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메로 대주교 "사목결정은 하느님 안에서 민주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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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메로 대주교 "사목결정은 하느님 안에서 민주적으로"
  • 마리 데니스 등
  • 승인 2018.01.22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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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로메로-6

아길라레스에서 루틸리오 그란데 신부의 장례미사 때 로메로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은 그란데 신부와 저와의 개인적인 관계에 대하여 말할 때가 아니며, 오히려 순례를 계속할 우리 모두를 위한 메시지를 이 시신으로부터 모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덧붙인다, “잊지 맙시다. 우리는 오해, 박해에 노출된 순례 교회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사랑의 힘을 지니고 있기에 그 교회는 평화롭게 걸어가는 교회입니다.”

로메로는 목소리가 없는 가난한 사람들의 예언자적인 옹호자로 행동함으로써 단지 그들에게 목소리를 되찾아준 것만이 아니었다. 루틸리오 그란데처럼, 그는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와 능력이 그들의 운명과 따라서 교회의 운명에도 영향을 주는 결정들을 내릴 수 있다고 신뢰했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속한 성직자 공동체와 교구의 사목요원들도 같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Oscar Romero

로메로 대주교, 민주적인 결정과정을 따르다

두 가지 역동력이 로메로의 결정을 특색 지었다: 그것은 협력과 민주적 과정이었다. 루틸리오 그란데와 동반자들의 살해자들에 대한 교회의 응답을 결정하기 위하여 8시간 동안 계속된 회의에서, 로메로는 조용히 앉아 작은 그룹들의 토론과 수차례의 투표가 앞으로 진행될 만큼 충분히 동의를 이끌어 낼 때까지 함께 있었다. 처음부터 로메로는 그의 사목요원들과 성직자들에게 “시대의 징표를 읽는 것”을 도와달라고 간청했으며 거기에 따른 적절한 사목전략을 기획하는 것에도 도움을 청하였다.

사람들에 대한 이러한 신뢰는 단지 그의 겸손을 보여줄 뿐 아니라, 사목적 직분의 모퉁이돌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가톨릭교회의 교계적 실천으로부터 극적으로 갈라져나온 특색이었다. 실상, 이런 특색과 또한 비슷한 실천에 대한 존경이 백성들과, 아직도 정부와 독재자들과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그의 동료 주교들을 괴롭혔던 사제들 사이에서 커져갔다.

민중의 교사처럼, 그는 “대중을 우롱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으며, 그에게 주어진 관심에 빠져 있다는 비난도 들었다. 그는 일기에서 자기 양심을 성찰했다. 그리고 자기-비판적인 사람이지만, 그에 대한 사람들의 사랑과 그들에 대한 그의 사랑이 더렵혀지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렸다. 단순하고 침착한 확신으로 그는 문제가 자기한테 있는 것이 아니라 주교들에게 있다고 결론지었다.

“나는 크리스티안다드의 꾸르실료 사무총장과 저녁을 먹으로 갔다. 가족의 저녁식사였고, 나는 매우 그리스도교적이고 복음주의적인 방식으로 한 주제를 드러내었다. 그것은 ‘일치’라는 주제였고, 나는 그들에게 나의 사랑하는 형제 주교들과 일치를 이루기 위하여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형제적인 방식으로 제안해 달라고 부탁했다. 왜냐하면 이 일치에 있어 내가 어떤 장애물의 원인이라면, 기꺼이 나를 고칠 것이기 때문이었다. ⵈ 그들은 나에게 그 일치는 복음서에 표현된 기준들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일치는 성령의 열매들 중의 하나이고 사람들은 수많은 경우에 교계보다 성령을 더 낫게 해석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 복음주의적 기준과 성령에 따르면, 우리 교구에서 채택한 과정이 하느님의 일이라는 것에 아무런 의심이 없다고 했다.(로메로, <목자의 일기>에서)

교황사절의 반대를 넘어서

로메로는 예언자적 행위가 그를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한다는 것을 즉각 이해하였다: “이것은 교회의 모든 예언자적 사명이 지니고 있는 위험입니다. 심지어 당신 자신의 백성의 비난을 받으며 홀로 있게 되는 위험입니다.” 그가 충분히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다른 주교들과 교황 사절측이 그에게서 등을 돌렸던 것이었다. 단 한 번의 일요일 미사를 발표하고 탄압이 끝날 때까지 공식적인 정부 행사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팸플릿을 발행하자 즉시, 교황 사절인 대주교 제라다가 그에게 전갈을 보냈다. 그는 로메로에게 단 한 번의 미사는 선동적이고 위험하며, 그의 행동은 “무책임하고 경솔하며 변덕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로메로는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미사는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로메로는 조용히 교황사절에게 알렸다.

이러한 결정에도 불구하고, 로메로는 형제 주교들과의 일치를 모색했다. 그들에게 지지를 호소했지만 아무런 호의가 나타나지 않자, 로메로는 다시 한번 살바도르 성직자들의 의견을 듣기로 결정했다. 그는 70명이 넘는 성직자들이 모인 회의를 소집했는데, 그들 대부분은 본당 사목자들이었다. 그는 다시 한번 미사에 대한 그들의 지지나 반대의사를 알고자 했다.

그는 이미 미사에 대하여 자신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전통주의자라는 것을 드러내는 편견의 모습이었다: “만일 성찬례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라면,” 로메로는 물었다, “일요일에 단 한 번의 미사보다 보통 하는 수많은 주일미사에서 하느님은 더 많은 영광을 얻는 것이 아닐까요?”

혼 소브리노는 몹시 놀랐다: “나는 그의 말을 듣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 고백해야 했습니다. 여기 중세의 암흑시대에서 곧장 나온 신학이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은 살아있는 사람

로메로의 예언자적 신학은 가난한 사람들을 옹호하려고 했으며, 그 신학은 강력하고 분명했으며 타협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개인적”인 영성은 더 보수적인 전통, 훈련, 그리고 용어와 밀착되어 있었다. 로메로를 걱정시켰던 것은 사람들 편에 서고 정부에 반대함으로써 직면하게 되는 위험이 아니었다.

일단 사랑의 길이 분명하다고 느낀 이상 그는 주저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만일 그가 경솔함을 두려워했다면,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위험에 빠트릴 수 있거나, 하느님께 영광을 드릴 수 없다는 것을 두려워했다면 혼란이 일어났다. 때때로 그의 영성은 그의 신학을 따라잡기 위하여 뒤범벅이 되었다. 또 다른 때에는 그 반대가 보이기도 했다 – 영적으로 로메로는 역사의 하느님의 여정을 선택했지만, 아직도 그는 걸어가면서 “길에서” 신학을 정리해야 했다.

로메로가 이루었던 모든 볼 수 있는 변화들보다 더 깊은 변화는 아마도 그의 마음속에서 분명히 일어나고 있었던 내적 여정이었을 것이다. 소브리노는 단 한 번의 미사를 하기로 결정했을 때 가장 중요했던 것은 하느님에 대한 그의 이해였다고 믿는다. 오직 교회교부 이레네우스가 “하느님의 영광”은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고 예수회 지부장 세자르 예레즈가 로메로를 확신시킨 후에야 로메로는 믿고 행동할 수 있었다.

사람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낸다. 그들을 억압하는 고통과 죄악의 구조로부터 해방을 향한 투쟁은 인간의 이야기 안에 하느님의 주권을 자리잡게 한다. 이것이 로메로 신학의 정수였다. 그리고 그의 그리스도론은 이러한 이해에서 흘러나온다. 가난한 이들의 얼굴 안에서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았다.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을 바라볼 때마다. 커피를, 사탕수수 혹은 목화를 수확하는 농장노동자들을 볼 때마다, 혹은 일 년 동안 양식을 벌기 위하여 이동노동자들의 집단에 합류한 농민들을 볼 때마다 … 기억하십시오, 거기에 그리스도의 얼굴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얼굴은 농장노동자들의 가방과 바구니 속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얼굴은 고문 받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감옥에서 학대받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얼굴은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림 속에 죽어가는 아이들 안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얼굴은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교회에 청하는 가난한 이들 속에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분을 위하여 말해달라고 우리에게 말씀할 때에 교회가 어떻게 이 청을 거부할 수 있습니까?”(로메로, 1978년 11월 26일 강론에서)

진정한 교회는 더러워지는 걸 꺼리지 않는다

전통주의자로서, 로메로는 그에게 복음이 되어버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가장 깊이 붙잡고 있던 신학적 믿음에 기꺼이 질문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그가 가르쳤던 것이다:

“자기를 순수하고 오염되지 않게 지키려고 하는 교회는 사람들을 섬기는 하느님의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진정한 교회는 창녀들과 세리들과 죄인들과 대화하기를 꺼려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셨던 것처럼 –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자들과 그들의 다양한 정치적 움직임들과도 대화해야 합니다. – 그들에게 구원의 참다운 메시지를 가져가기 위해서.”

그는 또한 가난한 사람들을 옹호한다고 믿었던 사람들과 함께 행동하는 것에 단호했다. 단 한 번의 미사를 하고 학교들의 문을 닫는 결정은 대화를 통해서였다. 일생의 대부분을 교회 권력을 중재하고 교황의 회칙들을 받아들이는 데에 보냈던 한 사람이 공동체 건설의 근본적인 과정으로서 민주주의를 요청하고 있었다. 70명의 성직자들이 두 번째로 투표했을 때, 한 사람을 제외한 전부가 ‘단 한 대의 미사’에 찬성했다. 로메로는 안심했다. 비록 골리앗과 맞서게 될 것이지만, 살바도르 사람들의 교회의 대표로서 복음에 충실하면서 그렇게 할 것이다. 그의 무기는, 역사 내내 취약한 이들의 무기인 – 희생자들을 옹호하고 권력가들에 질문을 던지고 있는 복음이었다.

거의 2년 반이 지난 후, 또다른 신부, 라파엘 팔라치오스가 암살되었을 때, 로메로는 그의 재직 초기에 시작된 공동 성찰의 열매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저는 이 미사를 세 가지 목적을 위한 대교구의 연대의 몸짓으로 해석 하였습니다: 첫 번째는 성찬례의 무한하고 거룩한 가치를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성찬례는 과도한 개인주의로 인해 그리고 언제나 거룩한 뜻과 일치하지 않는 이유로 거행되므로 더럽혀지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또한 사제 직분에 대한 우리의 감사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비참하게 살해된 한 신부를 기억하면서 우리는 성찬례가 없고 사제들도 없을 때에 교회가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합니다. 또한 모든 본당들도 이 하루에 단 한 번의 미사 때에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하느님 백성의 일치된 목소리를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기도하는 백성, 받은 공격에 항의하는 백성들, 그렇지만 미움이나 복수의 욕망으로 하지 않으며, 죄인들에게 회심하라고 청하는 사람들로서.”(로메로, <목자의 일기>에서)

[원출처] <오스카 로메로-삶과 글에 관한 성찰(1917~1980)>, 마리 데니스, 레니 골든, 스코트 라이트
[출처] <참사람되어> 201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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