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
우리는 요즈음 바쁜 날들을 보낸다. 마치도 회전목마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것 같다. 더 빨리, 더 빨리, 더 빨리 – 이런 모습이 우리들이다. 앞으로 가고 있는지, 뒤로 가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 우리 주위에서 끊임없이 돌아가고 있는 세상 속에 우리는 이렇게 존재하고 있다. 이전보다 더 이기적이 되고, 더 탐욕스럽고 더 끔찍한 모습으로. 더 빨리, 더 빨리, 더 빨리 돌아간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섬기러 왔다고 말씀하므로(마태 20,28).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언제나 기도하라고 말씀했다(루카 21, 36). 그래서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 오늘날의 이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가나? 어떻게 섬김을 하는가? 대답은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바대로, “그 순간의 의무”를 다 하는 것이다.
그 순간의 의무 안에서
그 순간의 의무는 하느님이 우리를 어디에 배치하든 간에, 주어진 모든 것을 그 순간에 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아기가 있다면, 우리의 그 순간의 의무는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된다. 그러나 그냥 무감각하게 기저귀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아기에 대한 큰 사랑으로 최선을 다해 기저귀를 바꾼다. 그러면 아기에게서 하느님을 볼 수 있다.
우리의 그 순간의 의무는 마룻바닥을 문지르는 것일 수 있다. 집이 깨끗하게 청소가 되고, 음식은 식탁에 있으며, 식사하는 동안 평화스러운 것을 보게 되면, 천천히 정돈된 분위기가 잡히면서 하느님 질서의 평온함이 우리와 우리 가족 모두에게 스며든다.
우리 소명의 정수는 평범하고 지루한 것 같이 보이는 일상생활을 하느님인 사랑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했던 것처럼 우리의 아버지 뜻을 행해야 한다. 우리의 온 존재를 다해 그 순간의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우리의 정신, 마음, 영혼, 몸, 감정을 다하여. 그 순간의 의무 바깥에 대하여 생각하거나 거기에 정서적으로 관여하게 되면 우리를 조각나게 하고 현재의 순간에 전적으로 몰입할 수 없다. “현재 순간의 계시는 언제나 신선하게 거룩함을 샘솟게 하는 원천이다 … 현재의 순간은 하느님의 현시다”(쟝-피에르 드 꼬사드).
우리의 소명은 숨겨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하느님이 우리를 부르는 곳이다 – 그곳에서 하느님은 우리의 마음으로 들어와 신부 옷으로 입히기 위하여 그분 것이 아닌 모든 것을 발가벗긴다. “모든 것은 거룩함의 수단이며 도구다; 하나도 예외 없이 모든 것이. ‘필요한 한 가지’는 언제나 현재의 순간에서 발견될 것이다. ‘필요한 한 가지’는 매순간이 만들어낸다. 매 순간 일어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깊게 각인하고 있다. 그러므로 현재의 순간을 그 자체의 힘에 의하여 거룩함을 발산하는 성사로 대하라”(드 꼬사드).
그리스도의 얼굴 드러내기
그 순간의 과제를 수행하는 것, 핵심을 살아가는 것, 평범한 생활의 일상을 살아가는 것은 시장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드러나게 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일하거나 놀거나 먹거나 하는 곳에 들어올 수 있다. 그분은 우리의 집에 오거나 식당에 올 것이다. 그분은 학교나 구내식당, 지하철 등 모든 곳에 올 것이다. 열정과 기쁨을 갖고 그 순간의 일상적인 의무를 하는 것으로 우리는 빛나고, 그리스도의 모습을 더 가까이 닮아간다. 우리의 눈은 하느님을 반사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으로서 그 순간의 의무를 다 하자. 우리의 의무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을 큰 사랑으로 하자. 그렇게 하면서, 그리스도의 모상, 그리스도의 모습은 우리가 어디 있든지 사람들에게 보여질 것이다 – 우리의 집에서, 일자리에서, 살고 있는 이웃에서, 교회에서, 가게에서, 우리가 가게 되는 모든 곳에서.
“주님을 찬미합시다” 등등을 말하는 것은 좋지만, 그리스도께서 이와 같이 말씀한 것을 기억하자,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하느님 아버지의 뜻은 무엇인가? 그것은 매우 단순하다. 그것은 그 순간의 의무다.
바깥에 나가 할 수 있는 일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거기에는 언제나 해야 할 그 순간의 의무가 있다. 그리고 그 의무는 반드시 해야 한다. 그 순간의 의무는 하느님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피곤하든 피곤하지 않든, 아프든 건강하든, 우리의 상태가 어떻든, 그 순간의 의무를 다하자. 하느님이 우리에게 요청하는 것은 그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한다면, 사람들은 우리를 따른다. 말로 가르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살아가는 것으로 가르친다. 행함으로써 우리는 가르친다. 존재함으로써 가르친다.
그분이 말씀하는 것을 그냥 행하자
하느님은 우리를 뉘우침으로 이끈다. 어떻게? 그 순간의 의무를 행하는 것은 비극들, 국가들의 죄에 대한 효과적인 참회가 될 수 있다. 그분이 말씀하는 것을 그냥 행하자. 모든 사람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을 그 순간의 의무로 시작해보자. 무심하고 탐욕적이며 이기적인 세상에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일 것인가? 그분이 우리에게 하라고 요청한 것을 함으로써. 그리고 그분의 목소리는 매우 단순하다. 그분은 우리의 온 삶을 다하여, 우리의 온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한다(마태 22,38-39).
하느님의 가슴에 평화롭게 쉬면서, 그분의 심장 고동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우리는 우리 질문에 대한 답을 발견한다: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느님은 단순하게 대답한다, “내가 하라고 청하는 것을 하라. 그 순간의 의무는 나의 의무다. 그리고 내가 어떤 길로 인도하든지 간에, 나의 걸음을 따라오기를 바란다.
나의 발자취를 평가해 보려고 너의 상식적인 지성을 사용하지 말라. 그냥 그 발자취 안에 걸어라. 단순하게, 어린아이처럼 되어라.” 처음에는 따르면서 아마도 우리는 예, 혹은 맡깁니다 하며 큰 소리로 외치겠지만, 점점 거의 속삭이는 소리가 되어간다. 하느님께 귀를 기울이기 위하여 그리고 붙들거나 떨어뜨리거나, 하거나 정지하거나, 기도하거나 일하거나 간에 우리 자신을 훈련시킨다.
매일매일 그분에게 승복하자
그 순간의 의무를 수행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가족이 사는 곳에 그리스도를 위한 집을 마련한다. 우리 가족을 먹일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먹이는 것이다. 가족의 빨래를 할 때 그리스도의 옷을 세탁하는 것이다. 부모처럼, 우리는 그분을 많은 방식으로 돕는 것이다. 그러면, 세상을 떠날 시간이 되고 그리스도 앞에 심판을 받기 위하여 설 때에, 그분은 우리에게 말씀할 것이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 내가 병 들었을 때 돌보아 주었다”(마태 25,35-36).
우리는 특히 가장 어두운 순간에, 그 순간의 의무로 인하여 감사하게 된다. 하느님이 하루 종일 해야 할 일련의 의무들을 마련해 준 것은 인간에게 가장 위대한 선물들 중의 하나가 된다. 그 순간의 의무는 긴 하이킹을 할 때 우리가 사용하는 튼튼한 지팡이와 같다. 지팡이는 강건하고, 어둠 속에서는 제3의 눈과 같다.
우리 자신을 그분의 뜻에 열고 있자. 그렇게 하여, 매일매일 그분의 뜻 이외에는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도록 하자. 우리는 말한다,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당신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 당신이 원하시는 어느 곳이든 저를 보내십시오.” 우리는 순간순간, 매일매일, 하느님의 뜻에 전적으로 승복하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서로의 모습 안에서 그리스도를 보기 때문에 개인적인 어려움을 견딜 수 있게 된다. 사랑은 모든 태도, 걸음, 말 그리고 일을 구원의 도구로 만든다.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18년 1월호
[원출처] <기도의 핵심으로>, 캐더린 도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