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머튼은 이런 말을 했다. “성인이란 완전한 인간이 아니라 온전한 인간이다.” 성인이란 인간적 흠결이 없는 청정무구한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다. 다만, 그 사람의 어떤 부분이 하느님을 온전히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통로를 통해 하느님께 다가갈 수 있다. 사실 성인전을 읽어보면, 그 성인을 존경하면서도 그 삶은 어쩐지 닮고 싶지 않은 경우가 많다. 뭔가 병적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성인들 중에는 사랑스러운 사람도 있지만, 곁에 두고 친구로 삼을 마음은 별로 내키지 않는 경우도 있다. 훌륭한 사람이긴 하지만, 함께 있는 시간이 피곤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신앙인들은 ‘유쾌한’ 성인을 원한다. 하느님의 정의보다는 그분의 ‘자비’를 보여주는 성인을 원한다. 나도 남도 행복한 성인 말이다.
그러나 그처럼 말랑말랑한 성인을 만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수전 손택이 그랬다. 그는 가톨릭 신자도 아니고, 당연히 성인도 아니다. 그는 까칠한 여성이고, 그래서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그는 하느님 없이 하느님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고독한 변방의 예술가처럼
내가 처음 수전 손택을 만난 것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찍은 한 장의 사진에서였다. 그리고 무작정 사서 읽은 책이 <우울한 열정>(수전 손택, 시울, 2005)이었다. 이 에세이집은 남성 중심적이고 고집불통인 폴 굿맨, 언제나 우울한 발터 벤야민, 난해하고 괴팍하고 잘난 체 하는 앙토냉 아르토 등을 다룬다. 이들은 유쾌한 영웅이 아니라 한결같이 우울한 작가들이었다.
수전 손택은 발터 벤야민을 분석하면서, “우울한 인간이 어떻게 해서 의지의 영웅이 될 수 있을까?” 물었다. 여기서는 그는 “실제적으로 우울한 인간은 중독자가 되기 쉬운데, 진정한 중독의 경험은 고독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일을 하기 위해서는 고독해야 한다.”고 단언했다. 심지어 가족관계처럼 자연스러운 것에도 매이지 않는 고독만이 “일에 몰두할 자유”를 얻는다. 우울한 사람은 “자기가 인간성에 있어 부족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며, 이 때문에 더 일에 완전히 집중하고 몰입한다고 말한다.
‘미쳐야 미친다’는 말처럼, 손택은 벤야민을 평가하면서 “문장에서 다음 문장이 이끌려 나오는 게 아니라, 각 문장이 첫 문장이자 마지막 문장인 것처럼 썼다.”고 했다. 그의 탁월함이 그의 고독과 몰입에서 온다고 강조한 것이다. 다수의 성인들이 ‘오로지 하느님에게만’ 몰두하기 위하여 고독을 선택한 것은 어쩌면 우연이 아니다. 이런 태도는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리 쉬운 선택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기질 때문이든지 아니든지 결과적으로 진리를 위해 자잘한 행복을 포기한 순교자를 닮았다.
수전 손택은 우울함과 광기, 고통과 천재성 사이를 배회하는 ‘전위적 지식인’들을 지지하며, 그들의 내면을 향한 열정과 어지럼증 나는 예술을 열렬히 찬미했다. 손택은 이미 상식이 된 진리에 부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류의 경험이 아직 닿지 않은 변방의 예술에 관심을 갖는다. 손택은 ‘열정이 배어 있는 전위적인 언어의 확장’에 관심을 가졌다.
감응하는 동사적 인간
수전 손택(Susan Sontag, 1933-2004)은 1933년 1월 16일 뉴욕에서 유대계 리투아니아인 혈통을 지닌 3세대 미국인으로 태어났다. 그는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재혼한 어머니와 계부 밑에서 자랐다. 알코올 의존증자인 어머니 옆에서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낸 손택은 일찌감치 자신의 운명이 결함투성이라고 여겼고, 가족 역시 불운한 감옥이라고 생각했다. 어려서부터 손택을 버티게 해 준 것은 책이었다. 그에게 문학은 광활한 현실로, 자유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여권이었다.
총명한 독서광이었던 손택은 열다섯 살에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에 입학하고, 이듬해 시카고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조숙하고 독립적인 여성이었던 손택이 시카고 대학의 강사였던 필립 리프와 결혼할 때가 열일곱 살이었다. 1955년에 하버드 대학 박사과정을 마치고는 파리 대학, 옥스퍼드 대학, 소르본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두각을 드러냈다. 어디든 가보고, 무엇이든 해보고 싶었던 손택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텍스트를 ‘투쟁적으로’ 읽었다.
손택은 8년 만에 결혼생활을 끝내고 아들을 홀로 양육하기로 결심했다. 생계도 자신이 책임지며 싱글맘으로 고달픈 삶을 고수했다. 그때부터 밥벌이로 글쓰기를 하면서, 소설까지 발표했다. 이렇게 작가로 등단해서는 영화감독, 연극 연출가, 문화비평가, 사회운동가로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
여러 분야를 한꺼번에 횡단하는 삶을 살았던 손택은, 특별히 세상의 전쟁과 야만, 폭력과 빈곤, 차별과 테러리즘에 가슴 미어지는 고통과 슬픔을 느꼈다. 그녀는 평생 이렇게 묻고 답했다. “우리 아닌 다른 사람이나 우리의 문제 아닌 다른 문제에 감응할 능력이 없다면,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겠습니까?”
그러나 손택은 ‘명사’적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질문과 동시에 행동으로 답변하는 ‘동사’적 인간이었다. 1960년대에는 미국의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미국은 대량학살 위에 세워졌다.”라고 말했던 손택은 국가주의에 반대하며 “국가는 끊임없이 재확인되는 공동체이자 허깨비”라고 말했다.
1988년에는 국제펜클럽 미국 지부회장 자격으로 서울에 방문해, 군사독재에 항거하다 구속된 김남주 시인을 비롯한 문인들의 석방을 호소했다. 1989년에는 이란 최고 지도자가 <악마의 시>를 쓴 작가 살만 루시디에게 사형선고를 내리자 작가들을 결집해 구명운동을 벌였다. 1993년에는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벌어지자 사라예보로 가서, 전선이 불과 300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극장에서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했다. 2001년 9.11 테러사건이 벌어지고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를 공격하자, 수전 손택은 이를 애국심으로 포장된 ‘사이비 선전포고’라고 비판했다.
타인의 고통과 구경꾼
2011년 3월, 다국적군이 지중해 연안의 리비아를 공습했다. ‘오디세이 새벽’이라는 다분히 문학적인 은유를 사용한 이 전쟁을 많은 사람들이 안방에서 텔레비전으로 시청했다. 그때 그들이 본 것은 전쟁의 실체가 아니라, ‘테크노 전쟁의 이미지’였다. 여기서 수전 손택은 “죽어가는 병사들의 머리 위로 미사일과 포탄들이 날아가며 그려낸 섬광의 흔적으로 가득 찬 하늘”을 보았다. 이역만리에서 벌어진 이 전쟁은 장대한 불꽃놀이처럼 박진감 넘치고 아름다워서 초현실주의 화가의 그림 같았다. 비참한 전쟁의 참화는 사라지고, 미학적 전율만 불러일으키는 전쟁이다.
재탕 삼탕으로 미디어가 보여주는 이 전쟁은 어떤 영화도 줄 수 없는 리얼리즘과 스릴과 흥분감을 느끼게 한다. 이럴 때, 우리는 어느새 남의 집이 불타는 것을 먼발치에서 팔짱 끼고 바라보는 팔자 좋은 구경꾼이 된다고 손택은 지적한다. 이런 관음증을 수전 손택은 ‘CNN 효과’라 불렀다.
손택은 <타인의 고통>에서, 텔레비전이 같은 전쟁을 넌더리가 날 만큼 이미지로 보여주면서, 사람들은 이윽고 전쟁에 대해 무감각해진다고 비판했다. 포르노그래피와 마찬가지로 전쟁과 테러와 같이 잔혹한 상황을 담은 사진도 마찬가지다. 이런 참혹한 사진도 중독성이 있어서 반복될수록 시시한 느낌이 들기 때문에 수위가 점점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수전 손택은 “인간은 왜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화재 사건이나 충격적인 살인 사건을 다룬 신문 기사를 늘 읽는가?” 묻는다. “불행에 대한 사랑, 잔학함에 대한 사랑은 연민만큼이나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손택은 남의 고통에 대한 관음증적 향락이야말로 우리를 ‘도덕적 괴물’로 만든다고 비판했다.
손택이 줄곧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 때문이다. 세상에 너무 많은 고통이 있고,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공감능력’이다. 그래서 수전 손택은 “타인의 고통으로부터 눈을 돌린다면, 더는 ‘우리’라는 말을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전쟁과 테러 한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고통이 ‘스펙터클’이나 뉴스, 또는 볼거리가 되는 사회는 추악하다. 카메라에 담긴 희생자는 누군가의 남편이고 아버지이고, 아들이자 형제이다. 또 누군가의 어머니이고 아내이고 딸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이 람페두사에서 ‘무관심의 세계화’를 지적한 것처럼, ‘전쟁 관광’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세상은 지옥이나 다름없다.
손택의 글에서는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가슴 시리는”이라는 형용사가 자주 발견된다고 한다. 이는 그가 구체적인 개인에게 주목하기 때문이다. 지금 아파하고 있는 그 사람은, 내가 그 이름을 몰라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구체적인 삶의 무늬와 빛깔이 있는 개인이다. 그래서 그의 글에는 언제나 약자에 대한 따뜻한 연민과 강자에 대한 분노가 있다. 이를 두고 <사랑하고 쓰고 파괴하다>(행성B잎새 출판사, 2017)에서 이화경은 “그녀의 글에는 어딘가 물기가 스며 있다. 그녀의 글은 강자에겐 저미고, 약자에겐 스민다.”고 했다. 고통 받는 자에 대한 연대와 권력에 대한 저항이 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소멸하는 자를 사랑한다
<은유로서의 질병>이라는 에세이는 순전 손택이 43살 무렵 유방암 4기 판정을 받고 나서 세상에 내놓은 책이다. 손택은 아버지를 폐결핵으로, 어머니를 폐암으로 잃었다. 본인 역시 늘 질병에 시달렸다. 그의 대표작 <타인의 고통>은 1998년 자궁암 선고를 받고 절제수술 중에 구상한 작품이라고 한다.
그는 자신의 고통마저 창작을 위한 자극으로 삼았다. 이후 골수성 백혈병으로 고통을 받다가 2004년 12월 사망했다. 그러나 손택은 “평생 징징거리거나 응석을 부리지 않았다.”고 이화경은 전한다. 병이 늙은 육신을 유린할 때도, 그는 “명랑할 것, 감정에 휘둘리지 말 것, 차분할 것, 슬픔의 골짜기에 이르면 두 날개를 펼쳐라.”는 말로 자신을 위무했다고 한다.
아들인 데이비드 리프는 수전 손택의 일기를 출판하면서 <다시 태어나다>(수전 손택, 이후, 2008)에서 어머니에게 “예술은 생사의 문제”이며, “진지함은 최고의 덕목”이었다고 적었다. 손택이 열네 살이었던 1947년 11월 23일자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나는 믿는다.
1. 죽음 이후에는 어떤 개인적인 신도, 삶도 없다고.
2. 세상에서 가장 바람직한 것은 자신에게 진실할 수 있는 자유, 즉 정직이라고.
3. 사람들 사이에 유일하게 다른 점은 지성이라고.
4. 행복에 대한 유일한 판단 기준은 궁극적으로 한 개인을 행복하게 하는가, 불행하게 하는가고.
5. 누가 됐든 생명을 박탈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우울한 열정>에서 손택은 <마크로풀로스 사건>이라는 희곡에 나오는 ‘적절한 인간 수명’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준다. 한 인물은 먼저 이렇게 말한다.
“겨우 60년 동안 무얼 할 수 있나요? 어떤 즐거움을 누릴 수 있나요? 무얼 배울 수 있나요? 당신이 심은 나무의 열매를 맛보지도 못하고, 당신 이전의 인류가 발견한 것 전부를 알 수도 없죠. 자기의 일을 끝마치거나 본보기를 남길 수도 없어요. 살아보기도 전에 죽게 됩니다. 그렇지만 3백 년을 산다면 50년은 학생으로 지낼 수 있고, 50년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볼 수 있고, 백 년은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며 보낼 수 있고, 이 모든 경험을 하고 난 뒤에 남은 백년은 지혜롭게 살며, 가르치고, 모범을 보일 수 있겠죠. 아, 3백 년 동안 지속된다면 인간의 삶은 얼마나 가치 있을까요?”
그런데 에밀리아 마크로풀로스는 ‘오래 사는 것’이 우리를 더 나쁘게 만든다고 반박한다.
“3백 년 동안 사랑할 수는 없어요. 그리고 3백 년 동안 무엇인가를 소망하고, 만들어 내고, 바라볼 수도 없어요. 참을 수가 없게 되죠. 모든 게 지루해져요. 착하게 살기도 지겹고 나쁘게 살기도 지겹고 ... 그러나 당신의 짧은 생은 당신이 충분히 즐기고 만족하기에 너무 짧기 때문에 모든 게 가치 있는 거예요.”
수전 손택은 “가장 크게 마음을 흔들어놓는 아름다움은 가장 빨리 사라지는 아름다움”이라고 했다. 그래서 소멸될 존재에 대한 무한한 연민을 느끼고, 그들을 옹호했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면 죽기살기로 고민하고, 성찰하고, 그 다음엔 곧장 행동에 나섰다. 그것이 그가 사는 방식이었다. 이 때문에 손택은 2003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거짓 이미지와 뒤틀린 진실로 둘러싸인 세계에서 사상의 자유를 굳건히 수호해 왔다”는 찬사를 받으며 ‘독일출판협회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예루살렘 상 수상연설에서 “팔레스타인 영토에 이스라엘 공동체를 수립하는 행위를 중단하고 빠른 시일 안에 이런 촌락을 해체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모아 둔 군대를 철수하기 전에는 이곳에 평화가 찾아올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전쟁과 평화 문제에 관해서는 단호했다. 손택에게 모든 작가의 언어는 세상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 작가들은 말을 가지고 애태웁니다. 말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말은 가리킵니다. 말은 화살입니다. 현실의 거친 가죽에 박힌 화살입니다. ... 작가가 하는 일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고 사람들을 흔들어 놓는 일입니다. 공감과 새로운 관심의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과 다르게 더 나아지려는 열망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변화할 수 있다는 걸 알게 하는 일입니다. 뉴먼 추기경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높은 세상에서는 그렇지 않지만 이곳에서는 살아가는 것이 변화하는 것이며, 완벽하기 위해서는 자주 변해야 한다.’”
[출처] <가톨릭평론> 2018년 7-8월호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영성센터 코디네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