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응시가 그분께 고정되어 있다면 당신은 행복합니다."
시토회 수도자들은 하늘을 응시했지만 또한 그와 똑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응시하였다. 전례력 안에서 그들은 그들 자신이 그리스도 삶의 형태를 살아가고, 한 발 한 발 그 삶을 따르고 그 신비들을 그들 자신의 삶에 적용시키고 있음을 발견하곤 한다.
모든 수도원장들은 중요한 전례 축일에 15번이나 모든 공동체에 강론을 하곤 했다. 그래서 베르나르드는 그 여정의 시작인 ‘대림절의 성사’에 관해 말하는데, 대림절로부터 그들은 그분의 수난과 승천의 여정을 따르게 될 것이다. 그것은 또한 물론 어둠에서 빛으로의 움직임이고, 1941년 12월 10일 게쎄마니에 들어온 토머스 머튼이 몇 년 동안의 성과 없는 방랑 뒤에 마침내 집으로 들어 왔을 때 그는 새 삶의 시작이 전례력이 시작하는 때이어야 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대림절은 전례상으로 보아서 수도자가 되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다. 전례적으로 새해가 되는 때에 새 삶을 시작하고 새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가 노래하라고 당신에게 주는 모든 것, 신비체 안에 계신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는 모든 기도는 은총, 도움, 구세주이신 메시아의 오심을 갈망하는 외침이다. 수도자의 영혼은 그리스도가 태어나시는 베들레헴이다...
그것은 당신 주변에서 보이는 세상이 죽어 있는 겨울이기 때문에 영적 면에서 한결 더 간절한 소망으로 나타난다. 생명은 쇠하여 앙금만 남는다. 나무들은 옷을 벗었으며, 새들은 노래를 잊었고, 풀잎은 시들어 퇴색하였다. 당신은 가시나무가 뒤엉킨 황무지를 개간하기 위하여 곡괭이를 들고 들로 나간다."
이것은 그가 말한 대로 꾸밈없는 따스함으로 된, 그레고리안 성가와의 첫 번째 만남이었기 때문에 머튼에게 있어서는 더욱 강력하였다. 그는 그 성가의 운율이 고어(古語)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고어 속에 더욱 많은 힘과 확신과 의미를 어떻게 불어넣는지 보게 된다. 그는 대부분이 초기 교회로부터 기원된 전통적인 대림성가를 노래하는데 빠져들었고, 세속 음악에서 발견했던 것과는 다른 단순함, 균형 그리고 힘을 그 안에서 발견하였다.
첫 해 동안 머튼은 전례력의 축일과 시기, 그리고 파종과 재배와 추수의 여러 시기들이 함께 그의 삶을 채우기 시작하고 온전히 하는 것을, 자연적이고 초자연적인 순환이 밀접하게 통합된 조화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다시 찾아온 크리스마스 시기에 그는 크리스마스가 똑같지만 더 강렬한 은총과 위로를 가져다 준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수도력 속에 들어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중요한 발견을 하고 있었다.
베르나르드가 그리스도의 삶의 중요한 사건들을 공동체에게 회상시키곤 했을 때,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건들의 외적인 모습을 넘어서 내적인 의미, 그의 삶의 신비에 관한 나눔으로 이끌어가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것은 어떤 경건한 회상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말구유 안의 탄생에서부터, 기도와 설교, 고통과 죽음, 부활과 승천의 모든 삶의 사건들을 통해 그리스도를 보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상기하는 것이다.
"그분은 이해할 수 없고 접근할 수 없고, 볼 수 없고 전혀 생각할 수 없다.
이제 그분은 이해받기 바라시고,
보여지기 바라시고,
생각되어지기를 바라신다.
어떻게라고 당신은 묻는가?
말구유에 누워 있으면서,
성모의 무릎에 쉬면서,
산 위에서 설교하면서,
밤새도록 기도하면서,
혹은 십자가에 매달리면서,
죽음으로 창백해지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해방되고 지옥을 다스리면서,
또한 사흗날에 일어나면서,
승리의 표시, 못자국을 사도들에게 보여주면서,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면서."
베르나르드는 그리스도의 삶의 전체 프로그램을 짧은 공식으로 취합한다: ‘당신 자신을 사람의 아들과 일치시켜라’. 육화 신비의 근거들 중의 하나는 우리가 그분의 발자국을 따를 수 있도록 우리에게 모범을 남겨주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주님이요 구원자인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어떻게 천국에 올라가야 하는지 보여 주시길 바라고 계시는데, 가르치기 바라시는 것을 스스로 행하셨다... 무엇보다도 내려가기 전에 올라가려 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그분은 스스로 우리의 본성을 취하셨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우리 인간의 조건들을 모방하였고 베르나르드는 다음과 같이 묻는다:
"이것이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형제들이여? 만일, 여러분들이 그분과 똑같이 하지 않는다면, 존엄하신 주님이 자신을 비우고, 자신을 낮추고, 자신을 보잘 것 없게 만드는 것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요? 그분은 이미 당신의 모범으로 그분이 후에 말로 설교하게 될 것을 선포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에게 배워라’... 그런 귀중한 모범을 헛되이 받아들이는 것을 허용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당신 스스로 이 모범을 입증하고 당신 존재의 내면 깊이까지 쇄신하십시오."
그리스도의 인간적 경험은 빈곤, 비참함을 포함하였다. 베르나르드는 그의 강론들 중의 하나에서, ‘내 주님의 모든 염려의 시간들과 쓰라린 경험들’에 관해 말하였는데, 그것은 그가 늘 가지고 다니던 것으로, 그의 가슴에 놓아두었던 약간의 몰약과도 같았다:
"처음엔 유년기의 궁핍에서
나중엔 고난에서 그분은 설교를 하면서 견디셨고,
여정 중의 피로,
기도하면서 지샌 긴 밤샘,
단식했을 때의 유혹,
그분의 연민의 눈물,
사람들에게 설교할 때의 야유,
그리고 마침내 형제애를 배반한 자들로부터의 위험,
모욕,
경멸,
구타,
조롱,
업신여김,
증가된 못들과 유사한 고통들을 보여주는 복음,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우리 인류의 구원을 위한 것"
수도승은 수난과 십자나무와 가시관을 관상하면서 형성되고, 양분을 얻고, 쇄신되며, 그것들이 그에게 가장 소중하게 된다. 여기 위대한 호이랜드의 길버트가 온화함과 부드러움을 가지고 그것이 그에게 의미하는 바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나에게 있어 베개 중 가장 부드러운 베개는, 좋으신 예수여,
당신의 머리에 있는 가시관입니다.
환영받는 작은 침대는 당신의 십자나무입니다.
그 위에서 저는 나고 태어나고,
창조되고 다시 창조되고
그리고 당신 수난의 제대 위에서
나는 기쁘게 자신을 위해 다시 짓습니다,
기억의 둥우리들을."
만일 수도승들이 그리스도를 영속적으로 마음에 새기길 원한다면 그는 기꺼이 수난 속의 그리스도의 발자국을 되짚어야 한다. 호이랜드의 길버트의 이 말들은 그가 한 것처럼, 그리스도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면서 그의 청중들이 나누기를 바랬던 자연적인 기도의 분출과 같다.
"숭고하다. 당신 앞서 당신의 사랑하는 분이 밟은 길은.
참으로 거룩하다. 당신이 스스로 준비한 등반은.
올라간다. 이 계단들을 맨발로 신발을 신지 않고.
여기서 기쁘게 당신의 발을 준비하라
당신의 발이 그리스도의 피로 물들일 수 있도록.
이 피로써
당신의 발 뿐만 아니라
당신의 손과 당신의 머리를 물들여라,
온전히 자줏빛으로,
온전히 당당함과 온전히 고귀함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그리스도의 수난에 의해.
만일 그분의 수난을 나눈다면 당신은 그분의 나라를 나누리라."
그리스도의 거룩한 인간성에, 수난과 마찬가지로 탄생에 대한 이 헌신은 단지 영적인 사랑으로 이끌어 갈 여정의 시작일 따름이다. 이러한 전환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형태로 보여질 수 있으며, 부활과 더욱이 승천이 초기 시토 수도자들에게 그렇게 중요했던 이유는 바로 이런 전환에 있다.
만일 우리가 지상에 내려온 그리스도를 따른다면 하늘에서 그를 알게 되는 마지막 시기에는 더욱더 커다란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승천까지의 전례의 순환을 따른다면, 아가서의 신부의 말에 나오는 "당신을 따라 달음질치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가 가능하게 된다. 성모승천축일에, 우리 성모님이 하늘에 올라가셨다는 생각에서, 알레드는 그의 청중들에게 즐거움이 우리 여정의 끝에서 우리 모두를 기다린다고 말한다:
"어떻게 우리 주님이 구유 안에 누워 계신지 생각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지만,
그러나 어떻게 하늘을 지배하시는지 관상하는 것은 훨씬 더 큰 즐거움이다.
어떻게 그분 어머니의 가슴에서 길러지는지 생각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지만,
그러나 어떻게 만물을 먹이시는지 관상하는 것은 훨씬 더 큰 즐거움이다.
동정녀의 팔에 안긴 그분을 생각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지만,
그러나 어떻게 하늘과 땅위의 모든 것을 당신 안에 안고 계시는지 관상하는 것은 훨씬 더 큰 즐거움이다."
출처/1998년, 미국 메리놀회 출판사인 올비스에서 출판된 <단순함의 길(The Way of Simplicity)>을 참사람되어에서 2001년 4월에 옮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