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되이 몸을 굽히시어" 보나벤투라의 크리스마스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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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되이 몸을 굽히시어" 보나벤투라의 크리스마스 강론
  • 월리암 J. 쇼트
  • 승인 2017.09.17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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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즐거움-6

수도승, 신학자, 외교관, 주교, 추기경이었던 보나벤투라(1274년에 죽음)는 작은 형제회의 제7대 총장으로 프란치스코의 계승자였다. 프란치스코가 죽기 수 년전에 이태리에서 태어나 1243년에 수도원에 들어갔으며, 창립자의 삶과 말을 책읽기, 전례, 전승을 통하여 알게 되었다.

보나벤투라는 프란치스코를 직접 알지 못한 ‘신세대’에 속했다. 그는 프란치스코의 영감을 후세대를 위하여 해석해준 ‘다리’ 역할을 했다. 그는 이런 의미에서 믿음과 실천이 일치되는 사람으로서 프란치스코학파 영성의 위대한 창시자들 중의 하나로 여겨질 수 있다.

육화에 관한 보나벤투라의 이해를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는 자료는 그가 파리의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을 때 했던 크리스마스 강론이다. 그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요한 1,14) 그리고 즉시 이어 프란치스코에게 매우 소중했던 주제인 육화의 선포로 움직인다:

"이 말씀들은 영원한 하느님께서 겸손되이 몸을 굽히시어 우리의 먼지 같은 본성을 들어올리시고 그분의 인성과 일치시키셨다는 사실로 이루어지는 그 천상의 신비, 그 경탄할 성사; 무한한 친절의 그 황홀한 작업으로 표현된다."

여기에서 ‘겸손되이 몸을 굽히시어’라는 표현은 우리에게 육화를 겸손의 표현으로 강조하는 프란치스코회의 입장을 상기시켜준다. 필리피서의 위대한 찬미(‘그분은 당신 자신을 비우시고, 당신 자신을 낮추셨다’)를 묵상하면서 보나벤투라는 "사람이 되신 이 말씀 안에서 우리는 그분 자신을 낮추심으로써 우리의 본성을 고양시키시는 자기-비움을 발견한다"고 말한다.

육화는 그리스도교의 종교적 체험에 있어 분명하게 반대되는 차원들을(창조주와 피조물; 무한함과 유한함; 거룩한 것과 인간적인 것 등) 화해시키는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길이다. 특히 십자가의 그리스도는 이론상의 당황스러운 문제들, 그리스도교 신비주의의 사변적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길이요 문’이며 ‘사다리이고 창구’이다.

그리고 이 놀라운 육화의 사건은 창조사업을 완성시키고 치유해준다. 보나벤투라는 이렇게 말한다:

"참으로, 나는 하느님께서 모든 것들을 그분의 창조되지 않은 말씀 안에서 창조하셨고, 육화한 말씀 안에서 모든 것들을 재 창조하셨다고 말하겠다."

창조되지 않은 말씀이 처음에 인간 존재를 창조하였고 육화한 말씀이 그들을 구속하였다. 창조와 구속은 모두 말씀에서 시작된다. 창조와 구속은 두 가지 연결되지 않는 실제들이 아니라, 같은 존재인 창조주이며 구속주인 존재의 작업이다. 이 창조주요 구속주인 분은 우리에 대한 사랑으로 살이 되신 영원한 말씀이다.

 

[원출처] <가난과 즐거움-프란치스코회의 전통>, 월리암 J. 쇼트(프란치스코회)
[출처] <참사람되어> 200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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