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성당으로 가는 길에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줄지어 선 청소년들을 목격하였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거나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는 젊은이들이 다양한 포즈로 서 있었다. 그들을 촬영하고 있는 사진 기자에게 다가가 ‘이게 도무지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아이돌 가수 한 명을 선발하기 위한 행사라고 하였다.
열 명도 아닌 단 한 명의 아이돌 가수를 뽑는데 이토록 많은 청년들이 대기하고 있다니 놀라워 그 중 밝은 표정의 청년에게 다시 물었다. 프라줄 샤라고 자신을 소개한 청년은 이미 지방 행사는 끝났고, 수도권 행사를 위해 오늘 접수를 하러 온 것이라 하였다. 첫 테스트로 전국에서 총 480명을 선발하고 그들이 네 단계의 테스트를 거쳐 단 한 명이 선발된다고 한다. 유명한 가수들이 심사위원을 맡은 이번 행사에는 16세에서부터 서른살 사이의 젊은이라면 누구나 다 응모할 수 있다지만 대기자들은 대부분 십대 아이들이었다.
설산 ‘안나푸르나’ 이름을 붙인 텔레비전 채널이 주관하는 이 행사에 피아노 연주까지 해야 하는 걸로 보아 네팔의 젊은이들에게도 음악은 보편적 구원의 의미에 준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프라줄은, 울타리를 벗어나서 세상 밖으로 나가기 위한 시도가 바로 이 행사에 응모하려는 동기라 하며 ‘나 홀로 방’에서 하던 노래를 ‘대중 앞’에서 당당하게 그리고 멋있게 부르고 싶다 말한다.
시리즈로 이어질 아이돌 가수 만들기 국제프로젝트에 비록 탈락된다 하더라도 결코 꿈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프라줄의 확신에 찬 말에서 청년들에게 끼치는 대중문화 예술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잠깐의 대화에도 프라줄과 그의 친구들은 한 목소리로 한국을 좋아 한다며 우리말로 몇 마디 인사를 건넨다. 아이들의 그 싱그러운 기운에 기분이 좋아져 시간 날 때 한국음식을 먹으며 네팔의 청년 문화에 대해 더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 하였더니 대뜸 전화번호와 메일 주소를 건넨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려는 청소년들에게서 느껴지는 밝고 명랑한 활기는 어디서 오는 걸까?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하리라’는 격언을 삶의 표어로 삼아 살았던 도로시 데이를 떠올려 본다. 대중문화든 순수예술이든 우리는 노래를 거의 매일 듣거나 부른다. 우리 삶에 음악이 없다면 우리 일상은 얼마나 건조할까? <쇼생크 탈출>이라는 영화에서 모차르트의 아리아 '저녁 바름은 부드럽게'를 듣는 죄수들의 그 표정을 떠올려 보라. 아름다운 선율이 영혼을 파고드는 순간 존재의 깊은 곳에서 무어라 형언 할 수 없을 온기가 흘러나옴을 영화에서 확인하게 된다.
음악은 어디서 오는가? 인간인 우리가 만들어 내는 걸까? 수피들에 따르면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악기와 손이 접촉 하는 순간 소리를 만들어 내는 주체는 신이라고 한다. 소리는 어디서 오는가? 바로 신에게서 오기에 음악은 우리에게 영적인 상승을 위해 중요한 매개가 되기도 한다.
하얀 설산이 우뚝 서 있는 카트만두 분지, 이곳에서 우리는 하루에서도 수십 번 전쟁과 분쟁에 대한 소식을 반복해서 듣게 된다. 시리아 난민촌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뉴스는 중단 없이 전하기에. 인류의 고통 앞에 평범한 소시민인 우리는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 진정 우리는 총을 내리고 대신 악기를 손에 들고 연주할 수 없는가? 스마트 폰 스위치를 잠시 끈 채 우리는 조용히 침묵할 수 있으려나? 혼자서 하기 힘든 이 작은 행동과 실천을 위해 우리는 서로 친밀감을 가지고 분주한 발길을 멈추고 마주 앉을 수 있을까?
그래서 가진 재능을 서로 나누어 더 큰 영적 변화를 함께 체험하는 작은 기적들이 일어나게 할 수는 없는 걸까? 질문에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상상을 초월하는 경쟁, 거기서 아주 소수의 사람만이 이주의 기회, 아이돌 가수가 될 기회, 학생노조 지도자가 될 기회를 누리게 되는 이 냉혹한 현실 앞에서 그날 자신의 접수 차례를 기다리며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뿜어내던 청년들의 그 활기가 평화의 발전소를 돌리는 에너지가 되게 할 방도는 없을까?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자발적 가난이라는 가톨릭일꾼의 원칙을 또 떠올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4만개의 비영리 기구를 통해 국제 지원금이 유통되고 있는 네팔에서 청년들은 더 이상 이 나라에서 비전을 보지 못한다며 국경을 넘으려 애쓰고 있다. 아이돌 가수 만들기 국제 프로젝트 시리즈 첫 회에서 최종 당선자가 확정되면 연락해 주겠다던 프라줄, 녀석이 기별을 해 오면 가정이라는 담을 넘어, 또 네팔이라는 국가의 경계를 넘어 도달하고자 하는 궁극 목표 지점이 무엇인지 좀 물어 보아야 하겠다.
지진 이후 공사 현장이 많아 건기의 정점인 요즈음 뿌연 연기로 숨 쉬기 조차 힘든 이 때, 물질적 빈곤 보다 정신적 빈곤이 순환되고 있어 아차 하는 순간 ‘절망 혹은 비관주의’라는 순환의 늪에 빠질 위협이 항시 우리를 삼키려 입을 벌리고 있다. 이 환경에서 살아야 할 청년들을 위한 기도를 부지런히 해야 하겠다. 이번 주말엔 프라줄에게 전화를 해야겠다.
이금연 세실리아
국제 가톨릭 형제회 (AFI) 회원
네팔 환대의 집 'Cana의 집'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