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나웬] 영적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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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나웬] 영적 삶
  • 헨리 나웬
  • 승인 2016.05.17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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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이타적인 길-3

제자됨이 아래로 내려가는 예수님을 따르라고 요구한다면, 그것이 진정으로 인간다운 선택일까? 예수님을 전적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아니 오히려 그것은 자기 파괴, 심지어 자기학대의 길에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실제로는 우리가 이미 이런 질문에 대답을 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으며 오히려 위로 올라가고 있는 우리들의 길에 적절하도록 조정되어야 한다고 결정해 버리지 않았던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여 냉소적이거나 도덕주의자의 입장에서 묻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도를 갖고 있다면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다. 아니다, 나는 이 문제에 관하여 영적 삶이라는 맥락 속에서 질문을 제기하고자 한다. 아래로 내려가는 삶을 우리가 수월하게 해낼 수 있고 그래서 우리의 과제는 단순히 그리스도를 모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에게 드러난 본질적인 진리를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우리의 길이 아니라 하느님의 길이다. 하느님이 하느님으로서 우리에게 드러내는 길은 아래를 향하여 이끌리는 것에 있다. 왜냐하면 오로지 하느님이신 한 분만이 거룩한 특권들을 벗어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우리처럼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앙이 그 기반을 두고 있는 위대한 신비는 우리와 전혀 같지 않으며, 우리와 비교될 수 없고 우리와 경쟁관계에 놓일 수 없는 존재가 우리들 가운데에 들어와 죽을 우리의 육신을 취했다는 신비다.

아래로 내려간다는 이 표현은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존재의 세포 하나하나가 경쟁과 대립의 정신에 스며들어 있어 죄를 짓고 부서진 현재의 우리 조건 깊숙이 감추어져 있는 순수본질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나 우리 자신의 최고의 갈망과 판단까지 거슬러가며 위로 올라가는 익숙한 길에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고 있다. 자신이 겸손하다고 느끼는 순간, 우리는 다른 이웃보다 우리가 더 겸손한가를 평가해 보면서 주위의 보상을 주장하는 자신들을 발견하게 된다.

ⓒ한상봉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거룩한 길, 십자가의 길, 그리스도의 길이다. 우리의 주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려는 것은 바로 이렇게 거룩하게 사는 길이다. 성령의 길이 세상의 길과 얼마나 근본적으로 다른가는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서간의 글에 명료하게 드러나 있다.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롭고 또 감추어져 있던 지혜를 말합니다. … 이 세상 우두머리들은 아무도 그 지혜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 우리는 …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가르칩니다. …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것들을 바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 이제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오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 선물에 관하여 인간의 지헤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가르쳐 주신 말로 이야기 합니다. 영적인 것을 영적인 표현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1코린 2,7-13)

이 말씀들은 영적 삶의 의미를 간단명료하게 요약하고 있다. 즉 영적 삶이란 그리스도의 성령 안의 삶이다. 성령은 하느님의 심연에 닿으시는 존재이며 우리에게 주어지는데, 성령에 의하여 우리는 정신과 마음의 새로운 지식으로 하느님의 길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 돌아가셨을 때, 제자들은 상실과 실패감을 깊이 경험했다. 그들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고 예수님이 당했던 것처럼 그들도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떨며 한데 모여 있었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래로 내려가는 길을 이해 하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약속하셨던 성령이 오시던 날, 모든 것이 변했다. 성령께서 그들의 두려움을 흩어버렸다. 성령은 그 들에게 예수님이 참으로 누구이신가를 알 수 있도록 했고, 그들에게 새로운 길을 드러내 주었다.

성령은 제자들에게 힘을 주어 온 세상에 십자가의 길, 아래로 내려가는 길을 구원에 이르는 길로 당당하게 선포하도록 했다. 예수님 자신께서 우리에게 성령이 누구신지 말해준다. 수난 전 날 밤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 그분께서는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주실 것이다.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요한 16,7-15)

여기에서 예수님은 하느님 존재의 충만함이 성령이시라고 우리에게 알려준다. 예수님이 “진리”라고 말했던 충만함이다. 성령께서 우리를 완전한 진리로 이끄실 것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한 것은 성령 이 우리를 거룩한 생명에 온전히 참여하는 사람들로 만들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한 거룩한 생명, 거룩한 삶은 우리를 새로운 백성으로 만들어, 새로운 때에 새로운 정신을 갖고 살아가게 할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과 때에 깨어 있게 된다는 의미다.

그리스도의 성령 안에서 그리고 성령을 통하여, 우리는 모든 곳과 모든 때에 살아가는 또다른 그리스도들이 된다. 성령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이 아셨던 모든 것을 알게 되고 예수님이 하셨던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위대한 지혜다. 이 시대의 어떤 대가들도 알 수 없는 지혜, 성령을 통하여 오기 때문에 오로지 우리가 영적으로만 배울 수 있는 그런 지혜다.

이처럼, 제자됨은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의 삶이다. 성령에 의하여 우리는 거룩한 삶에 들어올려지고 볼 수 있는 새로운 눈, 들을 수 있는 새로운 귀, 그리고 만질 수 있는 새로운 손을 받게 된다. 하느님의 새로운 삶, 생명 안에 들어 올려져서 우리는 세상으로 보내진다. 그리하여 세상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눈으로 본 것, 우리 자신의 귀로 들은 것, 우리 자신의 손으로 만진 것을 증언하게 된다. 그것은 우리 안에 살아 움직이시는 하느님 말씀의 생명을 증언하는 일이다.

십자가의 길, 하느님의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우리가 예수님을 모방하려고 해서 우리의 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성령과 맺은 관계에 의하여 우리가 살아있는 그리스도로 변화되기 때문에 우리의 길이 되는 것이다. 영적 삶이란 우리 안에 살아계시는 그리스도의 성령의 삶이다. 이 성령의 삶은 우리가 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강하게 하고, 갇혀 있으면서도 자유롭게 하며, 고통 중에 있지만 즐겁게 하며, 가난하지만 부유하게 하고, 위로 올라가는 사회 한 가운데에 살면서도 아래로 내려가는 구원의 길에 있도록 우리를 해방시키는 삶이다.

이러한 영적 삶이 과학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물론 수수께끼 같고, 만질 수 없으며 막연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영적 삶이 가져오는 본질적인 변화라는 열매에 관해서는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사랑, 즐거움, 평화, 인내, 친절, 선함, 충실함, 관대함, 그리고 자기-절제 같은 것들은 참으로 우리 주님께 속하는 특성들이고 우상숭배, 질투, 탐욕, 성적 태만, 전쟁 그리고 기타 죄악들로 찢겨진 세계 한 가운데에서 주님의 현존을 보여주고 있다(갈라 5,19-23 참조). 우리 세계의 위로 올라가는 움직임과 그리스도의 아래로 내려가는 움직임을 구분하기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 니다.

(출전: 참사람되어, 2015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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