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메시아임을 공개적으로 인정하신다. 그분은 자신을 “사람의 아들”, 구약성서 다니엘서에 나오는 메시아의 명칭으로 부르신다. 그분은 당신이 몰아내는 영(靈)들이나 고쳐준 사람들에게 입을 다물라고 하시지 않는다. 이제 그분의 제자들은 그분의 존재를 이해한다.
그러나 아직도 그들은 그분이 무엇을 하는 분인지를 알지 못한다. 그들은 메시아의 사명이 무엇인지 자기식대로 생각한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가져올 구원이 쉬운 승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예수님과 이사야서에 나오는 고통받는 종의 모습과 연계시키지 않는다.
마르코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이런 연관을 과연 이해할지 염려했다. 열 두 제자들도 오래 걸려 이를 이해했다. 그래서 마르코는 이 점을 세 번이나 반복한다. 예수님께서는 매번 메시아가 반드시 고통을 당하시고 죽으시리라는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번번이 그분이 가져다 주는 구원은 자기 자신의 희생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가르치려 하신다. 그리고 그들은 번번이 그 점을 놓친다.
베드로가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고백한 직후 예수님께서는 그 말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시려고 하신다:
그 때에 비로소 예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버림을 받아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시게 될 것임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펄쩍 뛰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구나!“ 하시며 꾸짖으셨다. (마르코 8,31-33)
어떻든지 베드로가 항상 맨 먼저이다. 예수님을 따를 때도 그가 제일 먼저 따른다. 그분을 그리스도라고 제일 먼저 인정한 것도 그다. 그가 제일 먼저 의심을 하고, 잘못 이해하고, 거짓말을 하며, 배반한다. 그는 성공을 영광과 결부시켜 생각하는 보통 사람들 식대로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하느님 나라에서 성공하는 길은 자기부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제 목숨을 살리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릴 것이다."(마르코 8,34-35)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더 높은 차원의 삶, 더 높은 차원의 지혜와 더 깊은 믿음으로 인도하신다. 그분은 고통받는 종의 비밀, 하느님께 믿고 복종하는 길을 알려주신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분은 제자들에게 그 말의 본뜻을 다시 말씀하신다:
"사람의 아들이 잡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 그들에게 죽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마르코 9,31)
마르코는 이 구절 바로 다음에 제자들이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조차 두려워한다고 말한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이 무엇을 하려고 하시는지 복음서에서 분명히 말씀하신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삶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기를 두려워한다. 너무 위험한 일이다. 아마도 우리는 그것을 막연히 이해는 하지만 그 이해의 함축적인 의미를 분명하게 정면으로 대면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아마도 십자가 사건을 받아들이는 것만큼 부활을 믿는 것이 매우 어려운 것 같다.
<성서의 위대한 주제들-신약>, 리차드 로어 & 죠셉 마르토스(참사람되어 2000년 7월호 번역)