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망고. 과일가게마다 동글동글한 노랗고 푸른 망고가 넘쳐난다. 망고의 계절인 것이다. 시장 과일 가게에 가득 쌓인 망고는 히말라야를 잠시 잊고 더운 나라에 와 있음을 실감케 한다. 뜨거운 태양 빛을 받아 익어 달디 단 맛을 내는 망고의 노란 과즙 한 잔은 한 낮의 휴식이다.
특히 네팔 망고는 녹색 껍질인데 크기도 인도산인 노랑 망고보다 작아 즙을 내어 먹기에 좋다. 손안에 착 잡히는 네팔 망고는 감촉도 부드러워 여느 과일과 다른 느낌을 준다. 망고는 마치 엄마 자궁에 웅크리고 있는 태아 모양인데 이것이 주는 묘한 시각적인 멋에 빠져 망고, 망고 하며 지내는 계절인 것이다.
이렇게 망고가 맛을 내는 계절, 지난주엔 한국어능력시험이 있었다. 카트만두뿐만 아니라 네팔 전역 어디를 가도 눈에 띄는 광고를 보게 되는데 그게 바로 한국어 교실에 대한 것이다.
한국어 시험도 망고처럼
내가 한국인이라서 그런지 중국인들이 아무리 넘쳐나도 네팔 어딜 가나 눈에 띄는 광고 즉 <한국어 배우세요!>가 어깨를 으쓱하게 해준다. 산골짜기 외딴 마을 어딜 가도 상업지구 마다 한국어를 가르치겠다는 인쇄물이 곳곳에 부착되어 있는데 그 교실은 바로 망고가 한창인 이 계절에 시험을 치루기 위한 것이다.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학원을 찾아와 공부를 하는 동안 망고도 꽃을 피우고 자라 익어 온 것이다.
망고를 따듯 그렇게 쉽게 시험에 통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얼마나 경쟁적인가. 올해는 칠만 오천 명이 응시를 했다는데 그 중 오천 명 정도의 응시자가 합격증을 받게 된다. 처음 시험장에 가 보았던 필자는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답안지에 표기를 하는 젊은이들을 보며 이런 시험이 얼마나 한국으로 가서 일하는데 도움이 될까 생각해 보았다.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으로 막 유입되던 시절, 특히 현지 법인 연수 제도나 산업연수제도로 일하러 온 외국인들이 준비 할 틈도 없이 기계 앞에 서서 일해야만 했던 시절이 있었다. 잦은 산업 재해로 병원 출입을 수시로 하던 때였다. 말도 일도 서툴렀고, 음식과 계절 적응도 어렵기만 했던 1990년대와 지금은 얼마나 다른지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들도 안다. 한국어를 배웠으되 한국어를 말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 배운 한국어이니. 또 시험엔 통과 했어도 불투명한 미래에 확신을 가질 수 없을 때 한국으로 갈 것이라는 전망을 반드시 갖게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망고가 자라고 익어가는 기간 동안 가진 모든 것을 투자해 배운 한국어가 반드시 한국으로 간다는 보장은 없어도 삶에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비싼 학원비와 시험비 그리고 지방에서 배운 이들은 카트만두로 시험을 보러 와야 하기에 거기에 드는 경비, 여권을 만들어야 만 하기에 부담해야 하는 비용들이 전부 이들에게는 삶을 헤쳐 나가는데 겪어야 만 하는 유익한 과정이길 바란다.
노숙을 해도 이상할 것 없는
망고가 익어가는 계절, 멀리 동쪽 다란으로 가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온 히모던의 말이다. "누나, 카트만두에 친적이 없어도 숙식하는 거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요. 여름이니까 보자기 한 장이면 어디서나 잠을 자도 되고, 달 밧 한 그릇에 백이십 루피니 크게 부담 되지 않아요." 한다.
노숙을 해도 이상할 것 없는 곳이기에 떼를 지어 오는 학원생들에게 그다지 마음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인도에 가면 수많은 사람들이 역 광장 앞에서 노숙을 하는 걸 목격한다. 노숙하고, 거리에 살고 구걸을 하고.....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하면 인도 여행에 위안이 되기도 했었다.
이렇게 지역에서 시험을 치루지 않기에 카트만두로 와야 하는 건 이들에게도 외딴 마을에서 서울 구경 한번 하러오는 셈치니 나쁘지 않고, 가진 것을 투자하여 공부를 하였기에 자신만의 고유한 경험일 테고, 또 한국어를 배울 때 사용되는 언어 네팔어, 그것도 더 공부하게 되었으니 한국어 능력 시험은 이것을 준비하는 누구에게나 재교육의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듣기 평가를 끝으로 오십 문항 시험을 마친 응시자들이 마침 벨과 함께 시험장을 순식간에 빠져 나갔다. 내 점수가 얼마나 될까를 맞추어 보려 삼삼오오 시험지를 들고 서 있는 이들도 보인다.
점수, 내 삶의 점수는 얼마나 될까? 그 점수의 잣대는 무엇일까? 사랑이 유일한 잣대라고 했던 도로시 데이의 기준에 따른다면 내 삶의 점수는 형편없는 것은 아닐지.
교실마다 잠시 들러 ‘안녕하세요! 시험 잘 보세요!’라며 인사를 건넨 곳엔 약간의 긴장이 스르르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닌데, 매순 간 진정한 만남을 위해 깨어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닌데 일상에서 자주 무디어 진다.
숨 쉬는 매 순간 마다 고통과 어려움이 따른다는 우리네 삶, 아무쪼록 시험에 합격한 이들도 탈락한 이들도 전부 이번 시험이 미래를 향해 한 걸음 더 발돋움 하는 계기가 되길 빌어 본다. 이틀간의 시험이 끝난 날 과일 가게에 쌓여 있는 녹색 망고에게 눈길만 주고 그냥 지나왔다. 망고 시즌이 끝날 무렵 시험 결과가 발표 되리라.
망고는 내년에도 또 자라고 익을 것이고 시험도 다시 실시 될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 한걸음 더 일터의 성화를 위해 화살기도를 바친다. 주님, 사랑의 표현이 노동이게 하소서!
이금연 세실리아
국제 가톨릭 형제회 (AFI) 회원
네팔 환대의 집 'Cana의 집'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