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하느님의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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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하느님의 얼굴이다
  • 죠안 치티스터
  • 승인 2017.10.23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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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받은 삶-15

안토니 성인에게 한 철학자가 말했다: “신부님, 책이 주는 위안을 빼앗겼을 때 당신은 어떻게 열정을 유지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안토니가 대답했다: “내 책은, 철학자시여, 창조된 것들인 자연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싶을 때마다 그것은 바로 내 앞에 있습니다.”

“하느님은 어디 계신가?” 교리는 이렇게 물었다. “하느님은 어디나 다 계신다”고 교리는 대답했다. 이 대답은 자주 무시되지만, 만일 하느님이 참으로 하느님이시라면, 확실히 진실한 대답이다. 하느님은 우주이시다. 모든 창조된 것들 안에 창조주의 에너지, 생명, 모상, 본성이 머문다.

창조주를 알기 위해서는 창조에 관해 공부하기만 하면 된다. 삶의 원천은 생명 그 자체이시다. 분명한 것은 거의 너무나 단순해서 믿기가 어렵다. 즉 모든 삶은 생명의 비밀을 담지하고 있다. 노르위치의 신비가 쥴리안은 “이 도토리 속에, 모든 것이 다 있다”고 말했다. 자연, 그 모든 것은 궁극적인 존재의 거울이며, 생명의 하느님이 쉬시는 자리이고, 여기에  하느님의 힘이 현존한다.

 

사진출처=pixabay.com

불행하게도 하느님을 인격적인 하느님으로 제시하려는 의도 때문에 서구의 종교 전통은 하느님을 창조로부터 고립되고 분리된 존재라고 부주의하게 축소시켰으며 따라서 우리자신들 이외에 하느님이 계신 곳은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갖고 있는 하느님의 개념은 우주를 움직이는 위대한 기술자인데, 그 분은 정신과 물질을 창조하여 공간 속에 던졌으며 둘이 서로 싸우도록 내버려두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통이 가르치는 바에 의하면 정신은 거룩함의 극치이며 다른 한편 물질은 타락하기 쉽고 또 계속 타락하고 있다. 이같은 사고방식에 맞춘다면 자연은 창조의 서자인 셈이다.

정신과 물질을 분리하는 세계에서 자연은 다만 인간의 행위를 위해서 존재하는 무대같은 위치일 따름이다. 자연의 풍요로움은 인간을 편하게 해주고, 야생의 자연은 인간이 “지배”하면 되고 그런 지배를 통하여 물질이 완전히 제어될 때에 하느님은 비로서 마지막으로 얻어질 수 있는 분이다. 이같이 왜곡된 과학적 영적기반 위에서 노예제도의 합법화, 지구에 대한 강간, “연구”를 위한 동물 학살, 다우림 약탈의 인준, 오존층의 파괴, 그리고 오수 구덩이가 된 바다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관상가는 자연에 대한 죄악이 생명에 대한 죄악임을 알고 있다.

물질은 악이고 정신은 선이라는 개념, 그리고 이 둘은 결정적으로 분리된 것이라는 개념은 너무나 한심하고 한정적인 태도임에 틀림없다. 이런 개념은 바로 하느님을 사물로 추락시키며 하느님이신 생명에너지 자체로부터 발산되는 창조와 창조주를 분리시키는 개념이다. 그것은 생명에 대한 무제한의 약속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곳에서 우리를 부르시는 하느님의 메시지를 무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자연세계가 인간 없이 존재할 수 있으나 자연을 “지배”하는 인간은 나머지 자연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생명의 하나됨, 하느님의 하나됨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관상가는 더 잘 알고 있다. 관상가는 모든 생명이 그곳으로부터 태어나는 생명자체를 모든 곳에서 본다. 관상가는 모든 생명이 하느님의 얼굴을 반영하고 있음을 안다. 자연을 적처럼 여기며 사는 것은 삶에 실패하는 것이다. 독재자로서 자연과 어울린다면 그것은 삶의 균형을 뒤틀리게 만드는 것이다. 자연의 조화, 자연의 미, 자연의 투쟁들 속에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그것은 마음을 닫고 영혼의 귀를 막은 채 삶을 사는 것이다.

관상가가 되려면 자연과 부드럽게 함께 걷고 삶의 리듬을 따르며 시간의 주기로부터 배우고 우주의 고동에 귀를 기울이며 자연을 사랑하고 보호하며 자연 속에서 하느님의 현존과 권능을 발견해야 한다. 관상가가 되려면 식물을 키우고 동물을 사랑하며 비속에 걷고 인생의 맥박이 고동칠 때에도 늘 하느님에 대한 의식을 고백 할 수 있어야 한다.


[원출처] <Illuminated Life, Monastic Wisdom for Seeker of Light>, Joan Chittister
[출처] <참사람되어> 200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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