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복팔단] 자비 속의 자비, 그 속의 또 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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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복팔단] 자비 속의 자비, 그 속의 또 자비
  • 짐 포레스트
  • 승인 2017.08.29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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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복의 사다리-16]자비로운 이들은 복되도다...

"우리는 사람들을 하느님의 자비에 넘기고,
우리 자신은 아무 자비를 보이지 않는다."
- 죠지 엘리오트, <아담 베이드>에서

"자비는 군림하는 왕권 그 위에 있다,
자비는 제왕들의 가슴 속에서 왕좌를 차지한다,
그것은 하느님 자신의 속성이다..."
- 세익스피어, <베니스의 상인> 4막에서

"자비 속의 자비, 그 속의 또 자비. 하느님의 자비는 끝이 없네."
- 토마스 머튼

 

사진출처=pixabay.com

영의 가난으로부터 슬픔으로, 온유함으로, 의로움에 대한 허기와 갈증으로, 그리고 이제는 자비의 진복으로 나아간다.

의로운 삶을 살아가려고 시도할 때 나타나는 위험 중 하나는 독선이 늘 한 호흡 건너에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저지르지 않은 죄들을 열거하고, 다른 사람들의 죄의 목록을 만들며 내 자신의 선행으로 페이지를 가득 채우는 일은 얼마나 쉬운 일인가. 이것이 그리스도가 바리사이 사람과 세리에 관한 비유에서 묘사하는 의로운 사람의 상황이다.

바리사이는 그가 다른 많은 사람들 ­도둑, 사기꾼, 간음하는 자­ 혹은 성전 뒤에 있는 세리들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하느님께 감사했다. 그는 하느님께 자신은 일주일에 두 번씩 단식하고 수입의 10분의 1을 내놓는다고 상기시킨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작은 성취가 아니다. 그러는 동안 세리는 그의 죄들에 대한 깨달음으로 또한 하느님의 집에서 그가 너무나 무가치하고 심지어 하느님의 이름조차 속삭일 수 없다는 사실에 가슴을 치고 하느님의 자비를 애걸한다(루가 18,10-14). 세리의 기도는 예수 기도의 씨앗이다: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여, 하느님의 아들이여, 죄인인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아브라함이 자비를 만나다

그리스도는 끊임없이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 준비가 되어 있다. 그분은 자비 그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인간역사의 전환점 가운데 하나는 아브라함이 외아들 이사악을 바야흐로 죽이려고 할 때 발견한 하느님의 자비이다. 어린아이를 제물로 바치는 것은 아브라함의 세계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쉽게 화내고 변덕스러운 신들이 지배하는 우주 안에서 소중한 제물일수록 신을 달래기 쉬운 것이다­. 성 죠지에 관한 중세 전설 속에서, 도시에 대한 공격을 면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용에게 처녀들을 제물로 바치는 것처럼.

그 당시 세계의 상식적인 생각들을 볼 때, 아브라함은 그와 같은 가슴 저미는 희생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상 때문에 놀라지 않는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칼이 이사악의 피를 흘리려고 하는 순간에 그는 천사가 하는 말을 듣는다, “아브라함, 아브라함.” 그는 대답했다, “여기 내가 있습니다.” 천사는 말했다, “아이에게 손을 얹거나 그를 해치지 말아라. 이제 나는 네가 하느님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너는 너의 아들, 그것도 외아들을 나에게 아끼지 않기 때문이다.”(창세기 22,12).

유대 백성들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은 아이를 제물로 바치는 그 경계점에 가까이 접근했고 하느님의 명령 때문에 물러섰다. 유대인들은 중동에서도 고유한 백성인데, 그것은 그들이 한 분인 하느님을 믿기 때문만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하여 아이들을 죽이지 않기 때문이다. 거칠고 피를 선호하는 신들의 문화권에서 자란 한 남자가 자비로운 하느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사진출처=pixabay.com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우리세계에서 '머시'(mercy)라는 말은 법적인 맥락 속에서 자주 사용된다. “피고는 법정의 자비에 자신을 맡긴다”는 표현에서 보듯이. 관대한 재판관은 범죄의 특정한 상황을 고려하면서 죄를 지은 사람을 처벌하면서 최대한 법의 엄격성을 적용하지 않기로 결정할 수 있다. 5년형이 반으로 감형될 수 있고 혹은 감옥에 가는 대신 보석형에 처해질 수 있다.

자비의 뜻으로 가장 흔하게 쓰여지는 히브리말 헤세드(khesed)는 더 깊은 의미가 있다. 이 말은 또한 “부드러움”, “친절함”, “호의”, “사랑스러운 친절”, 그리고 “자기를 주는,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번역될 수 있다.

그리스어 신약에서 자비의 진복을 표현하는 그리스말은 엘레오스(eleos)이다. 우리는 이 단어를 정교회 예식에서 가장 많이 되풀이되는 기도에서 듣는다: “키리에 엘레이손(Kyrie eleison­,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이다. 이 말은 그리스말 엘레모시네(eleemosyne)와 연결된다: 뜻은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하는 호의적인 행위, 자비로운 나눔, 자선행위이다. 또한 이 말은 고통과 연결된 모든 표현되지 않는 소리들­, 한숨들, 신음소리, 애도, 흐느낌, 비탄의 소리­을 나타낸다.

구약에서 자비라는 말은 또한 하느님의 속성을 묘사하기 위하여 쓰여지고 있다, ­“주님의 모든 길들은 자비와 진리의 길입니다”(시편 25,10)­ 아니면 하느님의 도움을 호소하는데 쓴다­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오 하느님, 당신의 위대한 자비에 따라”(시편 51,1). 자비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드러나는 거룩한 활기들 중의 하나이다. 주님의 자비는 “무한하고. 하늘에까지 미치는”것이다(시편 36,5).

창조주의 자비는 심지어 죽은 사람까지 구할 수 있다. “당신은 지옥 깊은 곳에서 나의 영혼을 구하셨습니다”(시편 86,13). 이것은 십자가 위의 죽음 후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들어간 세계이다. 정교회 성당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과월절 이콘은 그리스도가 깨진 지옥문 옆에 서서, 아담과 이브를 그들의 무덤에서 이끌어내는 장면이다. 과월절 시기에 이 구절은 하느님의 자비가 무덤까지 지배한다고 수백 번 불러지면서 기쁨을 표현한다: “그리스도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어나고, 죽음을 하나씩 밟으며 무덤 속에 있었던 사람들에게도 생명을 불어넣는다.”

복음서의 자비

자비는 메시아를 탄생시키기로 선택된 것을 찬미하는 마리아의 노래에 있어 핵심이다: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는
대대로 자비를 베푸십니다...
주님은 약속하신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를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토록 베푸실 것입니다.
(루가 1,50. 54)

복음서에서 그리스도는 두 번이나 ­마태오 복음 9, 13 그리고 12, 7에서­ 호세아 예언자의 말들을 기억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희생이 아니라, 자비이다”(호세아 6,6). 그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종교적 규정의 세부 사항에만 치중하고 “율법의 더 무게 있는 문제들: 정의, 자비, 그리고 신의 같은 것을 소홀히 하여 하루살이는 걸러내면서 낙타는 그대로 삼키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고 경고한다(마태 23,23-24).

필사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그에게 도움을 청할 때, 그들은 소경 두 사람처럼 “다윗의 자손이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하고 소리친다(마태 9,27).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자비를 구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 원칙은 너무나 기본적인 것이어서, 그리스도는 제자들을 가르치는 <주님의 기도> 중에 이 부분을 포함시킨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사람을 용서하듯이 우리의 빚을 용서하소서.” 주의기도를 매번 암송할 때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자비만큼 하느님으로부터 똑같은 만큼의 자비를 청하는 것이다.

똑같은 가르침이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더 생생하게 표현된다. “누가 나의 이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그리스도는 여행자의 생명이 길을 지나가던 두명의 동료 유대인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멸시받는 이방인, 사마리아인에 의해 구해진다는 이야기를 말해준다. 그리스도는 묻는다. “셋 중에 누가 강도에게 맞은 이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율법교사가 대답한다,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그리스도가 대답한다, “가서 똑같이 하여라”(루가 10,29-37).


[원출처] <진복의 사다리>, 짐 포레스트, The Ladder of the Beatitudes, Orbis, 1999
[출처] <참사람되어> 2002년 10월호 

 

*여러분의 후원이 하느님 자비를 실천하는 가톨릭일꾼을 양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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