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불자들의 대표적인 기도 장소인 보우더나트(Boudhanath)를 찾았다. 서울에서 지인이 찾아와 구경 차 간 것이다. 카트만두 북동쪽에 위치한 보우더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 유산으로 높이 36미터의 거대한 탑이다. 세기를 이으며 티베트와 네팔 불자들에게 기도의 장소가 되어준 보우더는 1950년대 피난을 온 티베트인들이 근처에 정착하면서 현재의 만다라 모양을 이루었다.
거대한 돔 형태의 탑이 중앙에 있고, 그걸 중심으로 건물과 건물이 이어져 마치 요새나 성채 같은 형태를 이룬 것이다. 티베트 불교의 네 종파를 대표하는 사찰과 수 십 개의 불교 수도원들 그리고 각종 문화와 상업 시설들이 촘촘히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그곳에 들어서면 마치 다른 세상으로 넘어 간 것 같아 존재 깊은 곳에 신비감이 든다.
서울의 조계사처럼 사찰 건물이 길거리에서부터 훤히 보이는 것이 아니라, 거리에 이어진 여러 건물들과 잇닿아 있다. 스투파(탑)로 들어가는 입구도 그리 넓은 편은 아니다. 개구멍(?)도 곳곳에 있어 입장료를 내지 않으려면 미로를 따라 들어가도 된다. 어디로 통하던 보우더에 들어가면 그 곳이 발산하는 독특한 분위기 때문에 마치 딴 세상에 온 것 같다.
탑 공사, 노동이 기도와도 같다는 생각
시끄럽고 혼잡한 거리를 벗어나 250루피의 입장료를 낸 뒤 입구에 들어서니 저절로 깊은 숨을 들이 쉬게 된다. 얼굴을 들어 하늘을 보며 코끝으로 바람을 넣는데 하얀 스투파(탑)에 걸쳐져 있는 오색의 깃발이 힘차게 펄럭이며 맞아 준다. 요즘 건기에다 지진 복구와 도로 확장 공사로 카트만두 분지는 뿌연 먼지로 가득 차 있다. 더구나 각종 이동수단들이 무차별 쏟아 내는 검은 매연으로 숨 쉬는 것도 힘들어 이 긴 건기를 어떻게 견디어 낼까 싶다.
황사용 마스크는 필수품이 되었고 그것을 착용해도 거리에선 입을 꾹 다물고 다녀야 하기에 푸른 하늘 아래 펄럭이는 깃발만 바라보아도 숨통이 트이는 것이다. 더구나 스투파 공사가 말끔히 끝났고, 마침 닝마파 불교의 특별기도 기간이라며 수 백 명의 스님들과 불자들이 탑 위에 좌정한 채 염불을 외고 있으니 손님을 위해 어찌 반갑지 않을 수 있으랴. 전혀 기대하고 오지 않았는데 수천 명의 불자들이 거대한 행렬을 이루며 기도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2015년 4월 지진으로 스투파는 처참할 정도로 파손되었었다. 벽돌과 흙 그리고 돌로 지어졌기에 강진에 무참히 무너져 버렸던 것이다. 지진이 나던 해 11월 어느날 손님과 찾아 왔었는데 그날 또한 진풍경을 볼 수 있었다. 스투파를 복원하려는 공사에 참여중인 불자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갈과 모래 그리고 시멘트와 벽돌을 등짐으로 지어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구슬땀을 흘리며 무거운 짐을 허리가 휘도록 지고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불자들의 얼굴엔 기쁨과 희망으로 넘쳤다. 큰소리를 내는 사람도 없었고, 누가 특별히 나서서 지시를 일일이 내리는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각자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알고 있다는 듯이 그들은 척척 일을 진척시켰다. 마치 노동이 기도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기도가 이루어진 것은 당연하다. 원래의 탑으로 그대로 복원시켰고, 그래서 누구나 찾아와서 기도할 수 있는 곳으로 전환 시켰으니 어찌 그 노동으로 바친 기도가 값지지 않을 수 있으랴.
불자들의 헌신적인 참여 덕분으로 지진의 상흔을 말끔히 씻어낸, 복원된 스투파 위에서 특별 법회를 하고 있는 장면을 보자니 감회가 새로웠다. 지진은 이토록 네팔의 곳곳을 무너뜨렸고, 아직도 그걸 복구하느라 흙먼지를 먹어가며 벽돌을 쌓고 있는 곳이 대단히 많다.
염주 대신 묵주를 굴리며
우리의 마음이 산란해 질 때 어디로 가야 할까? 기도할 때 골방에서 몰래 하라는 말씀도 있지만 이곳 보우더에서는 모두가 행렬을 지어 걸어가며 기도를 바친다. 진지하지도 않고, 경건한 것 같아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저마다 각자 자기 방식의 기도를 하며 한 방향으로 돌고 또 돈다. 마니차를 돌리며 기도하는 사람, 염주를 들고 기도하는 사람 그리고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기도 행렬을 따라 가는 사람,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도무가 한 방향으로 따라 걷는다.
스투파를 중심에 두고 시계 방향으로 행진을 하듯 역동적인 기도 대오 군중 속에서 나도 한 일원이 되어 본다. 특별히 아픈 사람과 정치적으로 혹은 사회적인 문제로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기억하며 염주를 든 티베트 복장의 할머니 옆에서 묵주를 굴리며 같이 걷는다.
종교, 문화, 언어와 국경을 초월하여 우리 모두가 한 인류이며 지구촌의 한 가족이라는 것을 조금 더 현실적으로 자각하는 새해였으면 좋겠다. 오체투지를 하던 마니차를 돌리며 기도를 하던 방향만 거스르지 않으면 간섭이 없는 개방적인 보우더에서 새해 염원을 빌어 본다.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는 폭력과 전쟁을 멈추게 해 달라고.
이금연 세실리아
국제 가톨릭 형제회 (AFI) 회원
네팔 환대의 집 'Cana의 집'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