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절의 예루살렘,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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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의 예루살렘,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 김진호
  • 승인 2019.08.14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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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메시아 ― 예루살렘 유월절의 정치학-2

도대체 왜 예루살렘으로 가는 그 길에서 경외심과 두려움에 빠지게 될까. 이제까지 어느 길인들 경외심과 두려움이 없었겠는가. 하나하나가 모두 위기였고 하나하나가 모두 소명에 불탄 행보 아니었는가. 그런데 왜 하필 이 대목에서 그 모순된 심사에 빠져야 한다는 것일까.

중요한 것은 예루살렘이라는 장소만이 아니라 그 시간이다. 내내 그때가 언제인지 침묵하고 있던 〈마르코복음〉의 설화자는 그때가 유월절(πασχα) 절기였음을 실토한다.(14,1) 유월절은 칠칠절, 초막절과 함께 이스라엘인들의 3대 절기의 하나인데,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절기였다.

유월절이 니산월(이스라엘 월력의 첫째 달로 오늘 우리의 태양력의 3~4월 중에 있다) 15일이고, 이날 직후의 안식일 다음 날부터 시작해서 49일이 지난 다음 날, 곧 50일째 되는 날이 칠칠절(또는 오순절)이다. 그리고 티쉬리월(이스라엘 월력의 일곱 번째 달로 오늘 우리의 태양력의 9~10월 중에 있다) 15일부터 7일간은 초막에서 생활하는 초막절기다.

그런데 이 절기들은 유월절과 칠칠절이 추수기이고 초막절이 파종기에 오니, 이 절기들은 모두 농경사회에 적합한 절기다. 한데 유대아 종교 전통 속에서 지역 성소들을 사교(邪敎)적 장소로 간주하고 예루살렘의 중앙성전만을 강조하게 되면서 이 절기를 지키는 것은 농민에게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중앙성소에 와서 최소한 15일간 머물면서 각종 집회에 참여해야 하니, 농번기에 오가는 시간까지 최소한 20일 이상 걸리는 이 절기를 지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여 예루살렘 종교 전통에서 이 절기들은 그 시기에 순례 가능한 이들이 중심이 되는 절기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런 절기에 누가 예루살렘으로 갈 것인가. 우선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귀족들과 시민들은 당연히 이 절기의 주역이다. 한편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순례길을 떠날 수 있는 이들로는 지역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손꼽힌다. 그리고 팔레스티나 밖의 도시들에서 순례객으로 오는 무수한 열혈신자들도 간과할 수 없다. 한편 상인들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시기 예루살렘은 엄청난 소비의 장소가 되니 당연한 일이겠다.

또 그 시기에는 무수한 예언자들이 몰려든다. 그중에는 하느님나라 사건을 천지개벽의 사건으로 믿는 혁명적 예언자들도 적지 않다. 또 지방의 율법학자나 바리사이지만 묵시사상 같은 혁명적 사상을 가진 이들도 적지 않은데, 그들은 외형상 순례자처럼 보이지만, 현실 체제에 대해 반감이 강한 이들이라는 점에서 순례자의 범주를 넘는다.

그런데 이 시기에 예루살렘으로 몰려드는 이들 중 주목할 대상은 오클로스들이다. 그들 중에는 순례객이나 상인들의 노예가 있다. 혹은 그 무렵 예루살렘에는 제삿밥이 넘쳐나고 순례객이 가난한 이들에게 베푸는 십일조 부조물이 넘쳐난다. 그 밥을 기대하며 떠돌이들과 거렁뱅이들도 몰려온다. 혹은 예루살렘 도성 인근의 산속에서 순례객이나 상인들을 공격하여 물품을 노략질하는 강도들에게도 이 절기들은 대목의 시간이다.

그런 이들이 이 명절 기간에 대거 예루살렘으로 몰려온다. 그렇게 오는 것은 야훼께서 정했다는 이날을 최대한 경건하게 보내기 위함이다. 또 혹자들에겐 그 경건함의 날에 대목을 기대하고 오거나 최소한의 자비를 기대하며 온다. 그리고 또 다른 혹자들은 하느님의 변혁적 사건을 기대하며 온다.

이런 이들이 가장 많이 몰려드는 시기가 바로 이 3대 절기였다. 그중 유월절 시기에 더 많은 이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특별히 재앙이 심하거나 유력한 메시아적 존재에 관한 풍문이 널리 확산되고 있을 때 더 많이 방문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주목을 받았던 인물 요한이 죽은 뒤, 그이가 부활했다는 소문과 함께 예수가 등장했다. 어쩌면 다른 추종자들이 부활한 요한임을 자처하면서 열정적으로 활동했을 수 있으니, 요한운동의 파장은 예수에게로 수렴된 것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여 도처에서 예수 같은 메시아적 존재가 나타났으니, 일단의 사람들에게는 이 큰 절기 때에 예루살렘으로 몰려들 동기가 더욱 강했을 것이다.

어떤 가설적 추정으로는 예루살렘의 주민들의 몇 배나 되는 이들이 예루살렘으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도시 안에 그들을 수용한 숙소가 부족하니 훨씬 많은 이들은 도시 인근의 마을과 야산에서 노숙을 했을 것이다. 예수일행도 올리브산의 모처에서 노숙했다.

그러니 이들 큰 절기 때의 예루살렘은 치안에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평소보다 몇배 이상의 사람들이 몰려들고,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고, 도적들과 혁명가들까지 가세하니 도시의 경찰력으로는 치안을 유지하는 일이 거의 불가능했다. 특히 문제인 것은 테러리스트나 혁명가들이 체제를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데 있었다. 예루살렘은 상징적으로 중요한 곳일 뿐 아니라 엄청난 재화가 축적된 곳이기도 했으니, 이곳이 반도들에게 공격당한다면 팔레스티나 전체 사회를 위기에 빠뜨릴 수도 있었다.

그래서 갈릴래아 지방의 서쪽 경계 밖 해안지대에 있는 대도시 카이사리아에 주둔하고 있는 로마황제의 정무관과 그 휘하 부대가 거의 전병력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왔다. 그들은 성전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안토니우스 요새에 주둔하여 성전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 명절 기간에 예루살렘은 치안을 유지하려는 자와 치안을 뚫고 변혁을 도모하는 자 사이의 치열한 경합이 벌어지곤 한다. 그 경합은 공공연한 반란으로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다소 은밀하고 다소 퍼포먼스적인 크고 작은 사건들이 벌어진다. 군대와 경찰은 은밀한 회합을 적발하고자 최선을 다했고 퍼포먼스가 확대되어 큰 저항사건으로 번지지 않게 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또 저항집단은 당국에 가장 효과적인 저항을 도모하며 도처에서 음으로 양으로 사건들을 일으킨다.

예루살렘의 유월절은 그런 곳이었다. 그때 그곳으로 예수가 왔다.
 

김진호
현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기획위원.
전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소 연구실장, 한백교회 담임목사, 계간 《당대비평》 주간.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서울신문》 《주간경향》 《한겨레21》 등의 객원컬럼리스트. 《예수역사학》 《예수의 독설》 《리부팅 바울―권리 없는 자들의 신학을 위하여》 《급진적 자유주의자들. 요한복음》 《권력과 교회》 《시민K, 교회를 나가다》 《반신학의 미소》 등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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