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에서 의료봉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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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에서 의료봉사는
  • 이금연
  • 승인 2017.07.19 0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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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카나의 집 이야기-18

의료봉사를 다녀 온지 일주일이 지나고 있다. 과로한 탓인지 아님 날씨와 험준한 지형 탓인지 온 몸과 영혼이 너덜너덜해 진 듯 몸살을 앓고 있다. 우기에 놀랄 만큼 불어나 거센 물결을 일으키며 화가 났다는 듯 흘러내리던 칼리 간다키 강의 회색빛이 눈에 아른거린다. 그 강가에 몸 붙여 사는 주민들의 어두운 표정도 거친 물결처럼 일었다 사라지곤 한다.

온순하고 평화롭기만 할 것 같은 네팔 사람들이지만 가난에 시달리는 주민들의 표정은 깊은 시름에 젖어 있다. 햇볕이 강렬하게 빛날수록 그들의 움막 안은 더 어두워지고 주민들의 표정은 고스란히 볕에 노출되어 희미하게 드러난다. 만 이틀 동안 진료를 할 수 있을 거라는 계획표에 따라 준비를 할 때, 과연 임시진료가 무에 그리 큰 도움이 될까 하며 그다지 큰 기대를 걸지 않고 만 13시간 덜덜거리는 승합차에 일행을 싣고 달려갔던 것이다.

사진=이금연

양산외국인노동자의 집에서 의사 두 명과 간호사 한명 그리고 보조원 여섯 명이 한조가 되어 진료를 왔는데 거기에 통역요원과 진행 보조요원이 더 필요했다. 거기다 의약품과 필요한 물자를 운반해야 했으니 차량도 두 대에 운전자까지 합치니 의료캠프를 위해 열 다섯 명이 동원되었다.

우기라서 언제 쏟아질지 모를 날씨에도 대비해야 해서 우리는 말레둥가 마을의 교무실에서 진료를 시작했다. 학생 마흔 명의 이 작은 학교는 오래 전부터 우리 장학생들 행사를 위한 거점 역할을 해주고 있는 곳이다. 주민들의 대부분 강에서 물고기를 잡거나 돌을 건져내어 자갈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극빈층 중에서도 극빈층이라 할 수 있어서 평생 병원 문턱엔 한 번도 가 본적이 없을 듯하다. 진료가 시작되자 마을 주민들이 하나 둘 모여 들기 시작했고, 등록과 동시에 당뇨 검사를 시작으로 의사들의 친절하고 사려 깊은 진료로 주민들조차 별 기대 없이 왔다 만족스러워 했다.

첫날, 식사와 간식은 고사하고 물 마실 시간도 없이 진료에 전력을 다해야 했기에 일행도 지쳤고, 소진되는 것 같았다. 아침 식사로 달랑 토스트 한쪽에 계란프라이 한 개를 먹은 것이 전부였는데 누구 한 사람 ‘밥은 언제 먹나요?’ ‘먹을 것 좀 주세요’ 하는 말없이 진료에 집중했다.

다음날은 더 일찍 진료가 시작되었다. 이미 환자들이 학교 마당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소문이 퍼져 먼 거리 마을에서 온 사람들도 많았다. 찬물에 몸을 담그고 일을 해야 하니 냉증에 걸린 노동자들이 많았고 소화 불량에 귓병 눈병 그리고 목과 사지 마비로 고생하는 노동자들이 많았다. 강물에 흙먼지가 섞여 있어 물이라고 다 물이 아닌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여러 차례 의료 진료를 다닌 바 있는 선집은 의사 옆에서 하루 종일 통역만 한 것 같은데도 어느새 약품의 유효 기간을 다 파악하고 있었다. 새 약을 가져 온 이 팀에게 후한 점수를 주며 여러 차례 한국에서 의료 진료를 온 팀들과 진료 도중에 싸움이 일어났던 경험을 들려주었다. 유효 기간이 지났거나 지나고 있는 약들을 가져와 통역으로 나섰던 네팔 사람들이 항의를 하여 도중에 멈추기도 했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약품의 유효 기간은 자신들에 대한 존중의 척도였다. 가난한 나라라고 버릴 약을 가지고 온 거냐 뭐냐 하면서 감정싸움이 일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팀은 새 약을 가져 왔다며 우리 장학생 현지 코디네이터이자 노조 간부인 릴라씨는 시종일관 흐트러짐 없이 친절하게 환자들에게 약 처방을 설명해 주고 써주고 그려준다.

시작이 있으면 마침도 있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환자들은 더 멀리서 찾아오고 있건만 우리들의 이번 의료 진료는 아쉽게도 이틀로 마감을 해야 했다. 진료를 마치고 포카라로 돌아온 다음날 소문은 산중 마을 더 깊은 곳 까지 퍼지는 바람에 에이즈 환자, 나환자 등 중환자들이 더 많이 내려와 떠난 의료팀을 기다렸다 한다. 떠나온 의료팀도 기다리던 환자들도 서로 아쉬움을 남긴 채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이틀간의 의료 진료가 무에 그리 크게 도움이 되겠냐 했지만 어느새 우리는 다음 일정을 의논하고 있었다. 물 한 모금에 만족하며 쫄쫄이 굶으며 일해야 했던 때의 볼멘소리는 온데 간 데 없고 다음에 올 땐 더 긴 시간 진료를 하자, 의약품을 한국에서 다 가져오기 힘들면 일부는 현지에서 구매를 하자, 현지 의사가 한 명 투입되면 더 많은 환자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에도 당뇨 검사를 반드시 해주자 하며......

우리는 내가 가진 재능, 시간 그리고 물질을 무엇을 위해 또 누구를 위해 주로 사용하고 있을까? 요즈음 대학생은 물론 중고생들의 스펙 쌓기의 일환인지 몰라도 봉사 활동을 기획해 주는 회사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곳에서 여러 차례 연락을 받은 바 있지만 전부 일이 성사 되지 않았다. 아니 거절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연대 해온 양산외국인노동자의 집과 함께 한 이번 의료 진료는 물 흐르듯 진행 되었다.

국내선 비행기의 운행 취소, 장장 13시간 빗길을 가야 했던 장거리 이동, 불편한 숙소와 입에 맞지 않는 식사 그리고 볼 것도 갈 곳도 없는 우기의 안개 낀 자연환경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잘 참아가며 목표를 향해 집중 했다. 그런데 사진 한 장 건진 게 없구나. 그래서 이번 행사는 더 만족스러웠는지 모른다. 이틀 진료, 이틀 이동의 만 나흘 일정으로 의료 팀은 떠났다. 그들이 떠나고 난 뒤 뒷설거지를 하며 짧았지만 의미 있었던 만남의 시간을 돌아본다. 감사할 따름이다.


이금연 세실리아
국제 가톨릭 형제회 (AFI) 회원
네팔 환대의 집 'Cana의 집'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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