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웃음과 낙관을 잃지 않으며, 비폭력과 평화의 힘을 통해 세상을 바꿀 것입니다.”
제 삶의 방향이자 다짐이 되는 문장입니다. 고난과 어려움이 닥칠 때 혼자서 버티고 극복하기는 어렵습니다. 곁에서 기꺼이 함께 고민을 나누고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조력자들을 만드는 것이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웃음과 낙관을 잃지 않으며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혼자 세상을 바꿀 수도 없겠지요. 조력자들과 함께라면 비폭력과 평화의 힘을 모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도전과 노력을 포기하지 않고 즐겁게 해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또한 저마다 조력자와 조력자들로 구성된 공동체에 속하기 위해서는 우선 다양한 자리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합니다. 적게는 둘이 담소를 나누는 만남부터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대규모 행사까지, 우리는 다양한 자리에 참여를 하기도 하고 행사를 기획하기도 합니다. 돈은 필요한 것이지 소중한 것이 아니라 여기는 사람들이 중요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 다양한 관계성입니다.
사람들이 연결될수록 세상을 해석하는 스펙트럼은 넓어지고 그로부터 돈이 내모는 승자독식의 경쟁사회에서 벗어나려는 힘이 강해진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관계성으로 만나기 위해 우리는 서로를 초대하고 또한 초대받기도 합니다. 다채로운 만남의 장에서 모든 이들이 완벽하게 만족하는 행사는 불가능하더라도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행사를 만드는 것은 가능하고 또 가능해야만 합니다.
행사에서 간단한 식사를 준비한다고 하면 대부분 김밥이 마련되어 있는데요. 저는 고기를 먹지 않는 페스코 채식을 합니다. 그래서 채식김밥이 있는지 물어보면 준비되지 않았거나 채식김밥이라고 주는데 햄이 들어가 있거나 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채식김밥이라고 하지만 육류,어류,해산물,알류,유제품 등을 모두 먹지 않는 비건채식의 기준에 맞춰 마련하지 않을 때도 많았답니다. 계란과 햄은 뺐는데 맛살이나 어묵은 빼지 못한 경우가 그렇습니다. 채식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행사 주관자가 스스로 아는 범주에서 짐작하기보다는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당사자의 의견을 청취하면 더 세심하게 먹을 거리를 준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의 지하 또는 2층 이상의 장소에서 행사를 하면 휠체어 장애인의 접근성이 확보되기 어렵고, 1층이라 하더라도 입구 턱이 높거나 입구의 폭이 좁아도 출입이 쉽지가 않습니다. 아이돌봄이 제공되는지 행사정보에 나와 있지 않으면 아이를 동반해도 되는 자리인지 몰라 양육자들은 참여를 주저하게 되기도 하지요.
다음은 행사를 준비하는 기획자가 사전에 매뉴얼로 삼아 참고하면 좋을 내용을 정리를 한 것인데요. 주어진 상황과 조건에 맞춰 최대한 맞추되 혹여 충분하게 고려하지 못하는 처지라면 미리 알려 양해를 구하고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는 태도를 조직 내에서 나누면 향후 더 나은 자리를 준비할 수 있으니 기획자들은 꼭 염두해보면 좋겠어요.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자리를 위한 기획 매뉴얼>
1. 장소 섭외
휠체어 사용 장애인의 편의를 고려하여 답사를 한다. 줄자를 이용하여 폭과 높이를 재고 고정되어 있는 물체가 이동 가능한지 알아둔다.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까지 있는 곳을 함께 고민하는 순간 선택할 수 있는 장소가 거의 없다는 것이 서글픈 현실이지만, 그래도 기도와 함께 찾고 또 찾으면 아주 가끔 기적적으로 있다. 장소를 떠올릴 때 휠체어라는 단어가 함께 연상될 수 있도록 평소에 연습을 해 두는 것이 좋다.
2. 김밥을 준비하는 경우
햄 빼는 경우, 햄•계란•맛살•어묵을 빼는 경우를 고려해야 한다. 채식 인원을 사전에 예측할 수 없으면 애초에 준비할 때 예상 인원에 맞춰 단무지•당근•시금치(부추)•오이•우엉•유부•김치 등의 내용물로 만든 김밥으로 준비해서 채식/비채식 구분 없이 모두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준비를 하는 것이 좋다. 주문할 때 상세하게 설명을 하면 어떤 가게라도 맞춰서 만들어주시니 큰 부담을 갖지 않고 요청을 하면 된다.
3. 동영상을 제작할 경우
국내용으로 제작을 할 경우에도 반드시 한글 자막 넣는 것을 일상화 하면 언제라도 정보를 접하게 되는 청각장애인들의 접근성이 높아질 것이다.
4. 명함을 만들 때
점자를 넣도록 하자. 시각장애인이 정보를 수집하는데 있어 보다 편의를 제공할 수 있다.
5. 식당을 선택할 때
1) 참가자중에서 휠체어 사용 장애인이 있고 뒤풀이 참석 의사가 있을 경우는 가급적 행사 장소에서 뒤풀이를 뒤이어 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좋다.
2) 고깃집에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밑반찬이 많이 나와서 된장찌개(고깃집 된장찌개는 해물이나 고기가 거의 들어가지 않음, 육수만 물로 해달라고 하면 됨)와 쌈과 함께 먹을 수 있는 곳으로 고른다. 채식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먹을 수 있도록 자리를 배치해 두는 것이 좋다. 조직의 감수성에 따라 이 방법을 선택하지 않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3) 주의! 밑반찬을 쓰께다시(거의 해산물이나 튀김)로 여겨 횟집으로 뒤풀이 장소를 잡는 경우... 비건에게는 낭패다. 먹을 수 있는 것이 거의 전무하다. 페스코 채식하는 사람 중에서도 물고기를 안 먹는 경우가 있으니 참고할 필요가 있다.
4) 치킨집은 감자튀김, 전집은 감자전, 일반 술집은 도토리묵/두부김치가 있는지 확인을 해 두는 것이 좋다.
5) 청소년과 함께 하는 행사 후 뒤풀이는 밥집으로 잡고 청소년을 배제하는 술자리 뒤풀이는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면 좋다. 특히 청소년을 보내고 술자리 뒤풀이가 이뤄지는 일이 없도록 주최측이 모니터링 하는 것을 제안한다.
- 청소년들의 자발적인 술자리 모니터링이 아니라 비청소년이 뒤풀이 없다고 청소년을 먼저 보내고 비청소년들끼리 청소년을 배제한 상태에서 술자리 뒤풀이를 하는 것을 주최측 실무자가 포함되어 있는 상황에서 경계하자. 이것은 청소년이 술을 마시면 안된다, 담배를 펴서는 안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다. 어떤 자리라도 청소년을 배제하고 따로 자리를 마련해서는 안된다는 데 기준을 둔 설명이다.
6) 동물권, 채식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야 하는 조직인데 아니한만 못한 뒤풀이(고기를 굽는 테이블 사이에 된장찌개 먹는 채식 테이블 배치 등) 장소 조건이라면 차라리 공식 뒤풀이를 생략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7) 채식식당이 아니더라도 주방에서 조리를 하는 분과 직접 얘기해서 채식조리법을 말씀드리면 조건에 맞춰주는 식당이 꽤 있으니 주로 행사하는 장소 주변 식당에 대한 정보를 미리 파악해두면 편리하다.
6. 놀이방 관리
큰 행사인 경우 놀이방을 준비하고 담당자를 섭외하고 꼭 비용을 지불하자. 재정이 열악하여 많은 비용을 책정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 차비와 식대 정도만이라도 예산에 확보하는 것이 맞는 방향이다. 다행히 재정이 넉넉하다면 전문적으로 아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단체에 의뢰를 하면 보다 안전하고 맞춤형으로 준비를 할 수 있고 이는 향후 주관단체에 대한 신뢰로 이어져 많은 양육자들이 믿고 행사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7. 여성 화장실 별도 구비
성중립화장실은 여성화장실로 만들고 부득이하게 남성화장실로 정할 경우 소변기는 막아서 이용할 수 없게 해야 한다.
8. 다과 준비
다과를 준비할 경우 전체를 비건다과로 할 조건이 되지 않는다면 비건채식다과를 따로 준비하고 “채식하시는 분들은 이것만 먹을 수 있어요.” 라는 메시지를 써둬서 채식하지 않는 분들이 다른 다과 중심으로 먹을 수 있게 유도한다.
9. 메뉴얼 공유
참가자 중에서 장애인과 비건이 없다 하더라도 행사 기획을 할 경우 매뉴얼로 공유를 하고 있으면 예측하지 않은 상황을 맞을 경우에도 당황하지 않고 여러 경우에 빠르게 대처가 가능하다.
10. 강사 섭외
강사 섭외할 때는 일정이 되는지 확인하고 두번째로 꼭 강의료 얘기부터 하자. 가능하다면 선입금도 좋다. 공연, 강연 섭외를 할 때 재능기부를 요구하지 않도록 하자. 감사하게 재능기부로 참여하게 되는 경우에도 소정의 선물이나 차비 정도는 챙겨드리는 것이 좋다.
11. 문자통역, 수화 서비스
조직의 큰 행사에서 문자통역서비스를 제공하고 중요한 발표를 할 경우 수어통역을 배치하도록 한다.
* 절대원칙
모든 것을 고려할 때 가장 소수자인 경우(어린이, 비건, 장애인, 성소수자 등)를 상정하여 배치한다면 감수성이 높은 행사를 기획할 수 있을 것이다.
손지후
다른 세상을 꿈꾸는 밥차 “밥통” 연대매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