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슈슈가 한 말이다. 십년 이상 미등록 노동자로 위험하고 거친 일터에서 일 했던 슈슈를 네팔에서 다시 만났을 때 한국을 회상하며 한 말이었다.
아무리 힘들고 고단해도 참고 견디면 월말이면 월급이 나오니 그걸로 잠시나마 삶의 시름과 고단함을 이겨 낼 힘이 나왔던 것이다. 그 돈은 가족에 대한 사랑이었고, 자신의 미래에 대한 꿈이자 비전이었으며 또 동료들과의 교제였다. 그러니 고된 노동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체불하거나 사기를 치는 일은 중죄 가운데 중죄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일꾼들의 등에 땀이 마르기 전에 그날 줄 것을 미루지 말라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다.
이번 라슈와 툴로가웅리라는 마을의 학교를 짓는 공사 현장에 다녀 온 뒤 뜬금없이 슈슈가 생각났다. 우리들에게 영원한 청년이었던 슈슈는 지금 어디서 일을 하고 있을까? 세월이 흘러도 늘 미소년의 얼굴로 순진한 웃음으로 지치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 곁에 조용히 있어 줄 사람 슈슈, 그는 한국에서 돌아오자 모아 놓은 돈으로 작은 차량을 구입해 치트완 국립공원에서 카트만두까지 승객을 싣고 오고 가는 일을 시작했었다.
그 일을 하면서도 그의 입에서는 독일의 큰 도시로 가서 한국 음식점이 있으면 거기서 일하며 한국을 생각하며 살겠다는 말이 나오곤 했었다. 그러다 보면 다시 또 한국으로 갈 길이 트일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한국에 대한 지고지순한 마음을 가진 슈슈의 말 ‘월급이 없었더라면 그 긴 세월을 어떻게 참고 견딜 수 있었을까?’
지진으로 폭삭 무너진 마을 툴로 가웅에 한국의 노동조합원들이 마음을 보태 마련한 기금으로 학교를 짓기 시작한지 꽤 시간이 지났지만 언젠가부터 공사가 중단되었고, 일하던 일꾼들은 공사 현장을 떠났다. 기금을 모아 온 단체와 네팔 현지에서 일을 맡아 온 단체와의 인연으로 필자는 프로젝트 위기관리를 위해 적극 개입할 것을 각오하고 침낭과 텐트 그리고 비상식량을 싸들고 팀을 만들어 갔던 것이다.
계단 미장과 베란다 안전대 설치, 그리고 건물 전체에 옷을 입히기 위한 페인트 작업을 남긴 미완의 건물은 누군가의 개입을 기다리고 있다는 듯이 말없이 서 있었다. 학교 앞 간이식당을 빌려 텐트를 치고 일을 시작 기계음이 마을 전체로 퍼져 나갔지만 초반 몇 일 동안엔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 임에도 불구하고 동네 주민 누구도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들은 묵묵히 일꾼들에게 참과 밥을 해 주어 가며, 또 같이 먹으며 작업을 해 나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서서히 주민들이 하나 둘 나타났고, 그들은 대다수가 지난 공사에서 일을 하였으나 일당을 받지 못한 지진 피해자들이었다. 마을 전체가 무너졌으니 지진 피해자가 아닌 사람이 없는 마을이긴 하지만.
주민들은 한국에서 온 모금 주관 단체로부터 떼인 일당을 받을 기대로 나타난 것이었는데 그들로부터 전후 사정을 전해 듣고 중간에 부정이 있었음을 증거를 잡아 확인시키기 까지 위기관리팀원들은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을 지도자와 학교 교장이 부정행위의 중심에 선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카스트로 치면 교장은 브라흐만 출신이요, 정당 소속으로 보면 보수 정당원인 사십대 후반의 남성이었다. 교장의 나쁜 행위에 가담한 학교 건축 위원회 위원장은 구릉이라는 원주민 집성촌의 주민이었다. 옳은 일을 바르게 하라는 모토는 어디서든 무엇을 하던 우리가 견지해야 할 기본이다. 우리 팀은 노동력을 제공한 마을 주민들을 다 모아 놓고 저간의 진행 과정을 설명하고, 예산을 공개하고, 집행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들을 일일이 확인 시켜 주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스스로 이해할 기회를 마련하였다.
무너진 집을 지으랴, 가축을 돌보랴, 농사를 지으랴 ..... 지진 지후 고단한 삶의 흔적들이 몸 전체에 고스란히 새겨진, 임금체불을 당한 당사자들은 주로 노인들과 여성들이었다. 종일 기다려 빈 페인트 통 한 개를 얻어 들고 가는 여인들의 뒷모습엔 산간 마을 아낙들의 고단한 삶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들은 자녀들이 다닐 학교를 짓는데 일조 한다는 마음으로 땡 볕을 견디며 일했을 것이다.
히말라야 중 산간 지대 한 낮 햇볕은 얼마나 강렬한가. 모든 걸 녹여 버릴 듯이 내리 쬐이는 그 볕을 견디며 일했던 주민들에게 인건비를 주지 않았던 자칭 지도자인 교장과 위원장의 행태에 분노하는 것으론 충분치 않다. 우선 밀린 임금을 주게 하여야 하고, 거짓으로 일관한 행위에 사과를 받아 내고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또한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장치도 마려해야 한다.
아이들 교육에 정성을 쏟을 새 교장이 부임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도 부족하다. 그렇게 되도록 주민들과 협력해 궁리를 하고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 그것이 학교를 짓는데 공동 참여한 단체들이 해야 할 의무일 것이다. 아이들의 기본권을 위해 그리고 인격주의의 실현을 위해. 하루 종일 고된 노동을 한 뒤 막걸리 한잔 마실 수 있을 여유를 허락할 그날의 임금. 그것은 즉시 그날 주어져야 한다. 그나 저나 슈슈는 지금 어디서 살며 일하고 있을까?
이금연 세실리아
국제 가톨릭 형제회 (AFI) 회원
네팔 환대의 집 'Cana의 집'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