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어라."(요한 14,1)
우리 자신에게 기도는 어디에서 오는가를 물을 때, 우리는 보통 마음으로부터 기도가 온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렇다면 마음은 반드시 불과 눈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이 이어 따라온다. 기도는 그러므로 불과 눈물을 내용으로 삼는 것 같다.
불은 하느님의 사랑의 불이다. 눈물은 꼭 뉘우침이나 가책의 눈물이라고 할 수 없다. 눈물은 감사에서 오는 것일 수 있다. 눈물은 우리 안에 강을 이룬다.
불과 눈물로 이루어진 이런 기도를 발견하려면, 기꺼이 깊숙이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 자아의 겉에서만 어슬렁거리다가는 어느 곳에도 갈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기도와 내어줌이 손에 손을 맞잡고 있는 우리의 마음의 깊은 차원에까지 닿아야 한다.
불과 눈물의 기도는 침묵 속에 이루어진다. 마음의 모든 것처럼, 기도는 조용히 일어난다. 우리는 하느님께 이상한 작은 방식으로 그분을 사랑한다고 말하려고 애쓴다. 우리가 그분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고 있으며, 그분이 우리에게 내려와 감사한다고 우는 등 기이한 방식으로 표현을 시도해 본다. 하느님은 귀를 기울이고 또 기울인다. 그분은 다른 어떤 사람도 전에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우리에게 귀를 기울인다. 그분은 그분의 온 존재를 다하여 듣는다.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때때로 우리의 기도는 그분에게 닿지 않는다. 미처 닿지 못하는 까닭은 우리의 기도가 실제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실제를 창조했다. 그분은 실제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에게 갈망하는 기도는 실제적인 기도다. 안토니 블룸 대주교는 그의 책 <기도하기>를 시작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실제가 아닌 존재가 되기로 애쓰는 순간, 거기에는 아무 것도 말하거나 가질 것이 없다. 우리는 허구의 인간이 된다. 비실제적으로 현존하고, 이 비실제적 현존으로는 하느님께 다가갈 수 없다”고 서술하였다.
진리가 사랑이다. 우리는 기도하지만, 서로를 사랑하는 데 실패한다.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는데 실패한다. 우리는 심지어 우리 자신도 사랑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적을 사랑하지 않으며, 우리의 생명을 순교자들처럼 내놓지 못한다. 우리는 이런 것들에 대하여 말하고 또 말하지만 그것들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비록 눈물에 젖고 불로 타오르지만, 마치도 벽돌 벽으로 막힌 것처럼, 하느님께 닿지 못한다.
기도가 사랑 속에 뿌리내리기 위하여, 우리는 갈등에 당당히 맞서려고 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화를 낼 때, 그들은 함께 모여서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할 마음이 있어야 한다, “자, 난 화가 나. 이것이 왜, 그리고 이것이 바로 실제적으로 내 마음 상태야.” 또한 그렇게 마음을 열은 결과를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여기에서 진리를 외치고 있는 사람은 상대방일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화가 났다. 왜냐하면 당신은 관심을 받고 싶은 데 아무도 당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말해야 하는 것을 두려움 없이 말하라는 초대를 받고 있다. 인간존재로서, 우리는 두려워할 수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리를 말한다. 그렇게 한다면, 사람들은 우리를 믿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믿음을 둘 것이다.
사는 동안 내내 우리는 상황을 똑바로 곧게 마주해야 할 것이다. 그런 태도를 우리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우리의 친구들과, 우리의 동료들과 함께 해야 할 것이다. 분노를 숨기려고 하면서는 아무것도 달성하지 못 할 것이다. 상황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는데 실패하는 한 –잘못이 우리에게 있을 때 그 잘못을 시인하거나, 상대방에게 잘못에 대하여 물어보는 것– 우리와 하느님 사이에 투명하지 않은 세계가 있을 것이며 진실의 부족이 드러날 것이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서로를 끔찍하게 상처 입힐 수 있다. 하느님은 왜 하필 우리에게 적들을 사랑하라고 말하는가? 우리의 가장 최악의 적은 공산주의자가 아닐 수 있다. 우리자신이 될 수 있다. 나는 당신의 적일 수가 있다. 우리는 때때로 상대방 목을 조르고 싶은 느낌을 가진다. 우리는 진리에 부름에 받았다. 그리고 용서하라고 초대받았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다른 이가 못 박힐 십자가가 되라는 초대를 받았다. 우리는 이 점에 대하여 솔직해져야 한다.
신뢰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은총을 훔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서로를 신뢰해야 하고, 구석에서 불평불만을 하며 돌아다닐 수는 없다. 그런 불평불만은 어떤 사람의 등에 칼을 꽂는 것과 같고, 우리의 기도를 차갑게 중지시킨다. 신뢰받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신뢰하는 일은 더욱 더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하도록 초대받았다. 우리는 신뢰한다. 하느님이 몸소 신뢰할 가치가 없는 사람들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 모두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기도는 불과 눈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기도를 하느님께 가져간다. 우리는 그분께 우리 사랑의 불꽃과 우리 눈물의 강을 가져간다. 눈물은 감사의 빛 속에서 그리고 슬픔의 어둠속에서 흐른다. 만일 우리가 진리 속에 살아간다면 우리의 마음에는 평화가 있을 것이다. 진리의 불꽃에 의하여 정화되고 우리 안에 있는 잔해를 씻어가 버리는 눈물로 깨끗해지면, 우리는 하느님의 얼굴 앞에 일어설 것이다. 우리도 그리스도께서 몸소 살았고 기도했던 것처럼 살아가고 기도할 것이다.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18년 1월호
[원출처] <기도의 핵심으로>, 캐더린 도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