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함께 걷기 십자가의 길-헨리 나웬]
가난한 이들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나는 남자와 여자가 등에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길 가장자리를 걷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어느 날 이른 아침에 그들이 걸어가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아마도 시장이나 들로 나가서 무엇을 팔려고 하거나 혹은 사려고 했거나, 아니면 일거리를 찾기 위해서 또 하루를 버티기 위한 양식을 줄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는지 모르겠다.
버스 안에 앉아 수많은 사람들이 맨발로, 아니면 다 헤진 샌들을 끌고 걸어가는 것을 보면서 죄책감을 느꼈던 것을 기억한다. 나는 그들이 볼리비아, 페루 그리고 과테말라의 먼지구덩이 길을 걷던 것을 보았고, 마음의 눈으 로 여전히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가난한 이들은 우리 세계의 길 가장자리를,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살아남기 위해 걷고 있다. 나는 살면서 그렇게 많이 걷지 않았다.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면 늘 비행기, 기차, 자동차와 버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 나는 발로 대지의 먼지를 접촉한 적이 별로 없다. 바퀴 달린 기계가 항상 모든 것을 쉽게 해결해 주었다.
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는 걷는 이들이 많지 않다. 방향을 묻기 위해 길 위에서 누군가를 찾는 것조차 쉽지 않다. 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사람들은 좁은 공간에 밀폐된 채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다른 사람들과 가끔씩이라도 마주친다면 그건 아마 주차장, 슈퍼마켓이나 패스트푸드점 정도에서나 가능했다.
그분은 여전히 더불어 걷고 이야기 나누며
하지만 예수님은 걸으셨고, 여전히 걷고 계신다. 예수님은 한 동네에서 다른 동네로 걸으시고, 그렇게 걸으시면서 가난한 이들을 만나신다. 그분은 구걸하는 이, 눈먼 이, 병든 이, 통곡하는 이, 희망을 잃은 이들을 만나신다. 그분은 언제나 땅과 매우 가까이 계신다. 그분은 한 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를 느끼신다. 그분은 시들고 바래버린 풀, 바위투성이의 땅, 가시덤불,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 들판의 꽃들과 풍요로운 수확에 대해 잘 알고 계신다.
거칠고 생명으로 가득 찬 계절 을 직접 걸으시면서 자신의 온 몸으로 느끼셨기에 그 모든 것 을 알고 계신다. 그분은 당신과 함께 걷는 이들의 말을 주의 깊게 경청하며, 여정의 진정한 동반자가 갖는 권위를 통해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그분은 단호하시지만 아주 자비로우시고, 직설적이지만 아주 부드러우시며, 강하게 요구하시지만 모든 것을 용서하시며, 진실을 면밀히 살피시지만 우리를 아주 존중하신다. 그분은 가장 깊은 곳을 잘라내시지만 치유자의 손길로 그렇게 하신다. 갈라놓으시지만 오로지 성장을 위해서다. 부인하시지만, 그러나 더 큰 긍정을 위해서다.
세상의 거친 곳들을 걷는
가난한 이들은 나를 ‘겸손함’으로 초대한다
예수님은 그분 자신이 걷고 있는 땅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그분은 자연의 법칙을 관찰하고, 그것들로부터 배우며, 그것에 대해 가르치셨다. 이렇게 그분은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눈먼 이들에게 빛을, 갇힌 이들에게 자유를 선포하도록 당신을 보내신 분과 창조의 하느님이 같은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드러내신다.
길 위, 사막 그리고 세상의 거친 곳들을 걷는 가난한 이들은 나를 ‘겸손함’으로 초대한다. 라틴어 “humus”에서 유래한 ‘겸손’이란 말의 본래 의미는 ‘땅’ 또는 ‘흙’이다. 나는 흙과 땅에 가 깝게 있어야 한다. 나는 이따금씩 하늘의 구름을 보면서 좀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곤 한다. 하지만 내가 나의 시선을 땅으로 또 다시 돌리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곳에서 길고 피곤한 발걸음을 이어가면서 함께 가자고 나를 초대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가지 않는 한, 나의 꿈들은 결실을 맺지 못할 것이다.
그분이 내 발을 만지시고 씻어주셨다
그러면, 가난한 이들과 함께 걷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그것은 나 자신의 가난함을 인식하는 것이다. 나의 내면 깊은 곳의 부서짐, 피곤함, 무력함, 유한성을 깨닫는 것이다. 거기서 나는 땅과 연결된다. 거기서 나는 진정으로 겸손해진다. 그렇다. 그곳에서 나는 땅을 걷는 이들과 연대하게 되고, 나 역시 아주 취약하고 소중한 사람으로서 사랑받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수난을 당하시기 전에, “당신이 하느님에게서 나왔다가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것을 아시고, 식탁에서 일어나시어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들어 허리에 두르셨다. 그리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기 시작하셨다.”(요한 13,5)고 하셨다.
말씀이 살이 되시어 나의 피곤한 발을 씻어주신다. 그분은 내가 흙과 접촉한 바로 그 부분, 하늘을 향해 뻗은 나의 몸이 땅과 연결되는 부분을 만지신다. 그분은 무릎을 꿇으시고 나의 발을 당신의 손으로 감싸 씻어주신다. 그런 다음 그분은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시고 그분의 눈과 나의 눈이 마주치자 말씀하신다.
“내가 너에게 한 일을 이해하겠느냐? 너의 주님이자 스승인 내가 너의 발을 씻었다면 너 또한 너의 형제, 자매들의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요한 13,13-14)
십자가를 향한 길고 고통스러운 여정을 계속하면서 나는 내 이웃들의 발을 씻어주기 위해 멈추어야 한다. 나의 형제와 자매들 앞에 무릎을 꿇고 그들의 발을 씻어주면서, 그들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나와 함께 걷고 있는 형제자매들이 있어 여정 자체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출처_ <예수님과 함께 걷기 십자가의 길>, 헨리 나웬, 참사람되어, 2015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