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엘살바도르 세계는 추상이 아닙니다. … 그것은 대다수의 가난하고 억압받는 남자들과 여자들로 구성된 세계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같은 세계가 우리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이해하는 열쇠를 마련해줍니다. … 가난한 사람들은 우리에게 세상이 실제로 어떤가를, 그리고 교회의 사명이 무엇이어야 하는 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로메로, <목소리 없는 이들의 목소리>에서)
세상을 떠나기 7주간 전, 로메로 대주교는 벨지움의 루벵 대학교에서 “신앙의 정치적 차원”이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하기 위하여 초대되었다. 연설은 그의 신앙의 선언이었다. 그는 정치를 영성이나 신학과 혼동하지 않았다. 다만 복음에 정치적 차원이 있는 것처럼, 영성에도 정치적 차원이 있다고 주장했다.
교회 사명의 열쇠는 가난한 사람들
로메로는 루벵에서 연설을 시작할 때 벨지움이나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계와 엘살바도르나 제 1세계의 숨겨진 비참한 가난 속에서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세계”를 구분하였다. 로메로는 실제 세상의 모습과 교회의 사명이 어떠해야 하는 가를 이해하는 “열쇠”를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발견했다:
“이러한 현실을 경험하고, 그 현실에 우리 자신이 영향을 받도록 허용하는 것은 신앙으로부터 우리를 전혀 분리시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진정한 집인 가난한 사람들의 세계로 우리를 되돌려 보냅니다. 그런 경험은 첫 번째 기본 걸음으로서,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의 세계를 받아들이도록 이끌어줍니다. 그들의 세계에서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실제 얼굴을 발견합니다.
… 그곳에서 우리는 땅이 없고 일정한 일이 없으며, 집에는 수돗물이나 전기가 없고, 아이를 해산할 때에 엄마들이 아무런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며, 아이들을 위한 학교가 없는 농업노동자들을 만납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노동권리가 없으며 그런 권리를 주장 할 때에 알자리를 잃게 되는 공장노동자들, 냉혹한 경제 수치의 처분에 맡겨진 인간 존재들을 만납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남편들이 실종되거나 정치범인 어머니들과 부인들을 만납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비참함이 상상을 초월하고, 가까이 있는 대저택의 영원한 멸시로 고통 받는 빈민가의 주민들을 만납니다.”(로메로, <목소리 없는 이들의 목소리>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얼굴”이라고 로메로가 말한 것은 무슨 의미인가? 정확하게 그는 고통 받고, 견디고 저항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의미했다. 다시 말하자면 토지쟁취와 노동분쟁에 참여하는 사람들, 체포되고 실종되고 암살분대와 비밀경찰에 살해되는 사람들의 얼굴이다. 이러한 세계의 맥락 속에서 로메로는 “시대의 징표”를 읽으려고 애썼으며, 사막의 베두인처럼, 사람들에게 “그곳이 아니라, 이곳입니다”라고 갈 길을 가리켰다.
이것이 로메로가 살았던 세계이고 대주교로서 관심을 두었던 세계다. 이것이 엘살바도르의 교회가 들어갔던 세계이며, 가난한 사람들을 자신의 사목적 사명의 중심으로 삼았고, 마침내는 가난한 사람들의 운명에 동참하였던 세계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투신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가난한 이들의 운명과 똑같이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엘살바도르에서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운명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붙잡혀 가고,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고 주검으로 발견되는 것입니다.”
자선보다 해방을
오스카 로메로 영성의 행동적인 차원을 강조하는 것은 중요하다. 물론 교회는 수세기동안 가난한 이들 가운데에서 살아왔고, 가난한 사람들은 교회 애덕의 충실하고 우선적인 대상의 대부분을 이루어왔다. 그러나 로메로의 고유함은 억압의 구조적 차원과 그 비극적 결과를 모두 드러내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그들이 살고 있는 역사적 현실에 관한 진실을 드러내도록 초대했다는 것이다.
로메로는 가난한 사람들의 절망적 상황을 자선으로 개선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그보다는 가난한 이들의 해방과 자유의 회복을 믿었다.
“교회는 사람들의 자유를 간절히 바랍니다. …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가리키는 운명을 성취하기 위하여 그들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삶의 주창자로서 사람들이 자유를 누리기를 호소합니다.”
로메로는 또한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역사적 실제의 복음적 차원을 깨닫도록 격려하였다. 가난한 사람들은 역사 속에서 하느님의 육화를 보여주는 자리이고, 오늘날 고통 받는 그리스도의 성사이다.
“인간의 얼굴이 결여된 이 세계 안에서, 야훼의 고통 받는 종의 이 현세적 성사 안에서, 저의 대교구 교회는 자신을 육화하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 저는 이에 관하여 얼마나 많은 일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무한한 기쁨을 갖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방관하지 않기 위하여 노력해왔으며 … 길가에 상처입고 누워있는 사람을 우회하지 않고,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그 사람에게 다가가는 노력을 해왔기 때문입니다.”(로메로, <목소리 없는 이들의 목소리>에서)
[원출처] <오스카 로메로-삶과 글에 관한 성찰(1917~1980)>, 마리 데니스, 레니 골든, 스코트 라이트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17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