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연의 네팔 카나의 집 이야기-13]
‘꽃 대궐을 지나게 되니 이 때 오셔야 합니다.’ 매년 3월 중순경부터 사월 중순까지 히말라야에서는 꽃의 향연이 펼쳐진다. 네팔의 국화이기도 한 랄리 구라스라고 하는 빨간 꽃이 한 달 이상 피어 있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모진 겨울을 견디어낸 뒤 나무에서 피어나는 이 꽃들은 변덕스런 바람이 부는 봄의 계절에 한국의 동백꽃과 유사한 빛으로 피어난다.
하얀 설산과 조화를 이룬 이 꽃의 향연을 만끽하러 이 시기에 트레킹을 오는 사람들이 많아 시즌이라 한다. 가을엔 꽃이 없어 봄만 같지 않기에 고작 해발 삼천 이백 미터의 뿐힐(Pun hill)을 오르려 세계의 시민들이 온다. 마갈족의 일원이며 이 지역에 사는 원주민인 '뿐'이란 이름을 갖게 된 이 언덕은 삼사일 정도만 시간을 내어도 올 수 있는 곳이라 여행객들이 선호하는 곳이다.
여러 봉우리가 있는 안나푸르나와 히말쭐리 그리고 마차푸차레 파노라마를 볼 수 있는 이 곳에서 일출을 맞이하며 젊은이들은 미래를 약속하기도 하고, 자신의 포부를 외치며 히말라야의 정기를 마신다. 네팔에서는 설산을 산이라 하기에 이곳은 그러니까 산을 보기 위해 올라오는 등성이라 할 수 있다. 고산 증에 시달리는 분들도 더러 있지만, 누구나 등반이 가능하기에 미리 여행을 계획한 팀들과 주로 오게 된다.
올해 오신 손님은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수지 에니어그램 강사들이었다. 한국에서 갈고 닦은 실력을 이곳 교장 선생님들과의 훈련 프로그램에서도 나누어 호응을 크게 받았다. 님도 보고 뽕도 따는 식의 여행이 네팔로 오는 이들의 여행 콘셉트라 할 수 있다. 히말라야도 보고 또 가난한 이들에게 뭔가 도움이 되는 일도 하려는 바로 그런 목적인 것이다.
세계 제일의 무엇이 하나쯤 있다는 것은 그 나라의 매력을 높여주는 요인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 몇 년 사이 네팔로 오는 한국인들이 부쩍 증가하고 있으며 지진 이후에는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온 단체들이 크고 작은 프로젝트들을 더 많이 실행하고 있는 곳이다.
젊은 활동가들은 이왕이면 네팔로 오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은데 바로 히말라야가 주는 매력 때문이라 할 수 있고 또 백 여 개가 넘는 다민족들이 공존하며 빚어내는 삶의 다양한 볼거리가 당김의 요소로 작용한다. 세계의 어떤 시민들보다 유연하고 여유 있게 누구나 환영하는 관용과 수용의 대명사 네팔인들은 산간 마을 곳곳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마을 문화를 이어 간다.
하지만 이 나라를 위협하는 요인, 즉 이주노동의 급격한 증가로 히말라야 산간 마을을 지켜내는 이들은 주로 노인들과 아이들일 것이라고 판단하면 그것은 약간의 오산일 수 있다. 젊은이들이 팀을 이루어 롯지와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는 모델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진 문화적 특성을 살려내면서도 편의 시설을 잘 관리하고 맛있는 음식을 조리법을 익힌 젊은이들이 손님들을 환대 하며 자신들만의 고유한 일터를 지켜내고 있다. 하지만 얼마나 이런 곳이 있을지 그것도 의문이다. 더구나 기후는 날로 변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다는 것을 이번 여행에서도 실감한 것이다.
이 때 오면 반드시 꽃 대궐을 지나며 그 아름다움에 빠져 황홀경에 도달할 것이라던 예언은 여지없이 빗나간 것이다. 기온 차이로 내린 눈 때문에 나무에서 얼어붙은 죽은 꽃들의 빛바랜 색이 순례자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였다. 피어나기도 전에 시들어 버린 꽃은 급격한 기후 변화를 알려주는 바로미터였다. 우기도 아닌데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가 내려 트레커들을 긴장케 하였으며, 우기에나 등장하는 거머리들도 조기에 나타나 등산객들을 괴롭혔다.
휴양지로 소문난 포카라에서 볼 수 있는 설산 물고기 꼬리라 하는 마차푸차레는 스모그와 안개 그리고 구름 속에 갇혀 전혀 나타날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뿌연 안개에 섞인 대기 먼지로 관광 도시 포카라의 페화 호수 전경은 선명성을 잃고 있었다. 이렇게 가다간 언제까지 우리가 이 설산을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면서 네팔의 관광 산업이 걱정되기도 한다.
여전히 오늘도 변함없이 많은 사람들이 네팔을 찾아오고 있다. 해외로 나가는 네팔 사람들 또한 대단이 많다. 오고 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네팔에 거주하는 이들은 맞이하고 또 보내느라 늘 분주하다. 그러자니 손님들과 근 열흘 이상 북새통을 이루며 같이 다니고 난 뒤, 특히 그들이 떠난 뒤엔 마음을 안착시키는데 시간이 걸린다. 그래도 오늘도 우린 아이들 장학금 프로그램을 이야기하고, 짓고 있는 학교 상태를 점검하며 다음에 올 손님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어디서든 삶은 계속 되고 있고, 또 오고 가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연대와 우정의 바람은 계속 불고 있다. 포기하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공동선을 위해 옳은 일을 옳게 하는 것이 다만 오늘 할 일이지 않겠나. 바람이 불면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그 흔들림으로 인해 꽃은 피어 난다. 흔들흔들 거리면서도 우리는 우리의 길을 계속 가야한다.
이금연 세실리아
국제 가톨릭 형제회 (AFI) 회원
네팔 환대의 집 'Cana의 집'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