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요한묵시록 2, 1-3,22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은 너
요한묵시록의 저자는 그리스도교 교회에 황제숭배를 요구하며 박해한 로마의 일곱 황제 중에서 여섯 번째 황제, 도미티안 통치하에서 살았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실상 도미티안 황제는 어느 누구보다도 잔인하였고, 자기를 숭배하라고 강요하였다. 초대교회의 한 전승은 묵시록의 저자인 요한이 주후 95년에 도미티안 황제에 의해 파트모스 섬으로 추방되었다가 그뒤 네르바 황제 때에 18개월 만에 풀려났다고 전한다. 그러나 요한이 겪은 박해와 고난은 단순히 어느 한 황제의 포악함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수직적이고 폭력에 의해 평화를 유지하려고 했던 로마 제국의 통치구조가 낳은 결과였다.
이런 박해 속에서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제국과 타협했다. 그것은 황제숭배를 받아들임으로써 교회의 박해를 피하고자 한 것이었다. 이런 교회의 모습을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에페소 교회는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버렸으며(묵시 2,5), 베르가모 교회는 발람의 가르침에 따라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었으며(2,14 이하), 티아디라 교회는 이세벨처럼 우상숭배와 음행을 행하고 있었다(2,20 이하), 라오디게이아 교회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 우유부단한 태도를 취해서 지적을 받는다.
"나는 네가 한 일을 잘 알고 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차라리 네가 차든지, 아니면 뜨겁든지 하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러나 너는 이렇게 뜨겁지도 차지도 않고 미지근하기만 하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버리겠다."(3,15–16)
그러나 필라델피아 교회는 비록 작은 공동체였지만 고난을 끝까지 견디어 내었다. "나는 네가 한 일을 잘 알고 있다. 네 힘은 비록 미약하지만 너는 내 말을 잘 지켰으며 나를 모른다고 부인한 일이 없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너를 위해서 문을 열어놓았다. 그리고 아무도 그 문을 닫을 수 없다."(3,8) 중국의 사마천이 쓴 「사기」에서 전하고 있는 강태공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첫 마음을 지켜 나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쳐 주고 있다.
꿈꾸는 유배의 땅, 유리
은나라 마지막 왕인 주왕은 원래 매우 똑똑하고 말재주도 뛰어났으며, 게다가 맨손으로 맹수를 때려잡을 정도로 힘이 장사였다. 그래서 처음 왕위에 올라서는 영토를 크게 넓히고 번영을 누렸다. 하지만 갈수록 제 머리와 재주만 믿고 교만해졌다. 특히 절세의 미녀 달기를 얻고부터는 전형적인 폭군이 되어갔다. 사치와 향락만을 일삼고 정사를 내팽개쳤으며 신하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비난하는 사람은 무조건 처형시켜 버렸다.
그 당시 백성들로부터 존경받는 충신들이 있었는데 구후와 악후, 그리고 서백창이 그들이었다. 폭군 주왕은 구후의 딸을 아내로 맞았으나 얼굴이 못생겼다는 이유로 죽여버렸으며, 이에 구후가 맹렬히 항의하자 그를 죽여 소금에 절여버렸다. 또 이를 악후가 비난하자 악후도 죽여 육포를 만들었다. 서백창이 이를 보고 기가 막혀 탄식하자 주왕은 크게 노해서 서백창을 '유이'라는 벽지에 유폐시켜 버렸다.
주왕의 폭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죄없는 신하들을 태워 죽였으며, 벌거벗은 남녀들의 집단 정사를 즐기기도 했다. 더구나 자기 말을 안 듣는다고 만삭이 다 된 임산부까지 찔러 죽였다. 한편 유폐되어 있던 서백창은 학문에 정진하여 드디어 「주역」을 완성했다. 그러던 중에 서백창의 부하들이 서백창을 구해내기 위해 주왕에게 미녀와 명마들을 뇌물로 바쳤고, 덕분에 서백창은 유폐에서 풀려나 자기 영지였던 주나라로 갔다. 그는 훌륭한 정치를 펴서 주나라를 발전시켰는데 널리 인재를 찾았다. 이때 발탁된 자가 곧 강태공이다.
강에서 낚은 귀인, 강태공
강태공은 동해의 어느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학문을 좋아해서 집안일을 돌보지않고 학문에만 열중했다. 원래 가난한 집이었지만 나중에는 끼니조차 이을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그러자 그의 아내조차도 견디지 못하고 도망쳐 버렸다. 그래도 그는 학문에만 매달렸다.
한편 강태공은 서백창이 널리 인재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부터 강가에 나가 낚싯대를 드리우기 시작했다. 그때 나이가 이미 칠순이 넘어섰을 때였다. 하지만 강태공은 하루 종일 한 마리 고기도 낚지 못하자 옷까지 벗어던지며 화를 벌컥 냈다. 곁을 지나던 어부가 이를 보고 말했다. "서둘지 말고 천천히 해보시오." 결국 강태공은 사냥을 나왔던 서백창에게 발견되어 주나라의 부국강병에 이바지했다.
서백창이 죽고, 뒤를 이은 무왕 역시 강태공을 스승으로 모셨는데 주나라는 서백창의 위패를 수레에 싣고 은나라를 징벌하는 군사를 일으켰다. "옛말에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은나라 주왕은 달기의 말만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면서 하늘을 공경할 줄 모르고 포악한 정치를 일삼아 백성들은 도탄에 허덕이고 있다. 나는 이제 천명을 받들어 은나라를 토벌하려 한다. 지금 토벌하지 않으면 천하가 더욱 혼란에 빠질 것이다. 호랑이처럼 용감히 싸워라. 도망하는 적은 죽이지 말고 우리나라 일꾼으로 만들라. 모두 일어서라. "
그리하여 주나라의 10만 병력이 은나라 공격에 나섰다. 은나라의 주왕은 코방귀만 뀌었으나 은나라 군사들이 무기를 거꾸로 메고 나와서 투항하는 바람에 은나라는 망하고 주왕도 죽었다. 무왕은 주왕이 죽은 곳으로 가서 황금도끼로 목을 잘라 흰색 깃대에 걸었다. 그러고 나서 구후와 악후의 무덤에 제사를 지내고, 임산부도 잘 거두어 묘소를 만들어 주었다.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
강태공은 80년을 가난하게 살다가 80년을 영광스럽게 살았다. 궁팔십 달팔십(窮八十 達八十)이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 강태공은 주나라가 천하를 평정하는 데 일등공신으로 인정되어 고향인 산동 지방에 있는 제나라의 제후로 임명되었다. 강태공은 제나라를 가는 길에 늑장을 부렸다고 하는데, 길 가던 노인이 이르기를 "때란 얻기는 어려우나 잃기는 쉽다." 라는 말을 듣고 걸음을 재촉하여 때마침 쳐들어온 오랑캐를 물리칠 수 있었다.
그후 강태공은 그 고장의 풍습을 존중하면서 제도를 정비했다. 특산물인 소금 생산과 수산업을 장려하여 수많은 백성들이 안녕을 누리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강태공은 수레를 타고 시찰을 나갔다. 어느 거리를 지나가고 있는데 낯이 익은 노파의 초라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 수레를 돌려 살펴보니 옛날 자기를 버리고 도망친 아내가 아닌가! 강태공은 부하를 시켜 그 여인을 불렀다.
"고개를 들어보시오." 그 여자가 고개를 들어보니 바로 옛 남편이 아닌가! 그녀는 다시 같이 살 수 없겠느냐고 애원했다. 그러자 강태공은 물을 한 그릇 가져오도록 했다. 그러고는 땅바닥에 쏟은 후 그녀에게 그릇에 다시 주워담으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담을 수 없었다. "한번 엎지른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법이오. 마찬가지로 한번 끊어진 인연도 다시 맺을 수 없소."
늦기 전에 다시 이을 인연
사르디스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요한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깨어나거라. 너에게 아직 남아 있는 것이 완전히 숨지기 전에 힘을 복돋아 주어라. 나는 네가 하는 일이 내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완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네가 그 가르침을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를 되새겨 그것을 굳게 지켜라. 그리고 네 잘못을 뉘우쳐라. 만일 네가 깨어 있지 않으면 내가 도둑처럼 너에게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너는 내가 어느때에 너에게 나타날지를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3,2-3)
한번 끊어진 인연을 다시 잇기는 어렵지만 묵시록은 거듭해서 우리에게 회심할 기회가 있음을 알려준다. 영영 헤어질 하느님과 인연을 다시 이을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만큼 관대하고 넉넉한 분이 하느님이시다. 그러나 결정적 국면에서는 후회할 틈조차 없을 게 분명하다.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듯이 온 세상을 다 사들일 것처럼 행동하지 말아야 한다. 먹은 것을 게워내고, 정결한 마음으로 그분이 가르쳐 주신 계명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인생을 새로 계획할 필요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아무리 후회해도 마음을 바꿀 수 있다면 부끄러울 까닭이 없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곧 기회이다.
[마무리 묵상]
처음 당신이 저를 쳐다보았을 때
달아오르던 제 얼굴을
당신도 보셨던가요.
부끄럼으로 고개 들지 못하고도
와락 당신께만 달려가고 싶었던 그날
첫 밤의 저희 마음을 당신은 읽으셨나요.
처음 먹은 마음, 순결한 마음,
당신을 향한 열정으로 가득차서 십자가조차 마다 않겠다고
입을 앙다물던 저희가
부질없는 세상사에 찌들고
황폐해져서
하루의 안일을 탐하지 않도록
주님, 오로지 당신만이 도와줄 수 있을 거예요.
저희가 첫 마음,
그대로 그렇게 이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느님,
우리주님.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