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종은 7월23일 성 베드로 광장 부활 제16주일 삼종기도 가르침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밀과 가라지의 비유를 설명하면서 우리 모두는 죄인이지만 하느님의 크신 섭리를 신뢰하면서 가라지가 되지 않도록 죄에 빠지지 않으려는 결심과 인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복음말씀은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에 대해 군중들에게 말씀하시는 세 가지 비유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첫 번째 비유에 대해 묵상하려고 합니다. 곧 세상 안에 존재하는 악의 문제를 묘사하면서 하느님의 인내를 부각시키고 있는 밀과 가라지의 비유입니다.(마태 13,24-30; 36-43 참조)
하느님의 인내심은 얼마나 대단합니까! 우리 각자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내게 얼마나 많은 인내심을 가지고 계신가!” 복음의 비유말씀은 두 명의 반대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밭에서 전개됩니다. 한 명은 하느님을 상징하는 밭의 주인으로서 땅에 좋은 씨앗을 뿌립니다. 다른 한 명은 원수로서 사탄을 나타내며 나쁜 씨앗을 뿌립니다.
시간이 지나자 밀 가운데에 가라지도 자라났고, 이런 상황에 대해 주인과 종들은 서로 다른 태도를 보입니다. 종들은 가라지를 뽑아버리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밀의 안전을 걱정했던 주인은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반대합니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29절)
이러한 표현을 통해 예수님은 이 세상 안에 선과 악이 그만큼 섞여있어서 모든 악을 분리해서 뽑아내기가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로지 하느님께서만 그렇게 하실 수 있고 최후심판 때에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악의 모호함과 혼합된 성격 때문에 현재는 선과 악을 식별하기 어려운 자유의 밭, 그리스도인들의 자유의 밭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과 그분의 섭리에 큰 신뢰를 두고, 이 밭 안에서 외형적으로 반대되는 두 가지 태도를 연결시켜야 합니다. 곧 결심과 인내입니다. 결심은 모든 사람이 원하듯이 좋은 밀이 되기를 원하는 결심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온 힘을 다하여 악과 악의 유혹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해야 합니다.
인내는 하느님 나라에 있을 자와 그렇지 못할 자를, 때가 되기 전에 판단할 수 있다고 여기는 ‘순수한 자들’의 교회가 아니라 밀가루 반죽에 넣은 누룩 같은 교회, 자녀들의 옷을 빨면서 손이 더러워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교회를 바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이 되신 지혜이신 주님께서는 “이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이고, 저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이다”라면서 선과 악이 정해진 지역이나 특정 인종과 동일시될 수 없다는 사실을 오늘 깨닫게 해주십니다. 그분께서는 선과 악의 경계선이 각 사람의 마음속을 지나고, 우리 각자의 마음속을 지난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 우리 모두가 죄인입니다.
여러분에게 다음과 같이 묻고 싶습니다. “죄인이 아닌 사람이 있다면 손을 드십시오.” 아무도 손을 들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십자가 상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우리를 죄의 노예상태에서 해방시켜주셨고, 새로운 삶을 걸어가는 은총을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항상 죄로부터 용서받을 필요가 있기 때문에 세례성사와 더불어 고해성사도 주셨습니다. 우리 바깥에 있는 악만 항상 바라본다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죄를 인정하기 싫어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구나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밭을 바라보고 현실을 관조하는 다른 방식을 가르쳐주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시간이 아닌 하느님의 시간을 배우도록, 그리고 하느님의 ‘시각(관점)’을 갖도록 부르심 받았습니다. 염려스러운 기다림의 좋은 영향 덕분에 가라지이거나 가라지로 여겨졌던 것이 오히려 좋은 결실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회개의 현실이며, 희망적인 전망입니다!
동정 마리아께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 안에서 더러움과 악 뿐만 아니라 선과 아름다움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사탄의 활동을 폭로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 역사를 풍요롭게 만드시는 하느님의 활동을 신뢰하도록 도와주시기를 빕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