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흔히 창세기가 성서의 맨 앞부분에 나오는 것을 보고 그것이 성서의 출발이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 책에서 창세기를 제일 먼저 다루지 않았던 것은 창세기가 역사책도 아니고 창조를 과학적으로 설명한 책도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이 책은 인류와 세상이 어떻게 발전하였는지를 눈으로 목격하고 쓴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관계를 신화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창세기에 관하여
이스라엘 대대손손으로 구전되어 내려온 창세기의 여러 설화들은 유배 생활이 끝난 기원전 500년경에 이르러서야 지금의 모습으로 수집되어 편찬되었다. 국가적인 재난을 당한 후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정신적인 유산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그것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들의 종교 지도자들은 구전으로 전해 내려져 오던 이야기의 실가닥들을 한데 엮어 연속적인 하나의 설화로 지어내었다.
그들은 모세를 그 저자로 추정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 전설이 담고 있는 지혜의 기원이 모세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감을 증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읽고 있는 내용을 기술한 저자들의 이름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에 이름을 남기는 것보다는 종교적인 유산이 담고 있는 지혜를 보존하는데 더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들이 씨름하던 종교적인 질문들은 사려 깊은 사람들이 매 세대마다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그것은 어디로 가는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란 어떤 것인가? 이 세상에 악은 왜 존재하는가? 선한 사람이 고통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궁금증은 특히 유배지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그들은 자신들이 누구이며 그들을 위해 하느님이 갖고 계신 목표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모든 꿈이 산산조각이 난 지금, 그것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욥에 관하여
몇몇은 거기에 대한 해답을 자기 부족의 과거를 담고 있는 고대 설화 속에서 찾아내었다. 이것이 바로 창세기에 나오는 이야기들인 것이다. 한편, 유배가 끝난 후 나타난 다른 저자는 영감을 통한 상상을 통해 똑같은 진리를 발견하였다. 그는 자신이 간파한 내용을 욥이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장편의 서사시로 표현하였다.
창세기와 욥기 모두는 사실을 근거로 하는 이야기 같지만 사실 둘 다 지혜문헌에 속한다.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대목이 나오는 창세기 12장에서는 사실로 여겨지는 세부 사항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저자들에게 인간적인 사실들은 그들이 전하고자 했던 종교적인 진리에 비하면 사사로운 것이었다. 창세기의 둘째 부분은 지혜와 역사적인 요소가 혼합된 글이라고 보면 좋을 것이다.
성서에 나오는 다른 지혜 문헌들로는 시편, 전도서, 지혜서, 아가서 등이 있다. 이들 책들 중 많은 부분은 지혜롭기로 유명한 솔로몬 왕이 썼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고대에서 말하는 저자란 개념은 오늘날과는 그 의미에 있어 많은 차이가 있다. 그것은 이러한 책들이 솔로몬의 지혜와 그 근원을 같이 두고 있다는 뜻으로, 다시 말해,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여졌다는 것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성서의 커다란 주제를 살펴보고자 하므로 여기서 다른 지혜서들에 대해 언급하지는 않기로 하겠다. 그 책들에서 엿볼 수 있는 커다란 주제들은 우리가 이스라엘의 역사와 예언자들의 종교적인 통찰력을 통해 이제까지 살펴본 것들과 동일하다. 우리는 그 동일한 주제들을 이 장의 주제인 창세기와 욥기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원출처] <성서의 위대한 주제들-구약>, 리차드 로어와 죠셉 마르토스, 1987
[번역본 출처] <참사람되어>, 2001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