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와 그의 동료들은 기도를 가르침, 일 그리고 여행과 통합함으로써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랐다.’ 그들은 매일 전례기도를 위한 시간을 따로 떼어 놓았고 주위의 사회와 마을로부터 떨어진 암자에서 기도만 하는 기회를 마련했다. 이번 장에서는 프란치스코회 전통의 ‘영적인 실천’이라고 여겨지는 이 기도 행위 몇 가지를 살펴 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영적인 실천’이라는 단어를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말은 프란치스코 전통의 ‘물질적’ 측면(활동, 여행, 관계들)과 ‘영적’(기도나 묵상의 실행과 동일시 됨) 측면 사이의 이분법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바라건대, 프란치스코회 전통을 다루는 이 시점에서 그와 같은 분리는 인위적인 것으로 보이며, 또 그렇게 여겨져야 한다. 기도, 관상, 암자의 삶: 이것들은 프란치스코, 글라라와 추종자들의 ‘온전한 복음’ 영성의 한 부분, 오로지 한 부분일 따름이다.
영성의 역사에서, 기도나 묵상의 발전 혹은 가르침에서 프란치스코는 그다지 주목할 만한 위치가 아니다. 그가 더 선호했던 구절들은 기도를 삶의 중요한 조건이라고 여기는 기본자세에 관한 묘사였다. 그것은 기도의 영과 거룩한 헌신을 행하는 것이다: ‘주님의 영과 그분의 거룩한 역사를 갈망하는 것이다. 이러한 영을 간직하는 것이 신학공부까지 포함하여 모든 형태의 활동, 모든 다른 관심사보다 우위를 차지한다. 그것은 기도의 실천과 같은 의미가 아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들은 ‘많은 기도’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비판을 받으면 쉽게 화를 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진정으로 ‘영이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다. ‘영의 가난’은 모든 진정한 기도의 조건이다.
함께 기도하기
초기 프란치스코회의 매일, 그리고 한 해의 기도 일정을 다시 구성하려고 할 때에 우리는 ‘기도의 영’이 어떻게 실제로 표현되었는가 알 수 있다. 초기 프란치스코 공동체는 관상기도를 염송기도로부터, 개인기도를 공동기도로부터 분리시키는 체계적 시도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모든 기도는 형제들의 매일과 한 해 동안 기도와 헌신이 분리되지 않고 진행되는 일상 속에 통합되어 있었다. 그리고 공동기도가 그 일상의 많은 부분을 채우고 있었다.
그들은 매일 성무일도를 거행하였다. 회칙에서 성무일도는 모든 형제들, 성직자든 평신도든 모두에게 요구되고 있었다. 라틴어를 읽을 수 없는 사람들, 평신도 형제들은 성직자 형제들이 시편을 읽는 동안에 ‘주님의 기도’를 해야 했다. 은둔소의 규칙에서 프란치스코는 석양 후 종과, 아침 일찍 하는 조과, 그리고 낮의 기도는 제1시과(아침 6시), 3시과(아침9시), 6시과(정오), 9시과(오후3시), 그리고 만과(저녁)를 ‘적절한 때’에 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 성무일도는 적어도 하루에 수 시간씩 걸렸을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기도의 멜로디보다 기도 내용에 더 주의를 기울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강조점은 무엇보다 단순한 전례와 함께 마음의 성실함 (‘기도의 영’)이다. 첼라노는 프란치스코가 여행할 적에도 함께 가는 동료와 성무일도를 하기 위하여 여러 차례 멈추곤 했다고 말한다. 프란치스코는 항상 또 다른 ‘성직자’ 형제가 있기를 바랐다. 읽을 수 있는 형제와 함께 성무일도를 하기 위해서였다. 형제들은 또한 프란치스코가 만든 ‘수난의 성무일도’를 함께 기도했다. 이밖에 프란치스코가 만든 다른 기도들도, 예를 들면 ‘찬미가들’도 정기적으로 바쳤다.
얼핏보면 이 매일의 기도 일정 어디에도 프란치스코가 성찬례에 관해 언급하지 않은 것을 보면 이상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작은 형제회 초기 시절에 처음에는 사제들이 포함되지 않고 오직 형제들만 있었기 때문이고, 이들은 읽는 능력에 따라 ‘성직자’와 ‘평신도’로 구분되었던 까닭으로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다. 미사에 참여하기 위하여, 그들은 가까운 교회나 수도원으로 갔을 것이다. 첼라노의 토마스는 프란치스코가 매일 미사에 참여하고 성체를 자주 모시고 싶어 했다고 전한다.
프란치스코의 후기 삶에서 공동체에는 파두아의 안토니오 같은 사제 형제들이 합류하였다. 프란치스코는 모든 ‘형제 사제들’이 열심을 갖고 미사를 거행하도록 격려한다. 그는 형제들이 살고 있는 자리에서 매일 한 번씩만 미사를 하라고 규정하였다. 만일 여러 명의 사제들이 있으면 한 사람만 미사를 거행하고 나머지 사제들은 형제들과 함께 참여하라고 했다.
프란치스코와 형제들이 실천했던 매일의 기도를 보면, 성무일도와 성찬례 안에서 매일 공동으로 하는 전례기도에 꽤 많은 시간을 쏟는 것으로, ‘기도의 영과 거룩한 헌신’이 표현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전례기도는 더 포괄적인 기도생활의 한 부분일 뿐이었다. 포괄적인 기도에는 홀로 하는 기도, 고독 지키기, 그리고 은둔소에서 보내는 절기들이 있는데, 은둔소(암자)에서 프란치스코와 형제들은 관상적 삶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삶을 살았다.
월리암 J. 쇼트
[원출처] <가난과 즐거움-프란치스코회의 전통>, 월리암 J. 쇼트(프란치스코회)
[출처] <참사람되어> 2008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