서 결코 뺄 수 없는 요소임을 의미한다.

또 제의행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속죄의 제물이다. 이것은 소, 양, 비둘기 등의 동물이 제의에서 결정적인 구성요소임을 의미한다. 결국 흠 없는 짐승을 바칠 수 있게 하는 거래상의 존재 또한 예루살렘 성전 제의에서 필요불가결한 구성요소임을 뜻한다. 따라서 이들의 존재는 유대인에게 있어서 부도덕한 행위가 아니다. 그러므로 예수가 “강도의 소굴”이라고 성전을 비난한 것은 성전 제의에서 상행위의 대한 문제제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전 제의 자체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비판인 것이다.

이것은 매우 도발적인 행동이지만, 반란의 성격보다는 예언자적 상징행위의 성격을 강하게 띤다. 명절 때 성전에 모인 무수한 사람들의 대다수는 메시아를 대망하는 순례자들이다. 그들 중 다수는 식민지 체제에 대한 비판의식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다. 다만 스스로 그러한 문제의식을 표현할 용기는 없었고, 대신 메시아적 존재의 대리행위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 이들 앞에서 예수일행의 이 집단적 행동은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었음이 분명하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면서 풍문으로만 듣던 ‘예수라는 이’가 과연 메시아임에 틀림없음을 보다 강하게 인식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일행의 이 집단적 퍼포먼스는 주모자의 얼굴을 노출시키지 않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받을 수 있는 아주 효과적인 행위였다.

셋째 날, 〈마르코복음〉에 의하면, 예수는 성전 안에서 많은 논쟁을 벌였다고 한다. 아마도 논쟁이 셋째 날에 집중된 것은 그날에 관한 기억이 압도적으로 논쟁이었던 탓일 것이다. 아무튼 이것은 최소한 예수가 성전 안에서 많은 논쟁을 하였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특히 성전에서의 퍼포먼스는, 예수에 대항하는 많은 사람들과의 논쟁을 자극했을 것이고, 또 메시아를 대망하는 다른 사람들이 예수가 진정 메시아적 존재인지를 시험하려는 동기에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을 것이다. 요컨대 성전 사건 이후 이곳에서 벌어진 논쟁들은 예수라는 인물을 화두로 하여 폭발적으로 펼쳐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 중 많은 경우는 예수일행이 직접 개입하였을 것이다.

이 3일간의 성전 활동은 모두 낮에 벌어진다. 밤이 되면 예수일행은 성전 밖, 특히 성 밖으로 빠져나간다. 대중이 썰물처럼 흩어지는 시각에 성 안에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것이기 때문이겠다. 이것은 갈릴래아에서 예수일행이 벌였던 비밀스러움과 상응하는 행위다.


 

김진호
현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기획위원.
전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소 연구실장, 한백교회 담임목사, 계간 《당대비평》 주간.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서울신문》 《주간경향》 《한겨레21》 등의 객원컬럼리스트. 《예수역사학》 《예수의 독설》 《리부팅 바울―권리 없는 자들의 신학을 위하여》 《급진적 자유주의자들. 요한복음》 《권력과 교회》 《시민K, 교회를 나가다》 《반신학의 미소》 등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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