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에서 쓴 인생 지침서, 토정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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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에서 쓴 인생 지침서, 토정비결
  • 한상봉
  • 승인 2018.12.09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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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묵시록 묵상-5

[오늘의 성경] 요한 묵시록 1,1-20

시절이 어수선하고 엄청난 고난 속에서 희망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엔 당연히 거짓 예언자도 나타나고 참 예언자도 나타나는 법이다. 그런 시대일수록 참과 거짓을 식별할 수 있는 눈을 가진다는 것은 중요하며, 그래야 민중의 마음속에서 비로소 희망이 움터 나온다. 특히 세기말에는 언제나 말세론이 힘을 얻고, 민중을 현혹시키곤 했다. 그러나 이 역시 민중들이 얼마나 구원을 바라고 목말라 하는지 드러내는 징표가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구한말에 숱한 신흥종교가 일어나서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동학이 그러했고, 증산교, 원불교가 그러했다. 대종교는 급기야 단군신앙을 중심으로 민족해방운동에 전면으로 나섰다. 중국에서도 서구열강이 성난 파도처럼 밀어닥치자 태평천국을 희망하는 난리가 일어났다.

묵시록은 유언비어

요한의 「묵시록」 역시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로마 제국의 엄청난 박해에 직면한 상태에서 쓰여진 것이다. 박해 속에서 쓰여진 묵시록의 언어는 ‘비밀언어’로 또는 ‘유언비어’처럼 현실에 절망하고 있던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빠르고 폭넓게 나돌았다. 그러므로 묵시록은 당연히 심판의 언어이면서 동시에 위로와 희망의 언어였다.

묵시록은 구약의 예언서 전통을 따르고 있다. 요한은 “나는 주님의 날에 성령의 감동을 받고….”(묵시 1,10)서 유배지 파트모스섬에서 겪은 환상경험을 묘사했다. 일곱 등경 가운데 사람같이 생기신 분이 서 계셨는데, 그분의 머리와 머리털은 양털같이 희고, 눈은 불꽃같았고, 발은 풀무불에 단 놋쇠 같았으며 음성은 큰 물소리 같았다고 전한다.

그분을 뵙자 요한은 그분 발 앞에 엎드려 두려워했다. 그분이 요한에게 “너는 네가 이미 본 것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기록하라.”(1,19)며 사명을 주신다. 이는 옛 히브리 예언자들의 경우와 흡사하다. 이사야 예언자의 경우에도 예언활동을 개시하기 전에 하느님을 직접 뵈었다(이사 6,1). 그러고는 “이제 나는 죽었다. 나는 더러운 사람들 틈에 끼어 살면서 만군의 야훼, 나의 왕을 눈으로 뵙다니….”(6,5)하며 두려워하였다. 그에게 사명이 내려졌다.

예언자 전승은 미래의 환상을 이야기 하면서 ‘오늘 여기’의 삶을 강조한다. 그리고 출애굽의 경험이 전달해주는 평등정신과 해방공동체에 대한 전망을 제시한다. 지금 여기서 억압적인 지배체제와 우상숭배를 거절하고, 오로지 하느님의 법과 계명을 지키라는 비판정신을 가르친다. 박해속에서도 죽기까지 충성하면 영원한 하느님 나라가 눈앞에 와닿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 분은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 모든 눈이 그를 볼 것이며 그분을 찌른 자들도 볼 것입니다. 땅 위에서는 모든 민족이 그분 때문에 가슴을 칠 것입니다.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멘.”(묵시1,7)

그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으면 말 끝에 ‘아멘’이란 말까지 덧붙였을까 짐작이 간다. 아멘은 곧 그렇게 되길 바란다는 뜻 아닌가.

 

토정비결의 다양한 판본

인생 지침서, 토정비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앞두고 흉흉한 민심을 바로잡고, 도탄에 빠진 민중에게 삶의 희망을 전해주고자 했던 인물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토정 이지함이다. 화담 서경덕의 제자이기도 했던 그는 「토정비결」의 지은이로도 유명하다. 「토정비결」 역시 흔들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바로잡아 ‘오늘 여기’의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자 쓰여졌다.

「토정비결」을 읽다보면 그가 백성들을 얼마나 사랑하였는지 가슴 뭉클하게 느낄 수 있다. 특히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 즉 언제 돈을 벌 수 있는지 언제 관직에 오를 수 있는지, 하는 의문들을 다독거리며 교훈적인 방법으로 이끌어주고 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니다.

“두둥실 보름달도 때가 되면 이지러져 마치 손톱 끝처럼 작아집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운이든, 그 무엇이든 오르다가 내려가고 내려가다가 올라가는 법입니다. 한없이 벼슬이 높아지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한없이 불운과 고통속에서만 사는게 아닙니다. 다만 전생에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은 그 값을 치러야만 되므로 다소 발복이 늦어지긴 하지만 결국 행운을 만납니다. 이 생에 못 누리면 다음 생에 누리면 될 것 아닙니까? 그대 자신이 생각해서 올바른 삶을 살아가다 보면 반드시 좋은 날이 찾아올 것입니다.”

현실에 절망하지 않고 꾸준히 올바르게 인생을 살아가노라면 좋은 날이 오리라는 희망을 준다. 그리고 운명의 주인은 바로 자신임을 깨닫도록 돕는다. “일을 내면 일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당신이 하기에 따라서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합니다. 누가 주체입니까? 당신의 문제는 당신이 주체입니다. 부처도 신명도 하늘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하였다.

「토정비결」은 민중의 사기를 북돋거나 주위를 경계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경계와 위로와 희망을 동시에 주는 민중 계몽서였던 것이다. 그래서 이 책 여기저기엔 근면과 정직, 성실과 제 분수를 지키라는 대목이 그득하다. 모든 문구 또한 조선 팔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상에서 딴 것으로, 산이나 들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들풀이나 잡목으로 백성들의 삶을 비유하였다. 그래서 글을 읽지 못하는 무지렁이도 한번 듣기만 하면 신수를 쉽게 알아 들었다.

구름 따라 떠돈 도인, 이지함

토정 이지함은 조선 중엽인 1517년에 한산 이씨의 명문 집안에서 태어났다. 본디 보령 출신이지만 어릴 적에 벼슬살이를 하던 맏형 이지번을 따라 서울에 와 글공부를 했다. 광릉에 살 적에 몸을 돌보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였는데, 공부하다 몸을 상할까 걱정한 주변에서는 그에게 등불기름조차 보내주지 않았다 한다. 그러자 그는 도끼를 들고 산에 가 관솔을 꺾어다 불을 피워놓고 자욱한 연기 속에서 밤을 새워 글을 읽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끝에 「제자백가」를 두루 통달하였는데, 과거시험에는 영 관심이 없었다. 주변 사람들이 왜 그러냐고 물으면 “사람들이 제각기 좋아하는 바가 있소. 나는 내 좋을 대로 살 것이외다.”라고 대답했단다. 게다가 토정 이지함은 천문, 지리, 의약 및 운수 보는 책, 점 치는 책까지 열중해서 공부했다.

글공부를 대충 마무리하자 그는 지팡이를 짚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지팡이를 벗삼아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녔는데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걸었다. 졸음이 오면 두손으로 지팡이를 잡아 몸을 의지하고 고개를 숙인 채 잠들었다 한다. 이럴 적마다 코고는 소리가 우레와 같았다. 이런 중에 율곡 이이, 우계 성혼 같은 이들과 사귀고, 지리산 밑에서 후학을 가르치던 남명 조식과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어느 때는 개성의 화담산방에서 서경덕에게 학문을 익혔다.

 

토정의 초상화

민중을 위한, 그러나 짧았던 벼슬행

토정은 평생 벼슬에 나아가지 않으려 했다. 그는 “귀하기는 벼슬하지 않는 것보다 더 귀함이 없고, 부하기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 보다 더 부함이 없다.”라고 역설처럼 말하곤 했다. 토정이 서울을 버리고 아산으로 낙향 할 때다. 율곡은 그에 대해 이렇게 읊었다.

"살림도구는 한 수레에도 차지 않는데
티끌 세상 떠나 외진 곳으로 가시는구려.
당신의 집은 세 칸이면 족할 것이요
먹고살기에는 두어 뙈기 밭이면 넉넉하리니"

냉정하고 이지적인 율곡 역시 시끄러운 조정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노라면 토정의 생활이 오히려 부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토정 선생은 마흔 살이 되었을 때 팔자에 없는 포천현감으로 부임한 적이 있었다. 부임하던 날도 행색은 베옷과 짚신과 포립 차림이었다. 저녁때가 되어 아전이 그럴듯하게 밥상을 차려 내오자 새 원님은 멀건히 밥상을 내려다보다가 먹을 것이 없다며 상을 밀어냈다. 사령이 다시 떡 벌어지게 밥상을 차려 내오자 이렇게 말했다. “먹을 것이 없구나.” 당황한 구실아치가 자신의 잘못을 묻자, “우리의 민생이 어려운데 모두 앉아서 먹으면서도 절개가 없구나.” 하며 잡곡밥과 나물국 한 그릇을 가져오게 하여 맛있게 먹었다.

만년에는 아산현감 자리를 맡은 적도 있었는데, 가난한 사람들을 모아 장사도 시키고, 기술도 가르쳐 생계를 삼도록 했다. 또 늙거나 힘이 없는 사람들은 짚신을 삼게 하여 그 판돈으로 쌀을 사서 먹게 했다. 또한 걸인청을 만들어 걸인들로 하여금 짚신을 삼아 생계를 돕도록 하였다. 때로는 두루마기를 입고 나갔다가 거지에게 옷을 벗어주고 온 적도 있다고 하니, 신분고하를 따질 것 없이 모두 그를 존경했다.

마포나루에서 베푼 자비행

벼슬에서 물러나와서는, 큰 집을 짓고 거지들을 모아 살게 하면서 글을 가르치고 장사하는 법, 쇠를 불려 연장을 만드는 법 따위를 익히게 했다. 어느 섬에 들어가서는 섬 가득히 박을 키워서 저자에 내다 팔았는데, 곡식을 사니 몇천 섬이나 되었다 한다. 이 곡식을 마포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자신은 마포나루의 빈민굴 한가운데 토굴을 짓고 밤에는 토굴에서 잠을 자고, 낮에는 토굴 위에서 지냈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가 흙정자에서 산다고 하여 ‘토정 선생’이라 불렀다. 여기서 그는 사람들에게 의술을 베풀고, 대소사에 처방을 내려주었다. 마침내 소문이 퍼져서 이 토굴에 사람들이 들끓자 한 해 신수를 보는 책을 한 권을 지어냈는데, 그 책이 바로 「토정비결」이다.

이런 행적을 보고 김계휘가 율곡에게 물었다.
“토정은 제갈량에 비교할 수 있습니까?”
“물에 비하면 기화와 이초와 괴석 같은 것이지 콩이나 조는 아니로세.”

이 말을 전해 들은 토정 선생은 빙그레 웃으며, “내 비록 콩과 조는 못 되어도 도토리 정도는 되지.”라고 했다. 이 정도 사람됨이 이루어 졌으니 민중이 그의 마음 안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묵시록」은 「토정비결」과 마찬가지로 민중에 대한 깊은 연민에서 나온 결과이며, 미래를 알아맞히는 점보는 책이 아니다. 각박한 현실에서도 올곧은 생활을 지켜 나가노라면 좋은 날,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인생의 지침서이다. 그래서 요한은 「묵시록」의 서두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실천하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그 일들이 성취될 시각이 가까웠기 때문입니다.”(묵시 1,3)

[마무리 묵상] 

죽어가는 목숨 더욱 서럽고
살아 있는 생령 더욱 안타깝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건대 이토록 모질고
한탄스러운 얼룩이 드리워져 있는지
생각건대 생각건대
마음이 저려옵니다, 주님.
세상을 살며
가장 모진 목숨 하나 살려놓고
가장 슬픈 목숨 하나 위로해 주고
가장 애달픈 영혼 하나 희망으로
되살릴 수 있다면
그로서 족할 노릇이겠지요.
주님, 저희 하느님.
한밤중에 일어나 홀로 눈물 거두고
저희보다 더한 눈물 자욱한 이에게
편지를 띄울 수 있는 그런 마음
저희에게 지어주세요.
그러면 저희 영혼이 얼마나 맑아질까요, 하느님,
우리 주님.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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