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그리다
미켈란젤로는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그리면서, <천지창조>에서 처음으로 하느님을 직접 묘사했다. 이것은 대단히 위험한 결정이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1계명에 우상에 관한 항목을 귀속시키고 있으며, 일부 개신교와 동방정교회는 2계명에 “너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든,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든, 땅 아래로 물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 그 모습을 본뜬 어떤 신상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너는 그것들을 경배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는 말을 명토 박아 놓았다. (대신에, 아내를 탐내지 말라는 계명을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는 계명에 포함시킨다)
이런 금지령은 유대인뿐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종교미술 발전을 가로막아 왔다. 다만 동방정교회를 중심으로 ‘하느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셨기 때문에’ 하느님의 형상을 제외하고는 형상을 그리는 것이 허용되었다. 나중엔 삼위일체를 은유적으로 형상화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즉, 그리스도를 만물의 지배자로 그려 넣는 일은 허용되었던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이 한계를 부순 대담한 사람이었다.
물론 미켈란젤로가 그린 하느님은 ‘상징’이다. 조각과 시를 특별히 사랑했던 미켈란젤로는 이 분을 이렇게 시로 묘사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항상
사라지고 말 가벼운 모습으로만 드러내신다.
내가 이 모습을 사랑하는 것은 그저
이 모습이 그분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의 둥근 천장에, 도제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태초 이야기를 담은 창세기 첫 11장의 장면을 340가지 형상으로 그려나갔다. 여기서 하느님은 여러 가지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천지창조>에서는 엄청난 폭풍을 뚫고 격렬하게 앞으로 나아가시는 하느님을 그렸다. 혼돈을 창조로 뒤바꾸는 하느님의 폭풍은 루돌르 오토가 ‘거룩함’의 속성으로 표현한 우리의 전율을 동반한 “두려운 신비”(mysterium tremendum)를 자아낸다. 그분은 사방을 돌진하면서 무한한 천체를 창조하며, 세상을 바쁘게 돌아다니시는 분으로 묘사된다.
발터 니그는 프레스코화는 “하느님의 얼굴을 바라보라는 과제 앞에 인간을 세우고 있다”고 말한다. “감상자는 하느님의 눈길에 자신을 내맡겨야 한다”면서 “하느님의 눈길을 견뎌 낼 수 있는가?” 묻는다. 이는 달달 외우기만 한 기도문을 태워 재로 만들고, 그리스도인을 하느님에게서 발하는 빛 앞에 세우는 일이었다.
“그리스도인은 남들이 가르쳐 준 대로만 하느님을 알고 있는가? 아니면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 속에서 영원하신 하느님과 직접 만났는가?”(발터 니그)
인간의 창조
<아담의 창조>에서 미켈란젤로는 천지창조를 이루신 그분의 ‘말씀’ 대신에 곧게 뻗은 하느님의 ‘팔’을 그렸다. 잠에서 덜 깬 듯한 얼굴로 흙에서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아담에게 하느님께서 팔을 내미신다. 하느님의 손가락과 아담의 손가락이 아주 가깝게 마주하고 있지만, 서로 완전히 닿지는 않는다.
발터 니그는 이를 두고 “아담이 내민 손은 인간이 본질상 하느님을 향하도록 만들어졌으며, 인간의 가장 깊은 갈망은 하느님 안에서만 충족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했다. 여기서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Imago Dei)이라는 신적 근원이 있음이 드러난다.
“하느님의 손가락에 닿아 생겨난 영혼의 불꽃은 인간이 처할 수 있는 가장 어두운 시기에도 인간 안에 머물고 있다. 이 불꽃은 꺼질 수 없다. 특히 인간이 끔찍할 정도로 멸시받는 시대에는 상실될 수 없는 인간 본성의 고귀함이 강력하게 강조되어야 한다.”(발터 니그)
사회교리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인간 존엄성’의 뿌리를 우리는 여기서 발견한다.
[참고]
<미켈란젤로: 하느님을 보다>, 발터 니그, 분도출판사, 2012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1,2> 조반니 파피니, 글항아리, 2008
<미켈란젤로의 생애>, 로맹 롤랑, 범우사, 2007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