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는 내면에서 들려오는 하느님의 부르심의 방향에 긴장을 경험했다. 그것은 관상의 삶과 설교의 삶 사이의 창조적인 긴장이었다. 그는 이 문제를 첫 번째로 형제들과 의논했다. 그들이 ‘고독의 장소’를 원하는지 아니면 ‘사람들 사이에’ 살기를 원하는지 함께 의논했다.
기도한 후 결정이 내려졌다. ‘모든 이들을 위하여’ 생명을 바치신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다른 이들을 위하여’ 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런 결정이 고독의 이상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고, 설교와 사람들 사이에 사는 것과 고독을 결합시키는 결정이었다. 사실, 프란치스코는 삶의 후반기에 은둔소에서 고독에 더 긴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물러선 적이 많았다.
프란치스코는 ‘은둔소에서 종교적으로 살고자 하는 형제들을 위한’ 특별규칙을 만들었다. 이 암자 규칙은 프란치스코의 삶에서 관상, 활동, 그리고 형제애 사이의 균형을 보여주며, 아마도 프란치스코가 많은 사순절기를 보냈던 환경을 잘 그려주고 있다. 셋이나 네 명의 형제들이 암자에 머물면서, 어떤 사람들은 집안 일을 돌보고, 다른 사람들은 더 긴 시간을 자유롭게 기도하는 삶의 형태이다.
이 두 팀 중에 한 팀은 ‘어머니들’의 역할, 마르타의 역할을 하고 그들의 ‘아들들’은 마리아의 역할을 한다.
각자는 작은 방에 머물고, 기도와 식사를 위한 공동의 장소가 있다. 성무일도는 아침 일찍 조과로 시작하고 각자 적절한 때에 한다. 식사가 준비되면 함께 먹는다. ‘어머니들’은 매일 일상 일과 식사준비, 방문객 맞이,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들, ‘아들들’이 방해 받지 않도록 배려한다. 지구장이 가끔씩 형제들을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지만 다른 손님들은 암자에 들어올 수 없다.
자주 역할을 바꾸어 아들들은 어머니가 되고, 어머니들은 아들들이 된다. 은둔생활의 규칙은 매우 유연하고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형제들의 생활이 구성되어야 하는가를 자세하게 설정할 필요가 없다. 다만 기본적인 것에만 초점을 둔다: 기도하기; 필요한 일하기; 바깥의 산만함을 최소화 하기.
최근에 와서 프란치스코 은둔생활이 지향하는 관상적 삶은 그 유연성과 단순함으로 현대의 관상 은둔생활의 위대한 조성자인 토마스 머튼의 경탄을 얻었다.
보나벤투라도 프란치스코를 ‘완전한 관상의 모범’이라고 각성시킨다. 프란치스코를 통하여, ‘말보다 표양에 의하여’, 하느님께서는 모든 진정으로 영적인 사람들을 ‘이러한 과월과 영적 황홀경’으로 초대하신다. 보나벤투라는 관상에 관한 프란치스코회의 전통에서 중요한 원칙을 세운다. 즉 모든 진정으로 관상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관상이 주어진다는 원칙이다.
프란치스코는 관상기도의 체제나 기술을 말로 표현하지 않았다. 그가 제시한 것은 그 자신이고 그의 ‘모범’으로서, 다른 사람들도 따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모범의 절정은 죽기 얼마 전에 라 베르나 산에서 피정할 때에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와 관상적 일치에 다다른 프란치스코의 사랑스런 환희였다. 프란치스코의 모범을 따르는 길은 신학자인 보나벤투라에게 너무나 소중했던 지적인 탐색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머리가 아니라 마음의 차원에서 하는 여정이요, 과월이다:
그러나 당신이 어떻게 이런 관상적 환희가 일어나는 가를 알고 싶다면,
지식이 아니라 은총을 청하라,
이해가 아니라 갈망을 청하라,
부지런한 독서가 아니라 기도에 대한 염원을...
빛이 아니라 불을...
이 불은 하느님이시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타오르는 사랑의 열기 속에서 이 불을 붙이신다.
월리암 J. 쇼트
[원출처] <가난과 즐거움-프란치스코회의 전통>, 월리암 J. 쇼트(프란치스코회)
[출처] <참사람되어> 2008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