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마지막 일주일-3강 : 화요일, 세금논쟁]
예수는 주간 첫날인 일요일에 성전에 입성하시면서 ‘평화의 왕’이 어떤 모습인지, 빌라도의 행렬에 견주어 보여주고, 이튿날인 월요일, 로마식민지세력의 적폐를 드러내는 상징인 ‘성전’을 폐쇄하시는 퍼포먼스를 하시고, 다음날인 월요일에는 아침부터 성전에 들어가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와 원로들과 헤로데 당원들의 언어적 도전에 응답하신다. 마르코복음은 이날 일어난 사건을 묘사하는데, 총 115절이나 되는 많은 지면을 사용했다.(11,27-13,37)
행위의 원천-예수의 권위
예수가 성전 뜰에 머무실 때 제일 먼저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원로들이 몰려들어 어제의 ‘성전정화’ 사건에 항의하며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라고 묻는다. 예수는 공식적인 정치적-종교적 직분을 지닌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수의 답변을 보면, 그분이 예언자 반열에 서 계신 분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예언자들은 종교적-정치적 당국의 임명을 받아 업무를 보는 사람이 아니라, 단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분이 예언자 반열에 계신 분이라면, 세례자 요한처럼 “하늘에서 온” 권위에 기대어 발언할 수 있었으며, 당시 유대인들은 예언자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할 준비가 언제나 되어 있었다. 예수는 불의한 권력이 시답잖게 ‘권위’의 원천에 대해 물었을 때 대답할 가치를 느끼지 않았다. 그들이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온 것인지, 사람에게서 온 것인지 “모르겠다”고 어정쩡하게 답한 것처럼, 예수 또한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고 즉답을 피했다.
예수는 이처럼 ‘정치적 계산에 빠른’ 이들이 실상 어리석은 이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그들은 요한과 같은 예언자를 민심에 반하여 공개적으로 배척할 수도 없었고,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어긋나는 예언자를 받아들일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틈새를 예수는 건드렸다. 이때 그들은 분해서 이를 악물었을 테고, 예수는 속으로 빙긋이 웃었을 것이다. 예수는 그들이 상대하기에 만만찮은 고수였다.
예수의 적대자 1-탐욕스런 소작인의 비유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이 머리를 흔들며 뒤로 물어나자, 곧이어 예수는 이야기의 주도권을 쥐고 그들이 들으라는 듯이 포도원 주인이 보낸 종과, 심지어 아들마저 죽이고 포도원을 차지하려고 했던 소작인들 이야기를 이어갔다. 예수의 반격이었다. 예수는 포도밭 주인이 돌아와 “그 소작인들을 없애 버리고 포도밭을 다른 이들에게 줄 것”이라고 말했다. 뒤에 서서 이 말을 듣던 수석사제들과 원로들과 율법학자들은 가슴이 철렁했을 것이다. 여기서 포도원은 이스라엘과 그 백성들이고, 이 포도원에서 이익을 사유화하려고 했던 탐욕스런 소작인은 유대 행정체계의 수장들인 사제들과 원로와 율법학자들이었기 때문이다. 포도원은 그들의 소유가 아니라 하느님의 소유였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두고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을 알아차리고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워 그분을 그대로 두고 떠나갔다.”(마르 12,12)
한마디 덧붙이자면,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라는 성경구절은 하느님이 포도원을 수석사제와 원로들과 율법학자들 대신에 누구에게 맡길지 암시한다. 이들이 “내다버린 돌”은 죄인으로 간주하며 배제와 차별의 그늘로 내몰았던 ‘가난한 이들’이었다. ‘병자와 세리와 창녀’ 또는 실업자를 포함한 가난한 이들은 산상수훈에서 “하느님 나라의 주인이 될 것”이며, “하늘나라에 먼저 들어갈” 사람들이었다.
예수의 적대자 2-세금논쟁
다음에는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들이 예수에게 도전한다. 여기서 헤로데 당원들은 역사적 실체가 분명히 확인된 바 없지만, 박근혜와 최순실 주변에서 서로 이익을 탐하던 김기춘, 조윤선, 우병우를 비롯한 부역자들을 떠올리면 적당하겠다. 바리사이는 안식일 준수와 정결에 관련한 구례들을 포함한 전통적인 종교적 관습의 체계화를 담당하는 유대교의 민족주의 집단이었다. 율법을 강조하던 이 세력은 한 때 로마제국에 저항하는 투쟁을 이끌기도 했지만, 예수에 맞서는 과정에서 다른 정치적 세력들과 동맹을 맺었다. 예수가 제국과 제국의 부역자들을 공격했을 뿐만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죄인으로 만드는 세밀한 율법 적용에 대해서도 반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득권 수호 차원에서 이루어진 일시적 연합이다.
이들은 예수를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시는” 분이라고 띄워주면서, 예수를 올가미에 씌우려고 “황제에게 세금을 바쳐야 할지, 바치지 말아야 할지” 자못 정치-종교적으로 민감하고 난감한 질문을 던진다. 간사하고 영악한 집단이다.
기원전 63년 유대 본토가 로마제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로마는 ‘인두세’를 포함해 유대인들에게 해마다 조공을 요구했다. 이 조공은 대사제를 포함한 현지 관리인들을 통하여 이루어졌는데, 주로 토지와 농산물에 대한 세금을 통해 거두어갔다. 예수가 만약 황제에게 내는 세금을 반대한다면, 대사제 등 당대 최고권력의 대리인들은 예수가 로마권력에 대한 저항을 선동한다고 고발할 것이다. 예수가 세금을 승인한다면 경제적 이유와 신앙적 이유로 로마에 불만을 갖고 있는 군중들에게 불신을 받게 된다. 이 질문의 목적은 예수로 하여금 민심을 거스르는 발언을 하게 함으로써 군중들로부터 소외시키는 것이었다.
예수의 대답은 노련했다. 예수는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다 보여 달라”고 ‘그들에게’ 청한다. 그들이 그것을 가져오자 예수는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고 물었고, 그들 입에서 “황제의 것”이라는 대답을 이끌어내었다. 결국 필시 티베리우스 황제의 초상이 새겨졌을 은전의 출처가 ‘그들’임이 폭로되었다. 이 순간 그들은 군중들이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로 간주된다. 그들은 로마와 협력하는 정치체제의 일부였던 것이다. 예수는 그들이 놓은 덫에 덫을 걸었다. 곧이어 예수가 한 말은 이러하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마르 12,17)
이 말은 아주 도전적인 언어였다. 예수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무엇이 황제에게 속한 것이며, 무엇이 하느님께 속한 것이냐?”는 질문에 답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모든 것’은 하느님의 소유였다. 이스라엘 땅도 하느님께 속하고, 모든 사람들은 하느님의 땅에서 일하는 소작인이거나, 그 땅에 머무르는 이방인이다.
“땅은 나의 것이다. 너희는 내 곁에 머무르는 이방인이고 거류민일 따름이다.”(레위 25,23)
예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포도원은 하느님께 속한 것이지, 로마제국의 소유도 아니고 로마에 협력하는 지역관리들의 소유도 물론 아니다. 모든 땅은 하느님께 속한다. “주님 것이라네, 세상과 그 안에 가득 찬 것들, 누리와 그 안에 사는 것들.”(시편 24,1) 그러면 황제에게 속한 것은 무엇인가? 예수의 말을 곰곰이 새기면, 황제에게 속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예수의 대답은 상당히 ‘정치적인’ 발언이다. 그런데도 교회는 그동안 이 구절을 마치 종교적 영역과 정치적 영역이 따로 있다는 엄숙한 선언인양 해석해 왔다. 히틀러시대의 나치독일이나 수많은 독재정권이 이 부분을 “국가권력에 대한 복종”을 의미한다고 강요해 왔다. 정치적 결정에 교회가 간섭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교회는 그저 경신행위에 골몰하며 ‘사적인 영역’에서만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고 제한하는 논리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종은 “정치는 자선의 최고형태”라고 말하며 그리스도인의 정치참여를 독려했다. 정치가 하느님 백성의 살림살이에 깊숙이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의 적대자 3-부활논쟁
화요일에는 유대의 각 정파에서 하나씩 차례로 예수에게 도전해 왔던 날이다. 이번엔 뜬금없이 사두가이들이 와서 예수께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이스라엘에는 수혼법(嫂婚法, 兄死取嫂法)이 있는데, 관습에 의하면, 어떤 사람이 자식 없이 죽었을 때 그의 동생이나 가까운 친척이 그 과부와 결혼하여 처음 낳은 아들을 죽은 사람의 아들(상속자)로 삼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남자의 유전적 자료, 이름, 재산의 전승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부인은 이런 목적이 달성될 때까지 형제에서 형제로 넘겨진다. 여기서 바리사이들은 일곱 형제와 다 혼인하였으나 후사를 얻지 못하고 죽은 과부는 과연 저승에서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인지 물었다.
예수는 죽은 이들은 “장가가는 일도 없고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고 하였으나, 이는 사후세계에 대한 어떤 정보를 전해주려고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곧바로 예수는 모세가 떨기나무 아래서 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인용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탈출 3,6) 이 말씀을 두고 예수는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마르 12,27)이라고 덧붙인다. 하느님의 관심은 삶이지 죽음이 아니라는 전갈이다. 예수가 직접 가르쳐 주었다는 <주님의 기도>에서도 “하느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뤄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사실 당대의 권력층(대사제, 부호)이었던 사두가이들의 질문은 처음부터 진정성이 없는 것이었다. 그들은 저승에서의 삶을 묻고 있지만, 정작 그들은 사후의 삶과 부활을 믿지 않는 정파였다. 그들은 ‘토라’(모세오경만을 성경으로 인정하고 예언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예언서는 권력층과 부자들뿐 아니라 그들에 의해 주도되는 체제 자체를 비판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또한 사후세계 또는 부활에 대한 관념 역시 ‘의인의 회복’과 관련된 것이었다.
기원전 200년 전 그리스의 황제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에 저항했던 신실한 유대인들이 순교한 데서 비롯되었다. 곧 부활에 대한 믿음은 “의인들이 순교한 후 저승에서 축복받을 것”이라고 믿으며, 하느님의 정의를 옹호하는 방도로 등장했다. 그래서 예수 당대에 바리사이와 에세느파를 포함해 대다수 유대인들은 사후의 삶을 믿었다. 그러나 사두가이들은 사후의 삶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사회적 특권층이었기 때문에 바로잡아야 할 불의가 감지되지 않았다. 당연히 예언자적 발언과 순교는 무의미하였고, 저승의 삶은 불편한 걸림돌이었다. 결국 바리사이가 예수에게 사후의 삶에 관해 물어본 것은 어떤 합리적 대답도 불가능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예수의 신용을 떨어드리기 위함이었을 뿐이다.
예수의 신앙-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예수가 적대자들과 논쟁을 벌이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고개를 주억거리던 어느 율법학자는 예수가 도대체 어떤 생각을 심중에 품고 있는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는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이에 예수는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면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거론한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르 12,30; 신명 6,4-5)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르 12,31; 레위 19,18)
“네가 싫어하는 것을 네 이웃에게 하지 마라. 그것이 율법의 전부이며 나머지는 그에 대한 주석”이라고 했던 1세기 바리사이 랍비 힐렐처럼 예수는 대답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쉐마, 즉 “이스라엘은 들어라!”하면서, 시작되는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4-5)는 본문을 매일아침과 저녁기도 시간에 두 차례씩 낭독했다. 그들은 문설주 위에 작은 상자를 마련하여 그 본문을 그 속에 간직해 두기도 하였으며, 이 성구가 기록된 작은 상자(tefillin)를 팔과 머리에 지니고 다니기도 했다.
여기서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느님과 하느님께 속한 것을 사랑한다는 것이며, 황제와 황제에게 속한 것을 사랑하지 않다는 뜻이다.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모든 차별과 배제를 거부하고 지위가 높은 자와 소외된 자, 의인과 죄인, 부자와 가난한 사람, 친구와 원수, 유대인과 이방인조차 하느님께 속한 백성으로 사랑한다는 것이다.
예수는 여기서 처음으로 자신에게 공감을 하는 사람을 만난다. 그 율법학자는 예수에게 공감하며,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다”고 덧붙였다. 이에 예수는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고 했다. 이 순간에 예수와 성전관리인들 및 그 대리인들 사이에 빚어졌던 갈등이 해소된다. 이 율법학자는 그야말로 “성전 마당”에서 희생제사보다 더 중요한 계명이 있음을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70년 성전 파괴 이후 대두된 랍비 유대교의 얼굴을 미리 보는 듯하다.
그리고 “멀리 있지 않다”라는 말은, 그가 하느님 나라의 본질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나라(통치)에서 멀리 있지 않지만, 그 나라에 아직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까이 있지도 않다는 역설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이후 그리스도교 신앙과 랍비 유대교가 ‘황금률’을 공유하고 있지만 서로 다른 길을 가야 했던 현실을 비추어준다.
예수의 나라-다윗의 나라와 율법학자와 과부의 헌금
“다윗 스스로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 되느냐?” 많은 군중이 예수님의 말씀을 기쁘게 들었다.(마르 12,37)
마르코 복음은 이윽고 ‘다윗의 자손’과 ‘율법학자’와 ‘과부’의 삶을 대조한다. 예수는 먼저 자신을 ‘다윗의 자손’이라 부르는 것을 거부한다. 예수가 예루살렘에 이르렀을 때 눈먼 거지 바르티매오가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10,47)라고 부럿으며, 성전에 입성할 때 군중들이 “다가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는 복되어라. 지극히 높은 곳에 호산나!”(11,10)라고 함성을 질렀다. 이는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들 가운데 나오리라는 전승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가 선포한 하느님 나라는 ‘다윗의 나라’보다 더 위대한 나라였다. 그의 나라는 “다스리는 자가 섬기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예수는 자기과시욕에 빠진 율법학자들을 맹렬히 비난한다. 이들은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회당에서 높은 자리에 앉고, 잔치 때에 윗자리를 즐기지만, 정작 가련한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는 것이다.
예수는 이런 자들을 엄중히 단죄하면서, 오히려 헌금함 앞에 서 있던 과부를 보고 ‘과부의 렙톤 두 닢’을 칭찬한다. 예수에게 바리사이들은 세밀한 율법조항으로 남들에게 힘겨운 짐을 얹혀 놓으면서, 자신은 손가락도 까딱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다. 예수의 나라는 과부들이 먼저 들어갈 나라이며, 그들 때문에 지탱되는 나라이다. 대사제와 율법학자들과 원로들처럼 기득권층은 그 나라에서 아주 멀리 있다.
성전을 떠나며
예수가 하루 일을 마치고 떠날 때가 되었다. 예수는 성전뿐 아니라 예루살렘 성안 도시에서 묵지 않는다. 발을 옮기는데,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스승님, 보십시오. 얼마나 대단한 돌들이고 얼마나 장엄한 건물들입니까?” 감탄한다. 대부분의 제자들이 갈릴래아 시골에서 동행한 이들이었다면 당연히 나올 만한 이야기다. 그러나 예수는 매몰차게 한 마디 남긴다. “너는 이 웅장한 건물들을 보고 있느냐? 여기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지고 말 것이다.”(마르 13,2)
역사가 요세푸스는 성전의 가장 큰 돌이 길이 68피트, 높이 9피트, 폭이 8피트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큰 돌이 길이 40피트, 높이 10피트, 폭이 14피트로 무게가 500톤에 달한다. 그러니, 제자들은 성전이 파괴된다는 말을 믿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발언이 지닌 핵심은 “성전에 연연해 하지 말라. 중요한 것은 다른 데 있다”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후 이어지는 긴 묵시록은 하느님의 결정적인 역사개입이 일어날 것이고, 그 일은 이 세대가 지나가지 전에 이루어질 것이라는 초기 그리스도교 운동의 ‘임박한 종말론’이라는 기대가 담긴 첨삭이었을 것이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