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성찬례 그리고 인간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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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성찬례 그리고 인간해방
  • 참사람되어
  • 승인 2017.05.16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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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례의 사회적 의미-3

성찬례의 의미를 잘 알아듣기 위하여 우리는 당시 사회와 역사적 사건 속에서 구세주로서의 예수의 역할이 무엇이었던가 이해해야 한다. 모세와 아론의 경우처럼 예수도 자신의 민족이 외세와 자국의 지배자들에게 종속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의 민족을 해방시키는 일에 전적으로 투신하였다.

예수는 타인에 대하여 절대적인 특권을 누리고 있는 모든 잘못된 종교집단과 행동을 비판하였다. 그는 사회계층 사이에, 또한 이스라엘과 이방국가 사이에 있는 모든 장벽을 깨뜨리기 위하여 애썼다. 가르치고 행동하는 과정에서 예수는 공공연한 비난과 투옥, 재판 그리고 죽음의 위협에 봉착해야만 되었다. 그는 적들이 자신을 죽일 계획을 짜고 있는 것도 알았다. 가장 가까운 제자들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위험을 경고하였었다.

이렇게 어려운 때에 예수는 성찬례를 세웠던 것이다. 그는 멀지않아 자신이 이스라엘 민족과 제자들의 공동체를 떠나게 될 것임을 내다 보았다. 그는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어떤 상징을 남겨주고 싶었다. 곧 자신의 삶과 일을 기억하는, 다시 말하면 그들이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할 때에 자신이 그들과 함께 있으리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상징을 만들고 싶었다.

그때 예수는 유대의 과월절 예절로부터 그 상징을 만들어 내었다. 그는 유대 과월절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현실 생활과의 관련을 더 넓혔다. 성찬례의 근본의미는 인간의 해방을 위하여 자신을 전적으로 봉헌하는 것이었다. 식사로서의 성찬례는 또한 똑같은 목표에 투신하는 참여자들의 일치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예수는 멀지 않아 죽음으로 완성될 자신의 희생과 일치하여 빵과 포도주를 봉헌하였다.

MINIATURIST, German, Weingarten Missal, c. 1216, Illumination on parchment, 292 x 203 mm, The Morgan Library and Museum, New York

성찬례는 여러 가지 측면이 있다. 처음에는 식사, 유대 과월절의 기념, 다시 말하면 하느님의 해방활동을 기억하는 축제가 있다. 두 번째로 “이것은 나의 몸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의 현존이 있다. 그리고 예수 현존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그의 희생에 우리를 초대하고 우리의 응답을 기다리는 것이며, 우리가 우리 시대의 사회에 투신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 성찬례는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죽지 않지만 우리는 그의 죽음을 기억하고 우리 자신 안에서 그 죽음을 다시 재연한다. 네 번째로, 성찬례는 계약을 갱신하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피다.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다”(마르 14,23).

신약은 그리스도의 피로써 인류를 구속하시는 하느님의 약속이다. 그의 죽음은 이 새로운 계약을 상징하며 구속실현의 원칙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성찬례는 하느님의 왕국에서 최종적으로 완성되는 해방의 종말론적인 의미를 상징한다. 

마지막으로 성찬례는 “너희는 나를 기념하여 이를 행하라. 왜냐하면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때마다 너희는 내가 다시 올때까지 나의 죽음을 선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1고린 11,26)라는 그리스도의 초대에 우리가 응답하는 것이다.

예수에게 있어 성찬례는 무엇보다 행동 지향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에게 성찬례는 당시 사회문제에 결정적으로 참여하는 순간에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요 봉헌이었다. 성찬례는 이스라엘 민족의 종교 지도자들과 그들의 편협한 가르침에 결코 양보하지 않는 예수의 의연함을 상징한다.

성찬례는 타협하고 살기보다는 죽음을 택하는 예수의 근본적인 결단을 말해준다. 그 죽음은 이미 계획된 것이었다. 예수는 그의 몸은 죽더라도 그의 메시지와 정신은 살아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성찬례는 잔을 같이 마신 이들 중의 하나가 그를 배반하게 되리라는 사실에 대한 준비, 앞으로 다가올 고통에 대한 전주곡이었다.

성찬례는 그분이 새로운 복음정신에 따라서 만든 새로운 공동체를 결속시킬 끈이 될 것이었다.

<생각하고 실천할 점>

1) 인간해방을 위하여 전적으로 투신하는 것이 성찬례의 근본 의미라면 현재의 나, 우리는 어떻게 인간해방 일에 참여하고 있는가?

2) 하느님의 인간해방 활동을 기억하고, 우리도 예수처럼 시대의 문제와 사람들의 아픔에 동참하고 그분처럼 죽으며, 인류를 구원하시겠다는 하느님의 약속이요, 종말론적인 인간의 해방을 상징하는 성찬례의 이같은 여러 의미에 동의할 수 있는가? 현재 나, 우리가 깨닫고 있는 성찬례의 의미와 다른점이 있는가? 성찬례의 전례적인 의미를 넘어서서 실제의 행동적인 의미를 나, 우리는 어느 정도 깨닫고 실천해 나가고 있는가?

3) 인간의 고통과 사회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행동과 참여의 절정에서 바쳐지는 기도요 봉헌이 성찬례라 할 때, 나·우리의 삶과 일에 있어 그러한 고통과 희생의 순간을 얼마나 경험하고 있으며 그러한 순간에 깨닫는 성찬례의 의미와 편안하고 안이한 순간에 체험하는 성찬례의 의미는 다른 바가 있을까?

4) 성찬례의 보다 깊고 넓은 의미를 깨닫기 위하여 나, 우리의 생활 속에서 어렵고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피하지 말고 마주 대해보기. 또 고통받는 이웃의 어려운 순간에도 동참해 보기. 역으로 고통받는 순간, 이웃의 고통 속에서 하느님의 고통과 죽음을 깨닫고 성찬례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해 보기.

5) 몸은 없어지더라도 정신과 살아있을 것이라는 예수의 믿음을 상징하는 것이 성찬례라 할 때, 나·우리의 삶에 있어 성찬례는 어떠한 고통의 상황 속에서도 죽지 않는 희망을 현재 우리에게 주고 있는가? 고통받는 이들에게도 성찬례가 그러한 희망을 주고 있는가? 아니면?


[출처] 참사람되어 1996년 11월호
[원출처] <하나되어> 1988년 8월(제19호)~1989년 6월(제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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